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화이자 백신 맞은 후기
2월이 지나며 미국의 백신 접종은 한결 빨라지고 있다. 주마다 다르겠지만 캘리포니아의 경우, 백신 접종은 여러 단계(phase)로 나뉘어 있고, 의료 종사자를 대상으로 하는 페이즈 1A가 최근 거의 마무리되었다고 한다. 이제 차순위 직종에 해당하는 사람들과 65세 이상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페이즈 1B 접종이 이루어지고 있다. 나로서는 운이 좋게도, 교육 및 육아 분야 종사자가 페이즈 1B에 해당됐고, 그중에서도 연구자는 필수 노동자(essential worker)로 분류되어 2월 중순부터 접종 대상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렇다고 바로 백신을 맞을 수는 없었는데, 백신 물량 부족으로 인해 2주를 기다리고 나서야 어렵게 백신 접종 예약을 하고, 지난 화요일에 화이자 백신을 맞을 수 있었다.
내가 백신을 맞은 곳은 오클랜드 A's의 홈구장인 콜리세움 경기장이었다. (아직 메이저 리그 개막 전이지만) 평소라면 야구의 열기로 가득해야 할 공간이 지금은 대량 백신 접종소가 되었는데, 대부분의 직원이 군복을 입은 주정부군이어서 마치 군사 시설 같은 느낌도 들었다. 게다가 콜리세움 경기장 자체도 오클랜드시의 슬럼화된 지역에 있어서, 역에서 내려 경기장까지 가기 위해서는 위험한 주변으로부터 야구 관람객을 보호하기 위한 아주 높은 철제 펜스 사이를 지나야 했다.
어쨌든 접종을 도와주는 군인들은 매우 친절했고, 덕분에 편한 마음으로 백신을 맞을 수 있었다. 접종 후에는 관찰실에서 15분의 대기를 한 후 집에 돌아가도록 안내받았는데, 자원봉사로 오신 것으로 보인 할머니들이 물병을 하나씩 나눠주셨다. 백신을 맞고 나면 위의 사진과 같은 백신 접종 기록 카드를 주는데, 현재로서는 2차 접종 방문 시 확인 이외에는 전혀 쓸 데가 없다. 하지만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백신 접종을 받을 경우, 군중 밀집시설에서 활동을 보장하는 그린 패스로 쓰일 가능성을 예측하는 사람도 있다.
백신 접종 후 나의 경우 신체적 이상 반응은 없었다. 집에 와서 약간 피곤하긴 했는데, 오는 길에 전차 시간을 놓쳐 밖에서 30분 서 있었던 게 피곤했던 건지, 아니면 백신 접종 후 면역 형성 과정에서 오는 피곤함인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접종 다음날 아침에 주사 맞은 팔 근육이 엄청 아픈 것도 있었는데, 독감 백신 맞았을 때와 큰 차이가 있지는 않았고, 그마저도 반나절 이후에 사라졌다. 통계 연구에 의하면 첫 번째 도즈를 맞은 이후, 약 10~12일이 지나서야 면역이 형성된다고 하는데 그전까지는 백신을 맞지 않은 것처럼 행동해야 된다고 한다. (물론 어떤 백신도 완벽하지는 않으므로, 개인 방역은 두 번째 도즈 접종 이후에도 당연한 이야기이긴 하다.)
백신 접종 관련해서 느낀 것 중, 몇 가지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것이 있다. 첫 번째는 백신 접종에서도 인종에 따른 편차가 발생한다는 것인데, 3/4 기준 캘리포니아 주정부 통계에 의하면 백인의 32.4%가 백신을 맞을 동안, 흑인의 단 2.9%만이 백신을 맞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백인 외 다른 인종도 마찬가지인데, 라틴계는 17%, 아시아계는 12.3%에 머물러 있다.) 백신이 엄청나게 모자라는 현재 상황에서 이러한 인종적, 경제적 차별이 기본적 생명권에 대한 차별까지 이어지는 양상을 보인다.
이런 일이 벌어진 이유에 대해서는 추론만 가능한데, 운 좋게 백신 접종을 받을 수 있었던 내 경험에 의한 추론은 이렇다. 현재 백신이 매우 모자란 상황이어서, 그중 많은 물량이 온라인 신청을 통해 분배된다. 그런데 이럴 경우 마치 수강신청이나 BTS 콘서트 티켓팅을 방불케 하는 클릭 전쟁으로 이루어진다. 나도 몇 차례의 실패 끝에 겨우 예약을 할 수 있었을 정도였다. 이때 교육 수준이 낮거나 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은 비백인계의 경우 백신 접종 신청 자체가 어려운 환경에 놓일 수 있다.
