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에 걸린 가족 사이에서 홀로 생존하는 법

2025. 1. 9. 10:10

by 가보리다



1.


전국적으로 독감이 유행이란걸,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지난 연말, 벚꽃아우디 송년모임에 왕언니가 독감이라며 결석하셨을 때, 아..독감 걸린 사람이 많구나..하고 느꼈지요.
그래도 내가 걸린건 아니니까 남일인줄 알았는데,
'독감'이라는 단어를 인식한 그 다음날, 큰딸이 몸살과 두통을 호소하였습니다.


우리집에서 이런 유행병의 선도는 늘, 병약하고 호기심 많은 큰딸이 합니다.
다행히 벚꽃아우디 조원장님의 빠른 수액 치료 덕분에, 이번 독감은 큰딸 선에서 선방하였습니다.
(벚꽃아우디 조원장님은, 제 글에 종종 등장하시는 내과 원장님이십니다. 아이유치원때 같은 학부모의 인연으로 만나, 제 가족의 주치의가 되셨습니다. 방배역2번출구 참나은내과)



2.


그런데, 갑자기 독감 걸린 가족들 사이에서 혼자 생존하는 법이라니..뜬금없습니다. 이런 주제를 써 재꼈던 과거의 저를 원망하며 생각해봅니다.


나는 그때 왜 이런 생각을 했을까요?
아마 큰딸이 독감에 걸렸던 직후라서였나 봅니다.
막막한 주제를 만날 때마다, 저는 가족들의 도움을 받습니다.
“남편! 당신은 가족들이 모두 독감에 걸렸을 때 혼자 생존하는 사람의 자세가 뭐라고 생각해?”
“ 그거야 뭐, 마스크 잘 쓰고, 비타민 많이 먹고, 위생관리 철저히 하며 격리생활 하는 거지 뭐.”
“너무 뻔해. 좀 더 창의적인 거 없어?”
“가출하기”


오~ 재미없는 아저씨치곤 상당히 파격적인 대답이라 일단 칭찬해줬습니다.
큰딸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는데, 큰딸은 대답을 피하더군요.
“그 질문에는.. 내가 할 말이 없어. 왜냐하면 우리집에서 항상 내가 먼저 걸려서”
마지막으로 둘째 예똥이에게 물었는데 쿨한 반응이 돌아왔어요.
“혼자 생존해야 해? 그냥 같이 걸리면 안돼?”
오! 둘째는 우리 가족중에 가장 말 수가 적지만 가끔 정곡을 찌릅니다.


네.
그렇지요.

가족들 모두 아픈데 혼자 바등바등거리는 것도 좀 우습긴 합니다.



3.


그런데, 가보리다패밀리 안에서는 누룽지조아씨와 두딸이 모두 감기에 걸렸는데, 저 혼자 멀쩡하거나,
아니면 반대로 저만 걸리고 나머지 3명은 멀쩡한 케이스가 여러번 있었습니다.
그건 좀 신기한 일입니다.
가보리다클럽 집사인 가보리다는 나머지 가족들과 1대1로 상대하는 시간이 가장 많은 사람이라는 점에서 말입니다.
큰딸과 아빠가 같이 있을 시간은 아침 30분, 저녁30분 정도지만, 저는 큰딸이 학교가 있을 몇시간을 빼면 거의 같이 있거든요.
추측컨데, 나머지 3명이 가지고 오는 다양한 바이러스에 너무 자주 노출되어서, 평소에 자질구레하게 감기를 앓고 면역을 만들어 놓았던 영향이 아닐까 합니다.

2022년 1월 설 무렵, 독성이 약해지긴 했지만, 아직도 공포심이 대한민국을 지배해서, 코로나에 걸리면 2주간 격리를 해야 했던 그 때, 남편이 회사 회식자리에서 코로나에 걸려왔습니다.
아빠의 확진을 확인한 후, 저와 두 딸도 반포터미널 코로나 선별 검사소에 가서 코로나 검사를 받았지요.
결과는 두 딸만 양성. 저는 약한 목감기 기운이 있긴 했지만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았습니다.
겨울방학이 끝나고 봄방학까지 사이 짧은 등교를 해야 하는 시기였는데, 병결 격리처리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학교를 안간다며 신이 났습니다.
이 집안에서 코로나 환자가 아닌 사람은 저 혼자였지요.
그 2주간, 저는 혼자 집안의 모든 일을 다 했습니다. 소독, 빨래 등의 위생 관리부터, 마스크 재고관리, 구청에서 주는 지원금신청, 학교에 제출해야 하는 서류 작성등등 신경 써야 할 일들이 많았지요.
다른집들은, 가족 한명이 걸리면 2주 간격으로 돌아가며 옮겨갔다던데, 신기하게도 저는 그 이후에도 멀쩡했습니다.
아마 가족 3명을 보필하라는 하늘의 뜻이었나봅니다.


4.


그리고 1년뒤 2023년 1월. 앤데믹을 바라보던 코로나 막바지에. 드디어 가보리다도 코로나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그 즈음 코로나가 많이 약해졌다고 했는데, 저는 무척 아팠어요.
비상상황이었습니다.
저는 이 집안에서 가족들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니까요.
저로 인해 다른 가족들이 옮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스스로를 고립시켰습니다. 제 방안에 들어가서 3일동안 나오지 않았습니다. 필요한 물건이나 약을 먹을 때는 마스크를 쓰고 마루에 나왔으며, 수분 보충을 위한 이온음료를 침대 옆에 두고 그저 하루 종일 자다 깨는 것을 반복하며 홀로 견뎠던 듯 합니다.

