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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리학자 J Apr 07. 2019

비 오는 날의 캘리포니아

UC 버클리 캠퍼스 사람들

같은 날의 오전과 오후

캘리포니아에는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다. 그나마 겨울이 되면 비가 자주 오는 편이기는 하지만 3월만 지나면 다음 겨울이 올 때까지 절대 비가 오지 않는다. 그러나 4월 초인 지금, 여전히 비는 오고 있다. 작년에는 이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이상한 마음이 들어 나보다 한참을 이곳에서 보낸 이들에게 물어봐도 이번 겨울과 봄은 이상하게도 비가 많이 온다고 했다. 그들의 말을 듣고 뉴스를 조금 찾아보니 올해 북캘리포니아가 겪고 있는 이런 현상은 대기의 강(atmospheric river)이라는 일종의 이상기후라고 한다. 


끊임없이 내리는 비는 이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적지 않는 영향을 미친다. 1년 내내 햇빛을 보던 이들이 갑자기 두 달 내내 햇빛을 적게 보니 다들 기분이 안 좋은 모양이다. 사실 나 또한 요 며칠은 흐린 날씨 때문인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지난주 내 오피스를 찾은 몇몇 이들이 기분이 좋지 않다며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예를 들면 이렇다. 우리 그룹의 중국인 대학원생 하나와 미팅이 있어 그가 내 방을 찾았다. 나는 그가 방문을 열 때부터 얼굴이 잿빛인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어젯밤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 했다고 미안하다며 일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미팅이 끝나고도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며 방을 떠나지 않았다. 그가 속마음을 터놓고 한 얘기를 요약하면, 요새 너무 압박감을 심하게 느낀다, 쉬어도 편히 쉬지 못한다, 이런 감정들이 날씨 때문인 것 같기는 한데 힘든 건 어쩔 수 없다, 이런 이야기였다. 사실 지난주 내내 같은 식이었다. 누군가 일이 있어 내 오피스를 찾고 근황 얘기를 하다가 결국은 요새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결론으로 끝난다.


사실 학계 자체가 기분 좋을 일보다 좋지 않을 일이 더 많은 동네이긴 하다. 대학원생은 대학원생 나름대로, 포닥은 포닥 나름대로, 교수는 교수 나름대로 각자의 스트레스가 있다. 사실 스트레스라고 가볍게 이야기하지만, 그건 스트레스 이상의 무엇에 가깝다. 일종의 직업병, 학계를 떠도는 전염병 같은 것. 그러나 늘 맑은 캘리포니아의 햇빛은 그 스트레스를 조금이나마 줄여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도 연구를 하다가 힘이 들 때면, 맑은 날의 캠퍼스에서 저 멀리로 내려다 보이는 반짝이는 바다와 그것을 가로지르는 붉은색의 금문교를 보는 것으로부터 조금의 도움을 받고 있었으니까. 어서 다시 밝은 햇빛을 쬘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Chet Baker - <Almost Blue>

하지만 비가 오는 것이 나쁜 일만은 아니다. 캘리포니아는 강수량이 워낙 적어 늘 가뭄으로 고통받는 지역이라고 하는데, 이렇게라도 비가 내리면 고질적인 물 부족에 약간의 도움은 될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비 오는 날의 약간의 즐거움이 있는데 빗소리 가운데에서 쳇 베이커(Chet Baker)를 듣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캘리포니아의 밝은 햇빛 아래에서 듣는 쳇 베이커의 음악은 영 어색하다. 그렇기 때문에 비가 오지 않는 대부분의 계절에는 해가 지고 난 뒤를 기다려 쳇 베이커를 듣는 수밖에 없다. 비가 끊임없이 내리는 지금은 낮에도 쳇 베이커를 플레이리스트에 올려놓기에 적당한 기회다.


때로는 쳇 베이커처럼 우수에 찬 음악들이 마음을 아프게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런 음악들이 마음을 위로해 주기도 한다. 비 오는 날에 듣는 차분한 노래들은 더욱 그렇다. 비 오는 날의 버클리가 우울하기도, 반갑기도 한 것은 마찬가지 이유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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