인종 이야기는 한국과는 상관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교육 수준과 경제적 불평등은 한국 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문제다. 물론 한국의 경우, 강한 행정력과 주민등록 시스템 때문에 백신 접종 과정에서 사회적 약자를 커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회와 정부의 세심한 배려와 계획이 없다면 미국에서 벌어진 비극이 한국에서도 반복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두 번째로 지적하고 싶은 사실은 백신에 대한 피상적 이해로 인한 일부 백신에 대한 불신과 부작용에 대한 과도한 공포다. 이는 일부 언론과 정치세력의 책임이 크다. 그들이 어떤 목적에서 그랬는지에 대해서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이 통계와 데이터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들의 피상적인 이해는 결국 대중의 공포로 이어지고, 결국에는 시민들에 대한 실제적 피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보통 집단 면역을 이루기 위한 매직 넘버가 인구의 70%라고 하는데, 이 숫자는 결코 달성하기 쉬운 숫자가 아니다.
내가 비록 백신이나 통계 분야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과학자로서 백신 관련 논문을 읽고 언론에서 놓치고 있는 논문의 핵심적인 주장을 이해할 수는 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한국의 일반 대중이 맞게 될 백신 중 많은 수량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인데, 아스트라제네카의 예방 효과(또는 예방률)가 60~70%고, 화이자나 모더나 백신의 경우 95%이므로 아스트라제네카는 물백신이라는 말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예방 효과"는 매우 주의해서 이해해야 되는 말로, 보통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예방 효과와 과학자들이 논문에서 이야기하는 예방 효과는 다르다. 화이자의 예방 효과가 95%라고 하는 것은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 (NEJM) 저널에 발표된 화이자 임상 시험 결과 논문에서 나온 말인데, 위 그림에 나온 vaccine efficacy의 번역어이다. Vaccine efficacy를 구하기 위해서는 대조군(플라시보)과 백신접종군의 코로나 감염자 비율을 구하는데, 위 그림에서 보듯이 그 비율은 8/162=4.94%이므로 vaccine efficacy는 약 95%가 나온다는 것이다.
이렇게 말로 설명하기도 쉽고 직관적인 이런 숫자를 과학자들은 figure of merit (FoM)이라고 부른다. FoM은 엄밀하지는 않지만 어떤 현상을 직관적으로 묘사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사용하는데, 과학자들이 FoM을 사용할 때는 그 한계를 분명히 인지하고 사용한다. 하지만 언론의 지적 불성실함은 FoM이 가진 이런 한계를 버리고, 그 숫자를 피상적으로 다룬다. 이미 여러 전문가들이 지적했듯이, vaccine efficacy는 임상시험이 실시된 곳의 코로나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가에 의존하는 숫자다. (단순히 대조군과 백신접종군의 코로나 감염자 숫자를 나누어줬다고 해서 임상시험지의 외부요인이 FoM에서 쉽게 제거되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전혀 다른 상황에서 실시된 두 임상 시험의 vaccine efficacy를 비교할 수는 없는 것이다. 만약 여러 종류의 백신을 비교하려면, 동일한 조건에서 실험군을 구성했을 때에야 다른 종류의 vaccine efficacy를 직접 비교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언론에서 다루는 백신 예방 효과 비교는 아무런 과학적 근거도 없다고 할 수 있다.
백신 부작용에 대한 공포도 마찬가지다. 최근 아스트라제네카 접종이 시작되며 언론에서는 연일 "백신 접종 후 사망자 발생"과 같은 비이성적 보도 행태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미 훨씬 많은 숫자가 접종을 마친 다른 국가들에서 백신 부작용으로 인해 사망에 이르렀다고 인정되는 사례는 (내가 알기론) 없다. 마치 작년 말의 독감 백신 사건으로부터 언론이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것 같은데, 결국 독감 백신과 사망의 인과성이 인정된 사례는 전무하다.
물론 코로나 백신이 과거 다른 백신에 비해 훨씬 빠른 속도로 개발된 것은 맞다. 그러나 기존 백신은 판데믹 상황에서 개발된 것이 아니었으므로, 코로나 백신 개발과 같은 선 상에서 비교하기는 어렵다. 기존 백신의 개발 기간에는 임상 시험과 연구 이외에 행정적 절차에 대한 시간도 큰 비율로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쉽게 말해 "정부에 서류를 제출한 지가 언젠데 왜 이리 심사가 늦는 거지"하는 식) 또한, 현대 백신 검증 과정은 매우 철저하여, 가천대 예방의학교실 정재훈 교수에 의하면 1976년 이후 최근 50년 동안은 백신에 의한 대규모 부작용 피해 사례는 없다. 게다가 백신 검증은 국가별로 이루어지며, 미국의 FDA나 한국의 식약처와 같은 모든 국가의 검증 기간이 동시에 오류를 일으킬 가능성은 희박하다.
백신에 대한 불신은 단순히 불신에 그치지 않고, 윤리적 문제를 수반한다. 개인의 이해 부족으로 인한 백신 거부가 모이면, 그만큼 판데믹 종식은 늦어진다. 경제 회복 지연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둘째로 치더라도, 판데믹 종식이 늦어지는 만큼 발생하는 인명 손실은 어떻게 할 것인가. 백신에 대한 불안을 이야기 하기는 쉽다. 그러나 그 근거 없는 불안이 수반하는 윤리적 문제는 지나치기 쉽다.
가벼운 백신 접종 후기로 시작했다가 이야기가 길어졌다. 부디 이 판데믹이 하루라도 일찍 끝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