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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 Sep 17. 2020

주고 주고 또 줘야 하는

결혼 생활. 


나는 그리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어도 불만을 가지지 않는다. 결혼을 하고 미국이라는 아무것도 없는 땅에 오는 결정도 괜찮았다.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이 있을 테니까. 얻으려면 잃어야 하는 것도 있으니까. 


그런 줄 알았다. 나라는 사람은. 




결혼기념일 전 우리는 이혼의 위기가 있었다. 1년 중 가장 심각했던 순간이다. 나는 속아서 결혼한 것 같으니 변호사를 알아보겠다는 이야기를 했고 사무엘은 그렇게까지 해야겠냐고 했다. 


지금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이유는 모든 것이 지나가서 그렇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괜찮아졌다. 


남편이 얼마 전 MBA를 공부하고 싶다고 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땐 하면 되지 간단하게 생각했었는데 MBA를 풀타임으로 군대에서 제대하고 나서 하겠다는 것이었다. 며칠 동안 잠을 못 잤다. '이제야 좀 편안해졌는데 왜 꼭 군대를 나와야 할까. 석사를 했는데 왜 또 한다는 걸까. 왜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저 난리인 건가.' 며칠간 잠을 못 잔 내 눈을 보고 사무엘이 놀랐다. 이렇게 피곤해 보인적은 처음이라며. 나도 이런 피곤은 처음이다 이놈아. 


첫 번째 사무엘의 의견은,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일반인의 삶이 너무 좋다고 했다. 우리가 있는 이 곳은 군대가 아니며 거의 직장인의 삶이라고 군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내 의견은, 왜 결혼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는 거냐는 것이었다. 결혼하기 전에 해보고 싶은 것 해보지 왜 지금 와서 이러냐고. 군대에서 20년 일하고 싶다는 그 사무엘은 어디 갔냐고!! 내가 돈 많이 벌어다 주라고 했냐고.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정말 충분하다. 


나는 내가 왜 이리 화가 나는지 몰랐다. 사무엘도 그런 것 같다. 내가 이렇게 까지 화가 난 이유를 나도 몰랐으니 그는 더 몰랐을 테다. 내 지인이라면 알겠지만 나는 인생 뭐 있어. 하고 싶은 것 하며 살자며 살아왔다. 남들이 다 말려도 해봐야 직성이 풀렸으며 망해도 고하는 성격이었는데 결혼이라는 책임이 나를 바꾼 건지 미국이라는 세상이 나를 바꾼 건지 나 스스로도 혼란스러웠다. 


친구와 대화하며 깨달았다. 배신감이었다. 미래에 불안함도 결혼에 대한 책임도 아닌 배신감.


1년 동안 내 모든 것은 변했다. 사는 곳도 변했고 가족도 변했으며 언어도 변했다. 모든 이유는 사무엘이었다. 이렇게 살아도 괜찮다고 생각했던 내 모든 이유는 남자, 사무엘이었다. (미친년ㅋㅋ) 생각보다 힘들지 않은 1년이었지만 그래도 내 모든 것이 변했는데 그 모든 이유였던 사무엘에게 느끼는 배신감이었다. 


잉? 막상 이유를 알고 나니 괜찮아졌다. 또 주변 언니와 남편이 군 제대를 한 경험이 있는 친구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래, 공부를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 내 첫 번째 협의 안은, 5개의 대학을 주고 그 대학에 합격하면 군대를 나와도 좋다. 그렇지 않다면 군대 안에서 MBA를 할 것이었다. 


나는 하나를 줬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협의가 되는 줄 알았다.


그런 줄 알고 있다가 며칠 후 군대를 나와도 될 것 같은 학교를 더 이야기하려는데 남편은 이미 지원할 대학을 알아보고 지원서를 쓰고 있는 상황이었다. 우리가 이야기 나누지 않았던 대학이었다.


어느 대학 MBA든지 장학금을 받을 수 있고 좋은 제안이 들어온다면 제대를 하고 갈 생각이었던 것이다. 이성이 끊어졌다. 


내 의견은 공부하겠다고 했을 때도 큰 결정이 필요했다. 고민 끝에 하라고 했던 이유는, 그의 하루를 보면 단 하루도 헛되이 살지 않으니 네가 사는 성실한 하루로 불안한 미래는 괜찮을 것 같고, 또 네가 내 말을 듣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들어준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워서 나도 네게 기회를 주고 싶었다. 그러나 행동을 보면 말로는 내가 원하면 군대에 있겠다 하더니 사실은 계획이 있었던 것이었다. 


