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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리학자 J Feb 17. 2019

비행 중 짧은 생각들

인천행 그리고 다시 샌프란시스코행

1.

1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 인천행 비행기에서는 김연수 작가의 산문집을 읽었고, 돌아오는 샌프란시스코행 비행기에서는 박준 시인의 새 시집을 읽었다. 


2.

김연수 작가의 여행 산문집 <언젠가, 아마도>에서 비행기 안에서의 감정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그는 비행기안에서는 다가올 여행에 대한 설레임이나 긴 비행에 대한 지루함, 두 감정만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적었다. (물론 그는 비행에 대한 책을 읽고 비행기 안에서는 슬픔과 같은 여러 감정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하지만 나에게 비행기는 늘 감정으로 가득 찬 곳이었다. 이번 비행은 더욱 그랬다. 오랫동안 떠나 있었던 고향을 찾는다는 생각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내가 걷고 있는 길에 대한 생각 때문이었는지, 여러 갈래의 감정들이 떠올랐다. 그것은 설렘이기도 슬픔이기도 반가움이기도 피로함이기도 했다. 또한 동시에 그것은 감정을 지시하는 단어에 대응되지 않는 감정이기도 했다. 굳이 표현하자면 '복잡한 심정'이라는 말이 그것을 잘 표현할 수 있을 단어일지도 모른다.


3.

인천에서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읽은 박준 시인의 시집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에서 마음이 끌리는 시가 몇 있었다. 다음 시는 그런 시 중 하나다.

<낮과 밤>

강변의 새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떠나는 일이었다

낮에 궁금해한 일들은
깊은 밤이 되어서야
답으로 돌아왔다

동네 공터에도
늦은 눈이 내린다


4.

오랜만에 찾은 한국은 그대로이기도, 많이 달라져 있기도 했다. 첫눈에 달라졌다고 느꼈던 것은 가게들이었다. 높은 임대료 때문인지 과도한 경쟁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알던 가게들이 많이 사라져 있었고 그만큼 모르는 가게들이 새로 생겨 있었다. 또한 친구들도 달라져 있었다. 내가 떠나 있는 동안 친구들은 많은 수가 결혼을 하거나 할 예정이거나 아이를 갖거나 가질 예정이었다. 그들은 어쨌든 삶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고 있었고, 그만큼 그들과 나의 대화 내용도 변해 있었다. 신혼집, 대출, 출산, 이직 같은 이야기들. 내가 미국에서는 하지 않은 이야기들이었다. 내가 미국에 있는 시간만큼 나의 삶이 유예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결국 한국과 한국에 있는 내 벗들은 나름의 속도로 흐르고 있었다. 강은 그대로지만, 강을 흐르는 물은 매 순간 새로운 물인 것처럼. 과연 나는 1년 동안 그대로일까 아니면 많이 달라져 있었을까. 한국이 그대로라고 느꼈던 만큼 나는 그대로였을 것이고, 한국이 달라져 있다고 느꼈던 만큼 나는 달라져 있었을지도 모른다.


5.

다와다 요코의 <영혼 없는 작가>에는 비행과 영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영혼은 비행기처럼 빨리 날 수 없다는 것을 인디언에 관해 쓴 어떤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비행기를 타고 여행할 때 영혼을 잃어버리고 영혼이 없는 채로 목적지에 도착한다. (26쪽)

1년 전 인천공항에서 샌프란시스코로 올 때, 내 영혼은 확실히 비행기보다 느렸던 것이 분명했다. 더운 여름이 지나고서야 겨우 이곳을 집으로 느끼기 시작했으니까. 내 영혼은 반년쯤 늦게 샌프란시스코로 도착한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나의 전부가 내 몸과 함께 미국으로 날아왔는지는 모르겠다. 1년 만에 찾은 한국은 분명 어느 정도 낯설기는 했지만 결국 내게 익숙한 무엇을 보여주었기 때문이었다. 아마 나는 한국에 영혼의 일부를 두고, 미국에 영혼의 일부를 가지고 왔는지도 모르겠다. 


6.

나는 2주 동안 한국에 머물렀는데, 첫 주는 무척 신났고 두 번째 주는 무척 우울했다. 


7.

가고 오는 여정에서 나는 대한항공 항공기를 이용했다. 여러 나라의 여러 항공사를 이용해봤지만, 한국 항공사의 서비스가 제일 친절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너무 친절하지 않나 싶기도 해서 승무원들이 안쓰럽기도 한데, 그만큼 그들이 섬세하게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생각하면 감사한 마음이 앞선다.


대한항공이든 아시아나든 재벌이 구설수에 오를 때마다 대중은 항공사의 약점들을 찾아 공격하는데, 때로는 애꿎은 승무원들이 그 대상이 될 때가 있다. 승무원들이 비슷하게 꾸민 외양으로 과도하게 친절한 서비스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서로 비슷해 보이는 외양은 '어피'라고 불리는 복장 및 화장 규정 때문이고, 필요 이상으로 친절해 보이는 서비스는 회사의 정책 때문이다. 그런 사실을 생각해보면 그들 또한 재벌 대기업의 피해자이고, 대중의 공격은 과녁을 잘못 겨눈 것이다.


결국 대중의 그것은 폭력의 다른 이름이다. '승무원'이라는 집단 안에 승무원으로 일하는 '개인'을 가두어 놓고, 승무원의 스테레오 타입에 각각의 '개인'을 재단한 것이기 때문이다. 비행기 안에서 조금 더 따뜻하고 세심한 시선으로 그들이 일하는 모습을 본다면 감히 그런 의견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밀도 높은 규정에도 불구하고, 승무원들은 각자 자신만의 개성을 가지고 일한다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화려해 보이는 외면 아래에는 각자의 삶이 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홀로 여행하는 여행자에게는 여행의 시작과 끝을 함께 하는 승무원은 최고의 동행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나는 그들에게 감사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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