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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 Nov 03. 2019

8500 메릴랜드 에비뉴

프롤로그, 우리는 같이 살기로 했다.

 2019년 9월 11일 새벽 5시 반 그는 평소와 같이 새벽 훈련을 갔다. 두 시간 후 그가 돌아왔다. 그가 새벽 훈련을 나갈 때면 나는 들어오는 시간에 맞춰 아침밥을 차려주려 노력한다. 아침을 먹은 후, 우리는 집 앞 슈퍼에 꽃을 사러 갔다. 우리가 결혼하는 날이다. 부케를 준비해야겠다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어젯밤 시부모님과 전화를 하던 중 어머님이 내게 부케를 사주어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하셨다. 결혼하는 당일 부랴부랴 집 앞 슈퍼 내 꽃집에 가서 부케를 주문했다. 꽃을 주문하고 그는 다시 일을 하러 떠났다.

 


 그는 다시 출근을 하고 나는 화장을 시작했다. 결혼이라니 평소보다 조금 더 짙은 화장을 하고, 어젯밤에는 미리 팩까지 했다. 어젯밤 찾아본 예쁜 머리를 하고 싶었는데 너무 어렵다. 유투버는 뚝딱뚝딱하더니만 나는 왜 안되는지 모르겠다. 한국이었다면 동네 미용실에서 가서 하면 됐을 텐데... 싶었지만 어쩌겠는가 다시 머리를 풀어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올림머리, 그냥 똥머리로 둘둘 감았다.


 머리를 만지고 있으니 그가 일을 마치고 꽃을 찾아 돌아왔다. 반차를 내고 결혼을 하러 가기로 했다. 우리는 "결혼"을 위해 돈을 모아 오지 않았다. 만나다 보니 결혼이 필요해졌기에 결혼"식"을 위해선 금전적으로 준비를 할 시간이 필요했다. 내년 여름휴가에 맞춰 서로의 부모님을 모시고 세리머니를 하기로 했고, 결혼은 시청에서 간단하게 하기로 했다.


 미국은 주마다 결혼할 수 있는 방식이 다른데 우리가 사는 세인트루이스 주는 매주 수요일 오후 1시 법원에서 35쌍까지만 결혼을 할 수 있다고 한다. 미리 준비해둔 결혼 증명서(Married Certificate)를 가지고 법원에 갔다. 우리는 늦지 않도록 30분 전에 도착했는데 이미 우리 앞에 21쌍의 커플이 결혼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가지고 있는 양복이 없어 가진 옷 중에 가장 괜찮은 제복을 입었고 나는 한국에서 6만 원을 주고 산 하얀 원피스를 입었다. 우리의 포토그래퍼는 아마존에서 산 삼각대였고 포토존은 우리 집 거실이 되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우리답게 결혼을 하기로 했다.


  결혼, 단지 우리가 함께 살기 위해 해야 할 하나의 서류 작업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결혼식이라는 예식과 단어 앞에 어제와 오늘이 달라지지 않았으면, 어제와 같은 그가 단지 내 남자 친구에서 남편으로. 내가 그의 여자 친구에서 아내로 부르는 호칭만 바뀌었으면 했다. 간단한 일이라 생각하고 싶었는데 판사님이 "가난이 찾아와도 아픔이 찾아와도 무슨 일이 있어도 서로 함께 하겠습니까?" 묻는 순간, 이건 장난이 아니구나 그리 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구나 생각이 들었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그와 함께 하고 싶었기에 30년간 살아온 한국을 떠나 아무도 없는, 오직 그만 있는 미국까지 온 것이 아니겠는가.


 "네." 그렇게 우리는 부부가 되었다.


 한국에서 요가강사였던 나는 미국에서 군인으로 일하는 사무엘(이하 쌤)과 함께 살기 위해 미국 세인트루이스로 이사를 왔다. 우리는 1년 10개월의 연애를 마치고 함께 살기로 했다.


 언어도 문화도 다른 우리가 왜 함께 살기로 했을까. 어떻게 하면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해나가야 할까. 8500 메릴랜드 에비뉴, 우리가 신혼 생활을 꾸린 이 곳에서 살아가며 마주하는 어려움, 해결 과정, 사랑의 이야기들을 시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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