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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 Jan 22. 2021

미국 새댁이의 행복의 순간들.

Don't worry, Be happy now.

행복하다.


일어나자마자 사무엘은 노엘이와 산책을 가고 나는 혼자 커피 물을 올려놓고 화장실 타임을 갖는다. 전기 주전자를 살까 말까 오랫동안 고민했다. 지금까지 월마트에서 산 10불짜리 불에 올려놓고 쓰는 스테인리스 주전자를 썼다. 전 주전자는 끓어오르면 내가 불을 꺼줘야 하므로 화장실이 가고 싶어 죽겠지만 불앞에서 끓어오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불을 끄고 화장실을 갔다. 그럼 물을 나중에 끓이면 되지 않나 싶지만 물을 끓여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하루에 한 번 있는 내 소중한 (?) 화장실 타임을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또, 여름엔 괜찮지만 추운 겨울엔 노엘이와 산책을 하고 들어오는 사무엘이 바로 커피를 마실 수 있도록 해주고 싶다. 집에 들어올 때 커피 향기가 나는 것도 좋고. 사무엘이 해달라고 한 것은 아니지만 들어오자마자 딱 놓여있게 끔 해주고 싶은 그 마음이 좋았다. 


아무 전기 주전자 사면 되는 걸 결혼하자마자 산 주방기구 중 후회되는 물건들이 몇 개 있어서 이 친구는 어떤 걸 사야 후회하지 않을까 고민의 시간이 길었다. 온도 조절이 될 것, 자리를 많이 차지하지 않을 것, 지인의 집에서 드립 커피가 맛있었으니까 언젠가 드립을 사면 겸사 겸사 쓰기 좋을 것 알아보다가 1년이 지났다. 


요즘엔 버튼만 눌러 넣고 마음 편히 장 비움 시간을 갖는데 아 이게 뭐라고 정말 행복하다. 전기 주전자가 알아서 온도에 맞춰서 꺼지고 온도가 떨어지지 않도록 유지되고. 진즉 살걸. 


머신 커피를 내릴 땐 두말할 것 없이 좋다. 최근엔 드립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반 년의 고민 끝에 드립 기구를 샀다. 머신과는 또 다른 맛, 또 다른 하루의 시작의 재미가 있다. 아무런 감정에 영향 없는 아침의 첫 행동. 이 시간이 정말 좋다. 자신 있게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제는 장 보러 나간 김에 중고 마트에 들렀다. 아니, 인스턴트 팟이! 상태 좋은 토스터가 $12라니. 우리 집에 필요한 것들이 아니라 그냥 보고만 왔지만 가끔 이렇게 좋은 친구들을 만난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행복의 순간. 


그냥 집에 돌아오기가 아쉬워 근처 앤티크 몰에 들러 한 바퀴 돌았는데 지난번 살까 말까 고민했던 파이렉스 친구들을 데려왔다. 나는 파란색이 들어간 접시들을 좋아하는 것 같다. 묵직하고 귀여운 파이렉스에 나경 언니 레시피의 요구르트를 담아 먹으니 이 또한 감사할 수밖에 없는 행복의 순간.


정성 들여 밥을 짓는다는 마음 때문일까. 그냥 밥맛이 좋아서일까. 냄비밥을 할 때는 언제나 행복하다. 더러워진 스토브는 NG 


여행을 잘 하고 돌아온 노엘이를 위해 닭 가슴살을 삶아줬다. 내가 좋아하는 요리로 노엘에게 무언가를 해줄 수 있다는 건 감사할 일. 

요리가 맛있게 되면 이 또한 행복. 

밥이 좀 눌어붙은 김에 누룽지를 했다. 누룽지만으로도 행복한데 누룽지와 잘 어울리는 빈티지 접시에 담아 먹는 것은 행복을 배로 느끼게 해준다. 

사무엘이 노을 봐, 했던 순간. 


여행지에서 느끼는 3대 선셋도 좋지만 일상에서 느끼는 선셋 역시 행복하다. 

좋아하는 일을 해서 번 돈으로 가지고 싶던 접시를 샀다. 오늘 좋아하는 디저트로 하루를 마무리하며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가는 날들에 감사했다. 어떻게 항상 좋아하는 것들만 하며 살 수 있겠냐만, 그렇게 노력하며 살고 싶다. 지금, 내가 있는 여기서 행복하도록. 


쾌락이 행복에 가장 가까운 감정이라고 하지만 쾌락과 행복은 같은 단어는 아니다. 비슷하지만 다르다고 생각한다. 또한 물건만이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요즘 물건을 살 땐 나와 함께 늙어갈 것들인지 확인한다. 항상 성공할 순 없고 때론 필요 없어서 집에서 내보낼 때도 있지만 자주 묻는다. 나와 함께 나이 들어갈 수 있는 것들인지. 로얄은 접시 자체로도 행복했지만 이 친구와 함께 내가 나이 들어갈 날 들을 생각하면 더 행복했기 때문에 "구매"라는 "결정"을 했다. 


지금 여기서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은 내가 원하는 것을 알고, 노력하고, 따라오는 결과에 승복하고 감사하는 것. 행복을 위해 나라를 바꿀 순 없고, 사는 곳을 바꿀 수 없고, 옆에 있는 사람을 바꿀 순 없지만 단 하나, 바꿀 수 있는 것은 "나." 그리고 내 감정이다. 매 순간 행복하기를 선택할 수 있고 매일 "나"는 행복하기를 선택할 수 있다. 내가 지금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문득 행복에 감사에 익숙하지 못했던 내 과거엔 행복과 감사 또한 노력이, 훈련이 필요했었구나 생각했다. 그런 순간들이었었구나. 감사하는 척이 아닌 진정한 감사가 이렇게 힘이 드는 것인지, 내 행복은 왜 이리 멀리만 있는 것 같은지 신을 원망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감사일기를 쓰고 감사하려고 노력했다. 이렇게 해서 뭐 하나 싶을 때도 있었는데 지나보니 훈련의 시간이었나 보다. 오늘은 문득, 감사에도 행복에도 노력이 필요했었구나 다시 한번 느낀다. 


나는 오늘, 지금, 여기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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