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물리학자 J Jan 27. 2020

2019년 독서 결산

대도시의 사랑법

2019년 44권, 매월 3.75권 읽음

올해의 책 : "대도시의 사랑법" (박상영)


2009년부터 꾸준히 독서 결산을 해왔다. 벌써 11년째인 셈인데, 올해는 새로운 플랫폼에서 독서 결산을 하게 된다. 10년 전에는 이글루스에서 글을 써왔다. 물론 브런치에 글을 쓰듯, 형식을 갖춘 긴 글을 썼다기보다는 그때그때의 생각과 감정들을 기록했었다. 누구에게 보라고 쓴 글들은 전혀 아니었지만 이글루스가 침체된 뒤로 글 쓰는 재미가 덜 해져 브런치로 옮겨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해의 독서 결산은 이글루스에 올렸었는데, 이제 그마저도 브런치로 옮기려고 한다.


지난 한 해를 뒤돌아보면 아주 만족스러운 한 해는 아니었지만, 후회가 많이 남는 한 해도 아니었다. 이제 미국 생활에도 어느 정도 익숙해졌고, 비록 농담이지만 먼 땅으로 유배와 학문을 하는 선비와 같은 삶이라고 스스로에게 농을 던질 여유도 생겼다. 여전히 삶은 늘 잔잔한 물과 같지만 않지만, 재작년처럼 매일매일이 몰아치는 격류와 같지는 않았다. 이제야 평범한 삶으로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다. 연구도 마찬가지다. 이제 조금씩 예전의 생산성을 되찾고 있고, 늦었지만 이곳에서 새로 쓴 논문도 두 편 나올 예정이다. 누구에게나 삶은 늘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조금씩이나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은 삶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올해에 읽은 책들을 쭉 살펴보며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책을 생각해보면, 박상영의 "대도시의 사랑법"을 꼽고 싶다. 나뿐만 아니라 2019년의 모두들이 좋아한 소설이긴 하지만, 다들 좋아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어떤 이들은 박상영의 소설이 퀴어 문학이라서 좋아했을 것이고, 어떤 이들은 그의 소설의 유쾌함 때문에 좋아했을 것이지만, 나는 그의 소설이 여기 지금 우리 젊은이들의 삶을 그리고 있기 때문에 인기를 끌었다고 생각한다.


박상영의 인물들은 항상 무언가를 잃은 이들이다. 무엇 때문에 잃었는지는 때마다 다르다. 그들이 처한 경제적 상황 때문일 수도, 그들이 동성애자이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들은 늘 잃었고 또 잃는다. 사회의 '주류 시각'에서 본다면 그들은 철저하게 실패한 이들이고, 실패해야 마땅한 삶의 태도를 가진 이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찌 보면 그들의 잃음은 다른 잃음을 낳는다고 볼 수도 있다. 강남 목 좋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마용성'과 같은 서울의 집값 폭등과 재테크를 이야기하는 이들이라면, 한 번의 실패가 다른 실패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박상영이 대표하는 이들은 다르다. 그들은 한 번 실패하면 모든 것을 잃거나, 앞으로의 모든 가능성을 잃는다. 그런 상황에 처했을 때 박상영의 인물들이 선택하는 것은, 사랑이다. 사랑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않고, 오히려 그 사랑이 각자의 상황을 더 안 좋게 몰고 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랑의 끝이 산산조각 난 결말뿐이더라도, 그들은 순간순간의 사랑에 충실하며 우직하게 그 끝을 향해 사랑한다. 그것이 '대도시의 사랑법'인 동시에 '대도시에서 사는 법'일지도 모른다. 


예전에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에서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를 보고 박상영을 눈 여겨봤었다. 그리고 그 기대는 옳은 것이었음을 이번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어쩌면 88년생 작가 박상영의 출현은 한국 문단의 세대교체를 알리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한동안 70년대생을 전후로 한 세대의 작가들이 한국 문단을 쥐고 있었다. 그들의 문학적 성취는 분명 눈부시고, 그들 중 몇몇은 내 '최애' 작가에 올릴 수 있을 정도로 나는 그들을 좋아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나와 내 또래가 하고 싶은 이야기, 듣고 싶은 이야기와 어느 정도 거리가 있었다.  


