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 베이 에어리어 일상 - 3
판데믹으로 인해 미국 캘리포니아에 자택 대피령 (shelter-in-place order)가 떨어진 지 반년이 다 되어간다. 내가 2월 초에 한국에 잠시 다녀온 뒤로 계속된 것이니, 출근도 야외 활동도 하지 않고 5달쯤 지난 샘이다. 가끔 바람을 쐬러 나가거나 장을 보러 다니기는 하지만, 카페며 음식점이며 미술관이 모두 닫았으니 따로 돌아다닐 일이 없다. 마땅히 놀 일이 없으니 집에서 하는 거라곤 (대부분) 일을 하거나, (틈틈이) 넷플릭스/왓챠플레이를 보는 게 일상이다. 물론 생활의 난이도는 그때와 비교할 것은 아니겠지만, 조선시대 선비들이 유배를 가서 할 일이 없으니 공부를 하거나 글을 쓰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글의 제목이 '유배가사'인 것은 그 이유 때문이다.
그래도 이 '코로나 유배' 동안 얻은 것도 있다. 일단 주저자 논문을 3편 마무리해서 심사를 기다리고 있고, 그동안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하지 못 했던 인접 분야 공부를 할 수 있었고, 집에 있는 동안 식단 조절이 되니 약간의 다이어트도 할 수 있었다. 매일 갇혀서 일만 한다고 투덜이 스머프처럼 투덜대기만 하지만,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그렇게 투덜 댈 것은 또 아니었던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물론 인스타를 켜서 근사한 맛집에서 재밌게 보내고 있는 한국의 친구들을 보면 다시 투덜이로 돌아간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미국까지 와서 그 고생일까."
물론 6월에 잠깐 코로나가 진정된 것처럼 보이던 때 (사실은 폭풍전야였다), 시간을 내서 친구들과 나파 밸리에도 한 번 다녀왔다. 이렇게 사진만 놓고 보면 되게 좋아 보이지만 사실 반년 동안 거의 유일한 유흥이었다. 물론 식당은 여전히 열지 않아서 내가 좋아하는 레스토랑에는 가지 못 했지만, 그래도 나파는 늘 좋다. 언제 다시 한번 가서 평소처럼 재미있게 보낼 수 있을지. 어서 코로나 백신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물론 그게 나올 때쯤이면 나는 아마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에 돌아가지 않을까 싶지만 (제발).
집에만 있으니 시간이 많아 새롭게 도전한 게 있는데, 바로 베이킹이다. 그동안 미국에서 자취하면서 밥을 자주 해 먹어서 요리에는 자신이 있었는데, 베이킹은 또 다른 영역인 것 같아 여태 도전하지 못했었다. 그러던 중 동네 아는 동생이 엄청난 베이킹 능력자인데 (엄청난 천체물리학자이기도 한) 그 친구의 부추김을 받기도 하고, 집에서 사는 낙이 없으니 달달한 거라도 해 먹자 싶어서 시작했는데 나름 결과물이 나쁘지 않다. 미국 사는 동안 확실히 는 거라곤 요리, 베이킹, 칵테일뿐이다. 공부를 이렇게 해야 하는데.
코로나로 인한 유배 생활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름 잘 지내려고 노력 중이다. 비록 미래에 대한 불확정성을 안고 살아가야만 하는 포닥의 삶이 이따금 내 감정을 요동치게 하곤 하지만, 그거야 내가 치러야 할 몫임을 알고 있다. 이루고 싶은 미래가 손끝에 아른거린다고 느껴지는 달콤한 기대감도, 그것이 손가락 사이로 흩어질 것만 같은 씁쓸한 불안함도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