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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 Aug 11. 2020

이 남자의 한국어  

국제결혼, 서로의 언어. 

코로나 19가 시작되고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나와 같은 집에 사는 남자는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오늘로 한국어를 공부한 지 150일이 되었다. 하루도 쉬지 않고 약 5개월을 공부한 남편.

외국인 남편들은 로맨틱하다고 들었다. 혹시 내 남편도 쏘 로맨틱? " 나랑 한국어로 대화하려고 공부하는 거야?" 물었다. 그의 대답은 "노." 빈말 없는 이 외국인. 외국인 남편이라고 다 로맨틱한 것도 아닐세.


과거 남자를 소환하는 게 이상하지만 누구든 과거의 인연들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어릴 적 만났던 전 남자 친구와의 이야기이다. 그 남자 역시 외국 사람이었고 우리의 미래를 꿈꾸며 과거의 나는 한국어 책을 선물했더란다. 그 남자는 이미 한국어를 읽고 쓸 수 있는 정도의 한국어 실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내 기대치는 점점 높아지기 시작했다. "왜 한국어 공부 안 해? 내가 사준 책을 읽지 않아?"라고 몇 번 물었던 기억이 난다. 왜 나를 위해 한국어를 공부하지 않는지,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한국어를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그렇게 하지 않는지. 과거의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꿈꿨던 우리의 미래는 현실이 되지 못하고 우리는 헤어졌다. 이후 나는 한국어 책을 누구에게 선물해 준 적이 없다. 그 연장선으로 남편과 결혼하고 난 이후에도 한 번도 한국어를 공부하라는 소리를 해 본 적 없다. 우리 둘만 살게 된다면 지금까지 그래 왔듯 이렇게 언어를 사용하면 되고, 만약 아이가 태어나면 나는 자연스레 내 모국어를 가르치게 될 테니 그때 아이와 함께 자연스레 배우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오히려 요즘의 나는 한국어 공부 안 하면 안 되냐고 가끔 묻는다. 왜냐하면 남편이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눌 때의 희열이 있다. 남편에게 못할 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맘 편이 이 말, 저 말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왜 한국어를 공부할 생각을 했고, 어떤 힘이 당신을 150일, 약 5개월 동안 쉬지 않고 공부하게 만들었냐고 남편에게 다시 물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무언가를 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니까.


첫 번째로, 한국어 드라마를 보다가 갑자기 공부하고 싶어 졌다고 대답했다. 맙소사. 이 남자가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고 그 영향으로 한국어를 공부하고 싶어 지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두 번째로 혹시나 아이가 생기면 자신만 제외하고 한국어를 나누는 모습을 상상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이렇게도 한국어 공부를 하게 되는구나 신기하다. 현재의 나는 한국어 책을 사주기보단 옆에서 함께 공부하는 걸 택했다. 남편이 한국어 공부를 할 때 나는 옆에서 영어 공부를 한다. 나는 남편보다 꾸준함의 능력이 덜해서 그런지, 동기부여가 덜 했는지 주말에는 영어공부를 쉬고 하기 싫은 날엔 쉬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150일간 매일 공부하지는 못했다. 오히려 남편에게 쉴 때같이 쉬자고 유혹을 하기도 했다. 그는 절대 넘어오지 않았지만. 


항상 같이 하지는 못하지만 함께 공부하는 것이 그가 한국어 공부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남편은 이야기한다. 하라는 말보다는 같이 하는 행동이 더 도움이 되는구나 한 번 더 느끼는 오늘이다. 그리고 이 남자가 나의 언어를 공부하는 모습을 보며 그를 따라온 타지에서 나의 삶을 한 번 더 응원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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