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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연 Jan 19. 2023

브로커, 베이비 박스 밖의 세상

브로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헤어질 결심> 보다도 더 보고 싶어서 기다렸던 영화, 장장 6개월이 걸렸지만 토론토에도 개봉을 했다. 운이 좋아 집에서 10분 떨어진 영화관에서 상영을 해준 덕분에 큰 품을 들이지 않고 볼 수 있었다. 물론 한국에 개봉했던 당시에 사람들의 혹평에 지나치게 노출되어 영화에 큰 기대가 없기는 했지만.

기대가 없던 만금 무난하고 잔잔하게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영화가 끝난 후 나의 감상은 "일본 소설을 읽은 것 같다." 였을 정도니까. 일본 소설처럼 담담하고 잔잔하고, 또 충격적일 수도 있는 사건을 이무렇지 않게 흘리듯이 보여주었다.

 

미혼모인 소영(이지은 분)이 베이비 박스 바깥에 아기를 버리고, 베이비 박스 관리처에서 일하는 동수(강동원 분)이 기록을 지우고 상현(송강호 분)과 함께 버린 아기를 브로커에게 판매하려고 한다. 그러나 아기를 찾으러 온 소영에게 덜미를 잡히자 함께 아이를 팔러 다니게 되고, 유아 인신 매매범을 잡으려는 수진(배두나 분)과 이형사(이주영 분)은 그들을 뒤쫓으면서 벌어지는 일이 영화의 전체 줄거리다.

사실 이미 줄거리에서부터 '일본 소설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감독이 일본 사람이라서인가? 라는 생각도, 일본 소설이 원작인 이야기인가?하는 생각도 들었다. 일단 지금까지 검색해봤을 때 원작 소설을 찾을 수는 없었지만.


줄거리도 줄거리지만 사실 각 인물들의 행동에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았다. 어쨌든 인신매매를 하려는 사람들인데, 세상을 너무 해맑게 바라보고 있다고 해야할까.

상현

세탁소를 하고 있지만 늘 빚에 시달리기 때문에 아이를 팔아서 돈을 더 벌려고 한다. 우선 빚에 허덕이는 사람에게 선택지가 곧바로 범죄로 이어지는 것은 조금 식상하다고 할 수 있는 클리셰라고 하지만, 아이를 판다는 것에 일말의 죄책감조차 없이 "어차피 버려지는 아기에게 더 좋은 환경을 제공한다"는 자기 합리화를 하는 것이 퍽 역겨웠다. 그 와중에 본인인 이혼한 부인 사이에 중학생이 된 딸도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팔기 위해 데리고 다니는 아기를 애지중지 다루고 보살펴주는 것이 죄책감을 덜려는 행위보다는, '상품'을 잘 가꾸는 것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무해한 표정으로 다정한 연기를 하는 그의 속내는 결국 범죄자일 뿐인데. 그리고 송강호의 이런 식의 연기 이제 너무 식상하지 않나?


동수

자신도 베이비 박스에 버려져 보육원에서 자란 처지이기 때문에, 버려진 아기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안다는 이유로, 상현의 꾀임에 넘어가서인지 아니면 본인이 자처해서 브로커가 된 건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돈도 돈이지만 아기에게 좋은 환경을 찾아주기 위해 애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기를 사려는 부부의 진정성을 따지고 들기도 하고 나중에는 소영에게 "팔고 싶지 않으면 팔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결국 그도 아이의 삶을 타자화한 것에 불과했다. 아기를 '구입'한 부부가 아무리 진정성이 넘친다고 한들, 과연 돈을 주고 사온 '상품'을 어떻게 대할지는 모르는 일인데도, 단 한 번 만난 구매자의 말만 믿는다는 것이 너무 순진했다. 소영에게 돌려주는 것 역시, 소영은 일정한 직업도 없이 떠도는 미혼모에 안정적인 환경을 제공할 수 없을 텐데 "같이 키우면 된다"는 허황된 말을 한다. 물론 여럿이 힘을 합치면 못할 것도 없겠지만. 과연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 할까?