그것은 제 본능이었습니다.
나의 자녀에게 내 감기를 옮기지 말라. 나의 자녀를 보호하라.


그렇습니다.
저는 아파도 ‘엄마’였습니다.
저는 제가 ‘엄마’라는 것이 자랑스러운 ‘전업 엄마 엠버서더’입니다.


5.


저는 요리를 잘하거나 살림을 잘하는 주부9단이 아닙니다.
제 요리의 비결은 조미료 ’연두’이며, 식세기, 건조기, 무선청소기가 있는 세상에 늘 감사합니다.


하지만 나의 딸들에 관련된 아주 작은 일에도 저는 저의 모든 신경을 쏟습니다. 그 누구 보다 많이 고민하고, 결단하고 실행합니다.
저의 하루는 딸들을 깨우는 것으로 시작되며, 딸들이 모두 집에 무사 귀가를 하고 난 10시 이후에야 저의 업무가 종료됩니다.

가끔, 사람들을 잘 설득시키고, 입시정보에 관심이 많은 저의 달란트를 높게 본 몇몇 지인들이 저에게 ‘학습컨설턴트’나 ‘학원 데스크 실장’ 쪽으로 취직해보라고 권하기도 합니다만, 저는 늘 내켜 하지 않았습니다.
그건, 그 학원의 업무시간들이 늘 제가 제 딸들에게 저녁간식을 챙겨주고, 학원 가방을 바꿔 매어줘야하는 시간과 겁쳤기 때문이었습니다.
가족은, 저의 정체성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6.


가족이 나의 정체성이다…라는 깨달음은 어느 날 문득 다가왔습니다.
2003년 1월1일 0시, TV를 통해 보신각 타종행사를 보면서 말이지요.
10대의 가보리다는 늘 궁금했습니다. ‘나는 왜 태어난 걸까?’, ‘내가 이 세상에 있는 이유는 뭘까?’

이 질문의 대답을 찾으려 많은 책들을 읽었습니다.
브리테니커 백과사전부터 그리스로마신화, 손자병법, 그리고 아이작아시모프의 sf소설들 까지요. 그렇지만 찾을 수 없었습니다.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물어볼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런 쓸데 없는 생각할 시간에 영어단어 한 개나 더 외우라는 타박을 들을 것 같아서요.


이유 모를 답답한 질문을 안은 채 서른해를 살았고, 서른살이 되던 2003년 1월1일 0시, 마침내 그 해답을 찾은 것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스스로.
하늘의 계시처럼.



7.


애초에 질문이 잘못되었던 것이었죠.
‘나는 왜 태어난’것이 이니었습니다.
저는 그저 '우연히 태어났던 것'이었죠. 제가 이 세상에 있는 이유는 단 하나, 부모님, 이여사 최사장님께서 절 낳으셨기 때문이었죠.
그것이 제 존재의 전부였습니다.
이여사 최사장의 딸.


나비나, 지렁이일 수도 있었습니다. 따스한 가정에서 사랑받으며 자랐고, 부모님께 제법 훌륭한 유전자도 물려받았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할 이유가.
이 깨달음은, 4년뒤, 제가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면서 한번 더 진화했습니다.
이젠 물려줘야했거든요.
저의 깨달음을요.


저는 저의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있었습니다.
저처럼 인생의 해답을 찾기 위해 오랫동안 방황하지 않길 바랐습니다.
그래서 두 아이의 엄마가 된 후 하루 하루 최선을 다했습니다.
지금은 사춘기 자녀를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해주기 위해 노력 중 이며,
그 보다 더 근원적인 숙제, 성인이 되어 독립해 나갈 자녀에게 어떤 엄마로 남아야 하는 가에 대하여 매일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 글쓰기 프로젝트는,
그러한 엄마 가보리다의 성장일기 입니다.


8.


아이를 낳는 것이 너무 무섭다며,
자신은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는 안낳을 것이라던 큰딸이 어느날 말했습니다.


“엄마, 난 이제서야 엄마가 나를 왜 사랑하고 나만 바라보는지 알겠어.
나는 엄마인생의 일부였던 거야.
내가 나 스스로 기억도 못했던 갓난애기 시절부터 지금까지.
나의 인생 한순간 한순간에 모두 엄마의 시간이 들어있던 거였어.
그건 마치 예술가가 자신의 조각이나 미술작품을 내 놓는 것 같은 걸꺼야.
나는 엄마의 모든 시간이 담긴 예술작품이니까.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친구나 엄마나 뭐가 다르냐며, 자신외의 모든 타인들은 바깥세상 취급하던 그녀가 드디어 저의 짝사랑을 받아주었으니까요.
저.. 이만하면 성공한 엄마인 것 같습니다.
고맙다. 딸아.

2003년 깨달음 후 11개월 후 자비출간했던 나의 책 머릿말과 맺음말


…..아! 그래서 독감바이러스 사이에서 홀로 생존하는 방법이 뭐나고요?

모르겠습니다.
알게 뭡니까?
가족이 없다면 혼자 생존해야 할 이유가 없어요.

어차피, 가보리다에서 유익한 정보를 찾으려고 오신 건 아니시죠?
원래 제 글의 제목은 이야기의 화두일뿐, 저는 늘 제 이야기를 하잖아요.

저는 이만 총총

언젠가 둘째딸이 만들었던 눈사람


#가보리다
#무책임한결말
#모르는것은모른다고말하는
#뻔뻔함과솔직함의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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