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가 네모라고 주장하는 법(이라고 말하지만)

2025. 1. 10. 10:00

by 가보리다

1.


지구가 네모라고 주장하는 방법이라니, 이런 말도 안되는 주제를 뱉어놓고선 골머리가 아팠습니다.

지구 둥글다는 것은 세살 먹은 어린애도 다 아는 데, 무슨 방법으로 지구가 네모라고 우겨볼 수 있을 까요?

화이트의 ‘네모의 꿈’을 들으면서 자기최면을 걸었습니다 .

‘나는 지구가 네모라고 믿는 사람이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은 책을 단 한권만 읽은 사람이다. 나는 지금 네모의 꿈 한권만 읽은 사람이다’

원래, 무식한 사람이 신념을 가는 것이 가장 무섭다고 하지요.

가보리다의 비합리성도 만만치 않으니, 까짓 잠시 또라이 신념(지구가 네모라는)을 가지는 것이 그리 힘들진 않을 듯 했습니다.



2.


믿어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힘드네요. 이 주제를 끌고 나갈 수 있을까요?

지구평면설을 주장하는 이들은 꽤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조차 지구가 정육면체라는 주장은 하지 않았습니다.

아, 하늘에 떠 있는 해나 달도 동그란데 지구만 네모라면 누가 믿겠습니까?

이 주제에 회의가 들기 시작했습니다.



3.


글을 풀어가기 막막할 때 마다, 저는 가족들의 도움을 받습니다.

“예똥아, 너는 네가 틀리다는 것을 뻔이 알면서 끝까지 우길 때 어떤 방법을 쓰니?”


둘째 예똥이가 발끈했습니다.

“내가 끝까지 우길때는 그게 옳다고 믿을 때거든? 한번도 틀리다고 믿은 적 없어!”


실패….

다시 질문했습니다.

“그렇다면, 말로 안되는 일인데, 상대가 계속 옳다고 주장할 때 넌 어떻게 하니?”

“말이 안통하는 답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주로 엄마겠네?”

“아빠도 있어.”

“좀 슬픈데? 엄마 아빠가 말이 안통하는 사람이라니까 말이야”

“사실 내 이야기를 끝까지 주장할 만큼 가까운 사람이 엄마 아빠 뿐이거든.

“그렇군”


간만에 둘째와 대화다운(?) 대화를 했습니다.

평소, 엄마의 질문에 비협조적이던 둘째가 대답을 잘해주니 기회다.. 싶어었어요. 웬지 둘째와의 말을 이어가면 이번 글쓰기에 실마리를 풀 수 있을 것 같습니다.



4.


둘째도 엄마의 나긋한 반응이 좋았나봅니다.

식탁아래로 둘째의 발이 슬금 슬금 제 쪽으로 오더니, 제가 신고 있던 오른쪽 슬리펴를 자기 쪽으로 끌고 가버렸습니다. 그리고 남은 슬리퍼 한짝도 노리는 듯, 제 슬리퍼 위에 발을 턱 올려 놓더군요.


“그런데 지금 엄마 슬리퍼 한짝은 왜 가지고 갔어?”


“그거야 내 발이 시려우니까.”


“그렇다고 엄마가 신고 있던 신발을 뺏어가는 건 너무한거 아냐?”


“엄마 슬리퍼가 가장 가깝잖아. 그리고 엄마도 내가 귀엽다고 하면서 맨날 쿡쿡 찌르잖아. 그거랑 똑같은 거야”


오호! 이 놈이 상대를 잘 안해줘서 그렇지, 사실 우리집에서 말꼬리 잡기는 예똥이가 갑입니다.

지구 네모설이고 자시고, 오늘은 이놈 이야기로 결정했습니다.



5.


"그런데, 네가 엄마 슬리퍼를 가져간 거는 절도고, 엄마가 널 귀엽다면서 가끔 쿡쿡 건드리는 것은 굳이 말하자면 추행인데,

같은 논리로 대응하는 것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해 "


“이거 엄마한테 배운 건데?​

엄마랑 나랑 싸울 때 가끔 말도 안되는 두 사건을 연결시켜 굳이 공통점을 만들어서, 나를 이기려고 하잖아.

엄마는,

예전에 이미 다 혼나고 완료된 사건과 현재 진행중인 사건의 공통된 부분을 끌고와서 ‘너는 이런 사람이다’ 라는 프레임을 씌워서 나를 공격해.

내가 어제 운동 안하는 것은 어제 이미 다 혼나서 종결된 건인데,

오늘 숙제 안한 일이 마음에 안든다고 다시 꺼내와서

‘너는 게으른 사람’이라고 규정지어버리는 거 말이야.


그리고 말이 나온 김에 말하자면,

엄마가 자주 쓰는 공격방법 중에는 또 '매듭 자르기'라는 게 있어.

일단, 내가 한 말을 극단적으로 왜곡해서 공격을 해.

