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두번째 고향
난 어려서부터 독립심이 강했다-라고 이야기하고 싶지만 외부적인 요인으로 독립심이 자라난 경우였다. 부모님의 엄격한 보호(?)로 인해 생겨난 반항심으로 길러진 독립심이랄까.. 예를 들면 '여자' 이기 때문에 밤늦은 시간엔 바깥에 있으면 안 되었고, 친구네 집에서 잠을 자고 오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다. 주변의 친구들 부모님은 자유롭게 친구들의 생활에 간섭하지 않는 모습이 그렇게 부러울 수밖에 없었다. 우리 집은 마치 가두리 양식과도 같은 과잉보호로 늘 나를 괴롭게 했다. 저녁 8~9시가 되면 집으로부터 온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고, 친구들과 더 놀고 싶다고 이야기해도 부모님에겐 먹히지 않았다. 더 억울했던 건 이런 간섭이 나에게만 해당될 뿐, 남동생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남동생은 밤늦게 밖에 나가 놀아도 집으로 돌아오라는 독촉 전화를 한다거나 왜 이렇게 늦었냐는 잔소리를 하지 않았고, 밖에서 친구들과 어디서든 하룻밤 자고 들어와도 크게 혼나지 않았다. 성별이 '남자' 이기 때문에 나와 다른 대우를 한다는 것 자체가 난 너무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집에 더 들어가기가 싫었고, 더 자유롭게 지내고 싶단 생각에 가족과는 따로 생활하고 싶었다.
지방에 있는 대학에 입학하면서 2년 정도 자취생활을 하게 되었고, 처음 느껴보는 자유와 개인 생활이 달콤하고 즐거웠다. 그렇지만 집 근처 학교로 편입을 하게 되면서 다시 부산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집으로 모든 짐들이 들어오게 되었을 때는 이전과 같은 생활 속 간섭이 다시 시작됨으로써 나는 자연스레 '나의 첫 직장 생활은 무조건 서울로 가게 될 것'이라는 목표를 세웠다. 친구들을 만나면서도 그렇게 이야기를 했었고, 명절날 친척분들이 근황을 물을 때에도 나는 내 목표를 자랑스레 떠들고 다녔다. 그래서였을까.. 옛 인디언 속담에 '어떤 말을 만 번 이상 반복하면 반드시 미래에 그 일이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듯이 어물쩍 기회가 찾아왔다.
서울에서 있는 친척의 결혼식에 혼자 KTX를 타고 갈 무렵, 학과 사무실에서 전화가 왔다. 서울에 있는 작은 편집 회사에서 구인을 하는데 면접 볼 생각이 있느냐고-. 당연히 서울 구경에 신이 났던 여행길에 면접 준비를 했을 리가 없었던 나는 조심스레 마침 친척 결혼식이 있어 서울로 가는 길이라 면접 보는 건 어렵지 않은데 회사에 제출할 이력서, 포트폴리오가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아 지원하기 어렵지 않을까 물어보았더니 조교 언니는 그건 걱정하지 말라면서 면접을 먼저 본 후 추후에 서류를 제출하는 걸로 이야기해 놓겠다 했다. 일단은 면접을 보기로 하고 친척 결혼식이 끝난 이후 시간을 계산해서 면접 시간으로 정했다. 결혼식이 끝난 후 시간에 맞춰 면접 장소로 달려갔고 2시간여 동안 직무에 대한 질문보다는 인성에 관한 질문이 더 많았던 면접을 보았다. 회사에 충원이 급한 사안이라 일단은 합격! 서류는 부산 내려가서 보내주기로 하고, 당장 다음 주부터 출근하라는 사장님의 말씀에 집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드디어 첫 직장을 서울에 잡았다는 기쁨과 앞으로의 생활이 기대되는 설렘이 먼저였다.(지금 생각해도 참 철이 없었던 사회 초년생이었다.)
부산으로 도착하자마자 합격 소식을 전했고, 부모님은 딸이 취업난 속에서 5G급(?) 속도로 취업이 결정돼서 좋긴 한데 당장 구할 집이 없어 발만 동동 구를 걱정이 앞섰다. 부모님은 여기저기 서울 근처에 사는 친척들에게 연락을 돌려보며 나의 사정을 이야기한 결과, 다행히 인천에서 생활하던 사촌 오빠네 집 방이 하나 빈다는 소식을 접했다. 오빠와 논의한 후 임시로 그곳에 들어가 생활하면서 빠른 시일 내 내가 살만한 집을 구하자는 결론이 났다. 당시 신혼부부였던 오빠네에서 눈치 있게 생활했었어야 했는데.. 눈치 없이 생활했던 이야기를 가끔 농담 삼아 들을 때면 새 언니에게도, 오빠에게도 참 많이 미안했다.. 물론 사촌 오빠네에선 그리 오래 살진 않았고, 2~3개월을 지내다가 인천보다는 조금 더 서울과 가까운 지역으로 자취방을 구하여 결혼 전까진 그곳에서 쭉 살게 되었다.(내가 오빠네 집을 나가자마자 조카가 생겼다는 후문..)
그렇게 시작한 첫 직장 생활이 3년이 되고, 퇴사한 후 다시 들어간 회사들도 계속 서울권에서 근무하게 되면서 나의 자취생활은 장장 길어지기만 했다. 그러곤 서울 사람을 만나 결혼도 하게 되면서 상경한 후 현재까지 도합 어언 10년을 서울 수도권에서 살게 될 줄이야.. 시작은 미약(?)하였지만 현재도 진행 중인 서울살이(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수도권이긴 하지만..)에 난 만족하며 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