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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금 Oct 24. 2017

미니멀하게 살기

내생에 이렇게 미니멀하게 살아 본 적이 없는 듯하다. 집을 줄여 이사를 하니 (그것도 2층 단독에서 방 2개짜리 집으로!) 미니멀리스트가 아니면 살 수가 없게 되었다.


단순하게 간소하게 산다는 건 생각보다 힘든 일이다. 특히 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아예 포기하고 시작조차 하지 않기 마련이다. 평소 나는 필요한 것이 있다면 아낌없이 소유하는 편에 속했다. 일상을 유지하고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이것도 필요하고 저것도 필요하고, 다양하게 구비해 놓는 것이 좀 더 편리할 뿐만 아니라 지금 지닌 것이 망가지거나 부족할 경우를 우려해서 여유분까지 구비해놓아야 안심이 되었다. 집이 작으면 작은데로 크면 큰 데로 구석구석 물건들을 쟁여두고 생활을 한 셈이다. 이런 사람을 두고 맥시멀 리스트라고도 한다는데 나도 그 편에 가까웠다.


동시에 마당과 테라스가 있는 큰 집에 살면 맥시멀리즘이 극대화되기 딱 좋다. 테라스의 테이블과 의자는 기본이요, 바비큐에 필요한 재료들, 마당을 꾸미는데 필요한 각종 도구들과 화분들, 데코레이션은 물론, 그 안을 뛰어놀 아이들을 위한 미끄럼틀과 욕조까지 다양하게 구비해놓을 수가 있다. 살림은 점점 늘기만 할 뿐 버리는 일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되었다. 공간이 충분했으니까 굳이 왜 버리는 일을 하나, 아깝게 말이지.

주변에서도 우리 집에 물건을 버리듯이 맡기고 가는 일이 잦았다. 특히 남편 주변에는 한국에서 몇 년 살다가 떠나는 지인들이 많았다. 그들은 사용하던 물건을 처분하다가 끝내 해결하지 못하면 우리 집에 기증 또는 두고 가는 일이 종종 있었고 한두 번 이런 일이 반복되자 어느새 집안은 부족함 없이 꽉 차 버렸다. 우리는 새로운 물건을 사들이는 소비도 좋지만, 중고라도 유용하게 사용하기를 즐기는 타입이라 낡은 물건도 고쳐서 예쁘게 쓸 수 있어서 좋았다.

문제는 잘 버리기 또한 중요하고 습관에 의해서 길러지는 것인데 잊고 살기 딱 좋은 환경이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대가를 이번 이사를 통해서 톡톡히 치르고야 말았다. 미니멀리스트가 되는 길이 이렇게 멀고도 험할 줄이야!


최근 우리 부부는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는 시점이라 작게 사는 삶으로 잠시 스스로를 몰아넣기로 했다. 그런 결단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음 미니멀 라이프는 시도도 못했을 것 같다. '아이들이 더 크기 전에 작은 집에서 몇 년 동안 살자. 그리고 짐도 줄여보자!' 실행에 옮기면서 그동안 쌓아놓은 짐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우리는 한 달 전부터 짐을 줄이기 위한 계획을 짜고 실행에 옮겼다. 일단 큰 가구와 가전들은 온라인으로 판매를 하고 기증이 가능한 물건들을 정리해 필요한 단체에 실어 날랐다. 이사 전 마지막으로 House Cooling Party를 열어 소소한 물건들은 친구들이 저렴하게 사갈 수 있는 기회도 만들었다. 판매 가격이라고 해봤자 100원에서 1000원에 불과했지만 아이들이 직접 판매도 해보고 흥정도 하면서 용돈을 벌어보는 경험도 하고 어른들은 꽤 재미나게 물건을 사가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이사 전날까지 정리에 정리를 지속했다. 버리고 또 버리고. 그런데 이 '버림'이라는 행위가 생각보다 꽤 고차원적인 통찰이 필요했다. 오랜 시간 소유했던 물건일수록 추억과 집착이 생겨버린 상태라 버리지 말아야 할 당위성을 강하게 품고 있었고, 20년 가까이 살았던 집안에 묵은 물건들의 사연이란 하나같이 독특하고 진했기에 물건 하나하나를 들여다보고 버리자고 결심하기까지 기대보다 큰 용기와 결단이 필요했다. 결국 내가 이 물건을 버림으로써 얻는 실익을 마음속으로 따져보고 스스로를 설득하는 과정까지 잘 마무리가 되어야 집 밖에 내놓았다가 미련을 버리지 못해 다시 끌고 들어오는 일이 벌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많은 물건들을 분류하고 버리거나 팔거나 기증하거나 하는 방식으로 없애는 일 자체도 시간과 체력이 많이 소요되는데, 거기에 이것을 없앨 것일까 말 것일까를 결정하는 고심까지 더해지니 '아 미니멀리스트가 되는 길은 꽃길이 아니구나!'하고 새삼 깨달았다. 살 때는 그렇게 쉬었는데 정리할 때는 그보다 배로 많은 노력이 든다는 걸. 많이 크게 가진 것보다 적게 그리고 작게 갖고 사는 일이 마음도 편하고 고차원적인 즐거움이 동반되는 일이란 걸 이제야 깨닫는다.

 

그래도 버리고 또 버리면서 얻이득이라면


1. 앞으로 물건을 사들일 때는 심사숙고하게 될 것이라는 점과

2. 지난 네 삶을 점 칠 해온 소비 습관을 반추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만 잊지 않아도 인생은 훨씬 담백하고 의미 있게 살아질 것 같다. 미니멀 라이프란 공간 활용에 대한 계산이 철저하게 이루어져야 하고 갖고 싶은 물건이 쓸데없다면 포기하는 욕망의 절제도 필요하다는 점을 느끼게 되어 꽤 뿌듯하다.

물론 아직 진정한 미니멀리스트가 되는 길은 멀었다. 심플하고 고급진 공간을 자랑하는 고수들에 비하면 이제 막 발걸음을 뗀 초보 수준. 그래도 간소한 삶을 지향하면서 살게 되니 마음이 훨씬 가뿐하다. 내가 '소유'를 하면서 느꼈던 즐거움, 즉 소비를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물건을 지니게 되어 가진 만족감 대신 쓸모없는 소비를 줄임으로서 환경오염에 이바지하지 않게 되고 공간과 시간을 더욱 값지게 쓰게 되었다고나 할까.


예전에는 필요한 물건이 있다면 그것을 사기 위해 필요한 수중의 예산을 따져보았을 뿐인데 이제는 마지막에 이것을 어떻게 처리할지까지 고민하면서 사게 될 것 같다. 물건을 구매하는 그 순간, 그 물건이 내 품을 떠나는 순간까지 고려하면서 소유를 결정하는 것이야말로 미니멀리스트가 되는데 가장 중요한 덕목이 아닐까. 미니멀 라이프란 물건은 적게 소유하지만, 깊이 있는 생각은 더 많이 소유하는게 틀림없다.


아이를 위해 직접 만든 종이박스집도 결국 버렸다.. 마지막으로 노는 순간. 필요하다면 다시 만들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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