내가 그림도 그리고 공부도 하겠다니까, '그렇다면 넌 그림만 그리고 공부는 안하겠다는 거지? '하면서 사실을 과장하거든.

그리고 항상 '그럴꺼면 공부 때려 쳐! ' 로 끝나.

이 것도, 비논리적인 사람들이 주장의 근거가 부족할 때 쓰는 방법중 하나거든?

논리의 매듭이 꼬려 있을 때,

이를 푸는 대신 주제를 다른 쪽으로 돌리면서 화두를 바꿔버리는 거!”



6.


여기까지 읽은 이웃분들, 감탄하셨죠?

저도 놀랐습니다.

늘 언니와 엄마의 수다에 무심하고, 그림 그리는 데에만 관심이 있는 줄 알았던 둘째가 이런 논리적인 반박을 할 줄을 생각도 못했습니다.

둘째는 내친김에, 비합리적인 사람들이 쓰는 논리적 오류에 대하여 몇가지 더 이야기 했습니다.


“순환논법이라는 것이 있는 데, 자기 주장의 근거로 또 다른 자기의 주장을 가지고 와서 제시하는 거야. 주장의 연결이며 모순인데, 비합리적인 사람들은 몰라. 대표적인 예로 네이버 사전에서 ‘음란’을 검색하면 뜻이 ‘음탕하고 난잡한’이라고 나오거든? 그래서 ‘음탕’을 검색하면 다시 ‘음란하고 방탕한’이라고 뜨는 식이지.


또 다른 비논리적인 전개로, ‘시간의 흐름’을 들 수 있어. 사건 두개가 연달아 일어났다고, 앞 사건이 뒷 사건의 원인일 수 없다는 거야.

예를들어, 민수가 자기 전에 ‘내일은 해가 동쪽에서 뜨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한 사건이랑, 내일 진짜 ‘해가 동쪽에서 뜬’ 것은, 서로 인과관계가 될 수 없어. 하지만 비합리적인 사람들은 이 둘을 연결해서 자기 논리의 근거로 써. 주로 사이비 교주들.”



7.


둘째는 저에게 이런 조언도 해 주었습니다.

“엄마가 '지구가 네모라고 주장하는 법’에 대하여 글을 쓰기 힘든 이유는, 애초에 주제 자체가 이미 증명된 것이여서 빈 틈이 없어서야.

마치 고양이가 하늘을 난다..라든가, 지구는 도넛모양 이라는 주장처럼 터무니 없는 거였으니까. 하늘을 날면, 그것은 고양이가 아니고, 지구가 둥근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거든.

그런데, 내가 엄마의 슬리퍼 한짝을 쓸쩍 하는 이유라든가, 엄마가 나를 쿡쿡 찌르는 이유 같은 것은 이야기의 틈이 많잖아. 논리적이든 비논리적이든 접근할 틈이 많아서 이야기하기 쉽지.”

“너, 언제부터 똑똑했니?”

“내가 쫌.”


그녀는 쿨하게 씩 웃고 그리던 그림을 마저 그리러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25분후,

그녀는 이런 그림을 저에게 보내왔죠.


사각 사각 뭔갈 쓰고 있는 곰귀를 쓴 사람이 저, 가보리다입니다.


8.


지구를 네모라고 주장하려던 가보리다는, 오늘 둘째딸에게 한방 맞았습니다.

그리고 비합리적 논리오류자가 되었지요.

인정합니다.

다 사실이거든요.

그래도,

이 정도면 쿨한 부모로 봐 줬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귀여운 곰돌이 머리띠를 쓰고 글을 쓰는 엄마라면, 조금 비논리적이어도 사랑으로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지구가 네모라고 더이상 주장하지 않냐구요?


아직도 제가 글 제목대로 글을 써내려간다고 믿으셔요?


총총


실제 곰귀를 달고 글을 쓰는 가보리다

알고보면 과장이 아니었던 둘째의 만화

지난 언젠가 장거리 여행다녀오던 비행기안의 경로안내 그래픽사진

《쿠키》

글을 마감하려했는데, 큰딸이 지구를 네모라고 주장하는 쉬운 해답을 알려줬습니다.


"권위있는 사람이 지구가 네모라고 말해주면 돼! 나사가 지구가 네모라고 선포하면 다들 믿을껄?"


캬!

깨달음을 얻었어요.

지구가 네모라고 우기기 전에

일단 유명해져야겠네요.

유명해져라!

그러면 당신이 똥을 싸도 사람들이 환호할 것이다.

아니면 사람들 앞에서 똥부터 싸라! 그러면 유명해질 것이다.그것이 관종일지라도.---갑올이다의 내면고백





#가보리다

#지구는둥글다

#논리적오류덩어리가보리다

#언제나그렇듯반박시당신의말이옳습니다

#가보리다

#지구는둥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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