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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파 Jan 04. 2023

뉴진스, 모호함 뚫고 던지는 화두

뉴진스의 'OMG' 뮤직비디오를 보고


어쩌다보니 또 뉴진스 이야기다. 어째 모두가 뉴진스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세상이다. 어도어(ADOR)의 첫 번째 그룹 뉴진스는 지난 여름 이후 단숨에 뉴 제너레이션의 얼굴이 되었다. ‘Hype Boy'와 ’Attention'은 Y2K와 미국 하이틴 드라마를 낯설지 않게 버무린 청량 음료였다.


2022년이 끝나갈 때쯤 발표된 ‘Ditto’는 잘 빠진 레트로 그 이상이었다. 250이 주조한 저지 클럽(Jersey Club) 사운드 위에 얹힌 멜로디, 그리고 1990년대의 향수를 자극하는 뮤직 비디오, 팬덤과 아티스트의 특수한 관계성 등, 열광할 근거는 충분했다.


제작자인 민희진의 치밀한 기획 가운데, 뉴진스는 ‘존재한 적 없는 노스탤지어’조차도 있었던 것처럼 만드는 존재가 되었다. 확언하건대, 뉴진스는 1990년대에서 온 2000년대생들이다.


그리고 ‘Ditto’에 열광하기도 바쁜 흑묘년 둘째날, ‘OMG'가 발표되었다. ’OMG'는 Cookie'의 프로듀서이자 XXX의 멤버인 프랭크(FRNK)의 손에서 탄생했다. UK 개러지와 트랩 등 다양한 음악적 요소를 차용하면서, 중독성을 자극한다. 그러나 'Ditto'의 허밍만큼 매력적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곡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뮤직비디오였다.



"처음에는 혼란스럽기만 했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여기가 어디인지 알 수 없었어요. 

남들이 얘기하는 나와, 진짜 내가 헷갈리기 시작했어요."


정신병원에 모여있는 뉴진스 멤버들이 등장한다. 하니는 정체성의 혼란을 고백한다. 이윽고 하니는 “나는 아이폰이다.”라고 선언한다. 상상보다 더 혼란스러운 도입부다. (박찬욱 감독 비운의 영화 <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 가 떠오르기도 하는 설정.)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서로 다른 존재로 자신을 규정한다. 뉴진스의 맏언니인 민지는 의사 가운을 입고 있다. 혜인은 숱한 동화 속의 공주 역을 도맡고 있다. 해린은 자신이 뮤직비디오 속에서 자신이 고양이라고 믿는다.


1초 단위로 이들의 자아는 군인, 어린이, 코로나 19 방역 관계자로 바뀌기도 한다. 뮤직비디오 후반에 다니엘은 ‘제 4의 벽(관객과 연극 무대 사이에 존재하는 가상의 벽)을 깨겠다는 듯이, "우리는 지금 뮤직비디오 촬영 중이지 않느냐."고 말하고, 촬영 현장에 난입한다. 그러나 끊임없이 ’뉴진스‘를 자처하는 그의 시도 역시 좌절된다.


이쯤 되면 무엇이 원본과 복제본인지, 또 현실과 망상인지 구분할 수 없다. 스마트폰을 쥐고 자라난 세대의 산만한 자아처럼 보이기도, 또는 기형적인 케이팝 산업 속에서 주체성을 잃어가는 아티스트가 자신을 찾아가는 모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끝없는 망상의 연속에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만화가 겸 트위치 스트리머 ‘침착맨(이말년)’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 뮤직비디오가 공개된 지 두 시간 반 후, 뉴진스는 침착맨의 트위치 라이브 방송에 출연했다. 심지어 이번 앨범 첫 활동이었다!)



뮤직비디오의 말미에 등장하는 쿠키 영상은 앞선 6분만큼 중요하다. 한 소녀가 '뮤비 소재 나만 불편함? 아이돌 뮤비 얼굴이랑 안무만 보여줘도 평타는 치는...'이라는 글을 트위터에 적고 있다. 그 글을 다 쓰기도 전에 의사인 민지가 그를 데리고 나간다. 매우 논쟁적인 몇 초다. 돌고래유괴단의 신우석 감독이 'OMG'의 발표에 앞서 가진 인터뷰를 읽어보면 장면의 의도성은 제법 명확해진다. 그는 이 인터뷰에서 "뉴진스의 멤버들은 생각이 자유로운 아이들인데, 사람들의 평가와 오해를 받으며 점점 이 모습을 잃게 되면 어떡하지. 앞으로 한 아티스트나 인간으로서 표현하는 것에 본인 스스로 제약을 두게 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폭력적 팬덤 문화와 악플에 대한 일갈이 통쾌하다는 반응도, 그리고 '팬덤과 대중에 대한 오만한 시각이 드러난 사족'이라는 우려도 공존한다. 케이팝 팬덤 사이에서도, 그리고 내 주변의 글 잘 쓰는 스피커들 사이에서도 여론은 첨예하게 갈린다.


수많은 해석이 혼재된 가운데 확실한 것이 있다면, 앞으로 뉴진스는 대중과 팬덤의 기대를 끊임없이 배반하는 식으로 움직이리라는 것. 소녀들은 언제나 예상을 깨는 기획 가운데에서 움직이고 있다. 민희진 대표는 케이팝 하면 의례적으로 떠올리는 '세계관'을 영리하게 변주하고, 그 다음 단계로 넘어 갔다. 호오를 떠나, 이들은 다시 한번 화두를 던지고 있다.


- 이현파(유튜브 왓더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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