올해의 책으로 선정하지는 않았지만, 신형철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황석영의 "해질 무렵", 김진영의 "아침의 피아노", 앤드루 포터의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최은영의 "쇼코의 미소" 또한 내가 즐겨 읽었던, 동시에 함께 아파하며 읽었던 책이다. 이중 어떤 책을 박상영의 책과 함께 올해의 책으로 정하더라도 스스로 이견이 없었을 책이었다. 



2019년에 읽은 책 리스트

1. 상반기

사랑받지 못한 사내의 노래 (기욤 아폴리네르)

7번국도 Revisited (김연수)

심경부주 : 마음을 다스리는 법 (진덕수, 정민정 공저 / 이한우 역)

우리가 꿈꾸는 나라 (노회찬)

진보의 재탄생 : 노회찬과의 대화 (노회찬)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신형철)

당신이 내게 말하려 했던 것들 (최대환)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박준)

언젠가, 아마도 (김연수)

영혼 없는 작가 (다와다 요코)

야망의 시대 새로운 중국의 부, 진실, 믿음 (에번 오스노스)

해질 무렵 (황석영)

아침의 피아노 철학자 김진영의 애도 일기 (김진영)

내가 있는 곳 (줌파 라히리)

다시 쓸 수 있을까 (테오도르 칼리파티데스)

댈러웨이 부인 (버지니아 울프)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김영민)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10주년 특별판 (김애란, 편혜영, 이장욱, 황정은, 손보미 공저 외 2명)

심 탈레브 스킨 인 더 게임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2. 하반기

바우돌리노 상, 하 (움베르토 에코)

어느 푸른 저녁

반딧불이 (무라카미 하루키)

가장 사소한 구원 : 70대 노교수와 30대 청춘이 주고 받은 서른 두 통의 편지 (김현진, 라종일)

프라하의 묘지 1, 2 (움베르토 에코)

곰 (윌리엄 포크너)

윌리엄 포크너 : 에밀리에게 바치는 한 송이 장미 외 11편 (윌리엄 포크너)

어제의 세계 (슈테판 츠바이크)

숨 : EXHALATION (테드 창)

대도시의 사랑법 (박상영)

문명은 지금의 자본주의를 견뎌 낼 수 있을까 (놈 촘스키)

공간 혁명 (세라 윌리엄스 골드헤이건)

처음 읽는 바다 세계사 바다에서 건져 올린 위대한 인류의 역사 (헬렌 M. 로즈와도스키)

로쟈와 함께 읽는 문학 속의 철학 (이현우)

진이, 지니 (정유정)

유발 하라리의 르네상스 전쟁 회고록 : 전쟁, 역사 그리고 나, 1450~1600 (유발 하라리)

그리하여 흘려 쓴 것들 (이제니)

우리에게 잠시 신이었던 (유희경)

피츠제럴드 (최민석)

로마법 수업 : 흔들리지 않는 삶을 위한 천 년의 학교 (한동일)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앤드루 포터)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 왜 민주주의에서 마음이 중요한가 (파커 J. 파머)

시절일기 (김연수)

쇼코의 미소 (최은영)



지난해의 독서 결산들

2009년 읽은 책들 결산

2010년 상반기 읽은 책들 결산

2010년 읽은 책들 결산

2011년 상반기 읽은 책들 결산

2011년 읽은 책들 결산

2012년 상반기 읽은 책들 결산

2012년 읽은 책들 결산

2013년 상반기 읽은 책들 결산

2013년 읽은 책들 결산

2014년 상반기 읽은 책들 결산

2014년 읽은 책들 결산

2015년 상반기 읽은 책들 결산

2015년 읽은 책들 결산

2016년 상반기 읽은 책들 결산

2016년 읽은 책들 결산

2017년 상반기 읽은 책들 결산

2017년 읽은 책들 결산

2018년 읽은 책들 결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