소영

"낳기 전에 죽이는 게 낫고 나서 버리는 것보다 죄가 가벼워?"

어린 시절에 가출한 소영은, 그렇게 가출한 소녀들을 모아서 성매매를 시키는 '엄마'라는 사람 밑에서 착취당하는 삶을 살다가 결국 임신을 하고, 말리는 '엄마'와 지우라는 아이 생부의 협박에, 숨어서 아이를 낳고 만다. 결국 아이의 생부와 실랑이를 하다가 그를 죽이고 도망을 치고, 아이는 베이비 박스에 '버린다' 동수의 말을 빌자면, '범죄자의 아이로 크느니 버려지는 게 낫다'고 생각해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소영은 스스로도 중심이 잡히지 않은 어린 엄마다. 아마 처음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도 쉽게 중절을 결정하지 못했겠지. 어쩌면 인생에 책임질 것이 하나 없이 살다가, 덜컥 무언가를 책임져야한다는 사실에 두려워졌을지도 모른다. 동시에 자신의 인생에도 기쁜 일이 하나 쯤은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중절을 고려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영화를 보기 전에, 소영의 대사에 가해진 비판들로만 봤을 땐, 소영 역시 참 순진하고 생각이 짧다, 결국 '낙태는 나쁘다'라는 메세지를 전달하려는 것에 불과한 거 아닌가, 라는 생각에 꽤 불편했다. 영화 속에서는 그보다는 조금 더 숨겨진 사연이 있는 것 같긴 했다. 단순히 '태어난 아이를 버리는 것과 태아를 죽이는 것' 사이를 저울질하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문제는 영화에서 그걸 보여주는 것을 실패했다는 것이다. 사회 비판적인 시각도 아니고, 이건 뭐, "낙태는 나쁘지 응. 근데 아이를 버리는 것도 나쁘긴 해. 아참, 살인도 나쁘단다." 라고 지나가는 말처럼 흘려버린다.


수진 & 이형사

인신매매범의 범죄를 잡으려면 현장에서 체포를 해야하기 때문에, 이들의 여정을 쫓아다니며, 심지어 함정까지 파기까지 한다. 보는 내내 '이렇게까지 해야 해?'하는 순간이 없지 않아 있었다.

수진이 소영에게 "버릴 거면 왜 낳았냐"는 말을 하는 장면에서도 참 사람에 대한 이해가 없는 매정한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형사가 자신이 하는 일에 환멸을 느끼는 장면은 퍽이 이해가 갔다. 사람을 돕고 싶어서 시작한 일인데 나쁜 일이 벌어져야만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은 좌절감을 느낄만 했다.

그러나 사람을 죽인 죄로 감옥에 간 소영을 대신해 아이를 돌보기로 약속한 수진의 마음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렇게 치면 구해줘야 할 아이들이 또 얼마나 많은데.


사회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환원시키는 나이브함

감독인 고레에다 히로카즈에 대해 잘 아는 건 아닌데, 이래저래 회자가 많이 되는 유명한 감독인 것 같았다. 우연히 넷플릭스에서 '마이코네 행복한 밥상'이라는 드라마의 예고편이 뜨길래, 와 맛있는 거 해먹는 귀엽고 아기자기한 내용인가보다, 하고 위시리스트에 담아뒀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고, 또 1편을 보자마자 눈쌀을 찌푸리며 '이 감독은 이런 사람이구나'하고 단번에 파악이 되는 것 같았다.

'마이코네'와 '브로커'를 관통하는 이 감독의 시선은 딱 그 정도였다. 세상을 살다보면 어렵고 힘든 일이 많은데, 그건 결국 네 혼자만의 일이란다.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사회 문제를 건드는 주제로 작품을 만들면서, 그 문제에 대한 고민이나 고찰이 없고, 그렇다고 비판하려는 시각을 보여주려고 들지도 않는다. 참 게으르기 짝이 없어 보였다.


영화 <브로커>는 그냥 강동원, 이지은, 배두나, 이주영 보려고 본 영화였고 딱 그정도만큼만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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