"네 행동을 봐라. 너는 이미 다 정해져 있다. 그러므로 나는 네 계획에서 빠지겠다. 너 공부 열심히 하고 *발 나도 하고 싶은 것 하자. 너 말대로 인생 한번뿐인데 이렇게 살아보고 싶다 이거지? 이건 내가 진짜 잘해. 너도 너 하고 싶은 거 하고 나도 나 하고 싶은 것 하고. 너 공부 끝나고 다시 만나든 지금 그냥 헤어지든 하자."


나는 분명 그에게 선택권을 더 주려고 입을 열었는데 남편의 태도에 화가 났고 이혼하기 싫은 거면 나는 그냥 군대 있어라. 일보 전진했던 것 마저 후퇴하며 군대 있지 않을 거라면 그냥 이혼하자. 변호사 구해 알아보겠다고 했다. 


사무엘은 자기가 공부를 하는 건 나를 위한 건데 왜 그러냐고 했다. 돌아보면 맞는 말이다. 그가 군대를 나온다고 했던 이유에는 가족을 위한 이유도 있었다. 아이는 안정된 곳에서 키우고 싶고 혹시나 사무엘이 잘못되는 상황엔 군대는 20년을 일한다 해도 사무엘이 죽으면 나는 연금의 절반의 절반밖에 받지 못하지만 일반 회사는 그렇지 않으니 남아있는 가족에게 좀 더 나을 수 있다는 생각도 했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전후 사정 볼 것 없이 내가 하나를 내줬는데 그는 하나도 내주지 않으려는 그 태도에 화가 났다. 내가 하지 말라면 공부를 하지 않겠다면서 하지 말라고 하니 믿을 수 없다고 한다. 


정말 밤새 결혼 후 처음으로 진지하게 이혼을 고민했다. 진짜 옆에서 자는데 얼굴을 확 꼬집어 버리고 싶었다.

 

다음날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갑자기 그냥 나도 예상치 못한 말이었는데 "해, 너 하고 싶은 것 다 해. 대신 우리가 정착할 도시로 가서 공부를 하면 좋겠다"라고 이야기가 나왔다. 사무엘은 왜 갑자기 이러냐며 그러지 말라고 했다. 


이래도 하지 말래, 저래도 하지 말란다. ㅎㅎ 


만약 MBA를 공부한다면 우리가 정착하고 싶은 도시를 정하고 그 주변 대학에 합격을 할 수 있는지를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아직 다 정해진 건 아니지만 우리가 보는 항목에는 공부를 하고 첫 직장을 구해 정착을 시작하는 시간 동안 지낼 공간이 우리가 금전적으로 감당할 수 있을 지역인지, 계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좀 더 쉽게 할 수 있는 지역인지를 보게 되었다. 


여전히 사무엘은 내가 가고 싶지 않은 지역의 학교들도 지원을 하고 있고 한 번씩 이 곳은 어떠냐는 말을 하긴 하지만 내가 마음을 그냥 *발 놓은 건지. 세인트루이스라는 지역처럼 우리가 몰랐지만 잘 살게 되는 지역일지도 모르니 일단 보는 건지 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지만 


결혼 생활이란 하나를 주고 또 주고도 또 줘야 한다는 것을. 


글을 쓰다 보니 사실 내 입장에선 많이 내줬다고 생각했는데 적고 보니 아무것도 아니고, 사무엘도 참 많은 부분을 내주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또 이런 생각을 보면 나는 따지지 않는 사람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결혼을 한 번 해보는 것도 아이를 가져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라는 말, 인생의 새로운 재미가 있다는 말 뒤에는 내가 모르는 내가 어디까지 참아낼 수 있는지 해 낼 수 있는지 양보할 수 있는지를 보는 좋은 경험이라는 재미라는 것 같기도 하다. 


그 이후엔 또 새로운 세상이 열릴 테니까. 

비 온 뒤 땅이 굳어진다는 말처럼 우리는 더 단단해질 테니까. 


굳어지는 땅을 위해 우리는 서로에게 줄 수 없을 것 같았던 것들을 얼마나 더 서로에게 주어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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