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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파 Jan 03. 2022

데이먼 알반은 뭐든지 할 수 있어

데이번 알반(Damon Albarn)의 솔로 2집

한국의 록 팬들 사이에서 오아시스가 갖는 영향력은 그야말로 압도적이다. 서정적이면서도 밝은 브릿팝의 멜로디, 갤러거 형제(노엘 갤러거, 리암 갤러거)의 거침없는 태도, 그리고 축구에 대한 애정(?).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오아시스를 아이콘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오아시스가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던 90년대 초중반, 맨체스터로부터 조금 떨어진 런던에는 중산층 출신의 라이벌 밴드인 블러가 있었다. 


블러는 오아시스, 스웨이드 등과 함께 브릿팝의 시대를 연 밴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문을 닫은 밴드이기도 했다. 그 중심에 블러의 리더 데이먼 알반이 있었다. 그는 '브릿팝은 죽었다'는 그 유명한 말을 남긴 채, 새로운 세계에 투신했다. 90년대 후반, 이미 블러의 음악은 브릿팝으로부터 멀어져 있었다. 그리고 메타버스의 시대가 열리기 한참 전이었던 2000년대, 데이먼 알반은 가상 밴드 고릴라즈(Gorillaz)를 만들어 일렉트로니카와 힙합을 오갔다.


데이먼 알반은 그 외에도 수많은 프로젝트를 통해 창작력을 뽐냈다. <더 굿, 더 배드 앤 더 퀸>(The Good, The Bad And The Queen)과 <서유기> 영국 뮤지컬 음악 감독 등, 그는 전천후 예술인으로 화약했다. 한때 블러를 비난하기에 바빴으나 지금은 든든한 동료가 된 노엘 갤러거는 데이먼 알반을 두고 '자신이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이라 극찬했다.


지난 11월, 데이먼 알반이 솔로 2집 앨범 < The Nearer The Fountain, More Pure The Stream Flows >를 발표했다. '샘이 가까워질수록, 샘물은 더 맑게 흐른다'라는 이름이 의미심장하다. 브라이언 이노와 함께 만든 < Everyday Robots > 이후 7년 만에 발표한 솔로 앨범이다. 이 앨범은 본디 아이슬란드의 풍경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오케스트라 앨범으로 완성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코로나 19가 세상 사람들의 삶을 바꿔놓는 동안, 이 앨범의 방향성도 바뀌었다. 알반은 곡들에 가사를 붙였고, 자신이 걸어온 어두운 여정을 녹여내고자 노력했다.




"너는 떠났고, 어두운 여정이 있어. 돌아오지 않았고, 떠났어.

내가 너를 애도하는 것은 아무 소용없는 일. 그러니 누가 애도를 도울 수 있을까."


- The Nearer The Fountain, More Pure The Stream Flows 중


한계가 없는 알반의 창작 세계를 형상화한 앨범이다. 데이먼 알반은 기타, 베이스, 드럼, 오르간 등 다양한 악기를 직접 연주하면서 앨범의 선장이 되었다. 앰비언트의 색채가 강한 첫곡. 혼란스러운 퓨전 재즈 사운드와 디스토션이 뒤섞인 끝에 아름다운 피아노 연주로 마무리되는 'Combustion', 오르간과 신디사이저, 비대면으로 치러진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에서 공개된 'Polaris', 'Royal Morning Blue'의 댄서블한 리듬도 빼놓을 수 없다.


록 페스티벌에서 신나게 떼창할 수 있는 노래, 혹은 브릿팝의 추억일랑 기대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것은 이미 한참 전에 사라진 것이다. 전작에서 자신의 내면을 미니멀리즘에 투사했던 그는, 이제 그 연장선에서 팬데믹 시대의 상실감을 노래한다. 아이슬란드의 광활한 풍경부터 심연을 오가는 사운드스케이프가 이를 뒷받침한다. 안개가 자욱한 앰비언트에 알반의 건조한 목소리가 얹힐 때는 쾌감마저 느껴진다.


이것은 '체험되는 음악'이다. 잘 들리는 멜로디가 없을지언정, 서늘하고도 정교한 감각이 살아 있다. 데이먼 알반의 새 앨범은 음악 감상것이 얼마나 가성비 좋은 취미인지를 일깨워준다. 코로나 19 때문에 해외여행을 가기 힘든 요즘, 이 음악과 함께 아이슬란드로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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