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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연 Nov 08. 2023

지구는 괜찮아, 우리가 문제지 - 곽재식

지구는 괜찮아, 우리가 문제지

곽재식


지구가 아파요, 북극곰이 집을 잃었어요, 플라스틱 빨대 때문에 물고기들이 죽어가요.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다양한 기후위기 슬로건들을 보면서 내가 느낀 감정은 '안타까움'이었다. 그러나 나는 실로 그들의 아픔에 공감한다고 할 수 있었을까?

비건인 친구와 함께 살았던 적에 비인간 동물들의 삶과 고통을 아무리 이해하고 공감하려해도 내가 '인간'인 이상 쉽게 되지는 않았다. 기후위기도 그와 비슷했다. 내가 딛고 사는 땅이 아닌, 저 먼 나라에서 벌어지는 자연재해. 이따금 찾아오는 폭염에도, 올 여름은 유독 덥구나, 하고 넘어가기 일쑤였고, 난데없는 폭설에도, 올 겨울엔 눈이 퍽 많이 오는구먼,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곤 했었다.

그것이 다 나의 특권에서 비롯된 천진함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P. 12. 지구가 죽어간다는 말을 자주 듣지만, 지구의 본체는 거대한 암석으로 되어 있는 행성일 뿐이다. 정말로 위태로운 것은 그 표면을 살아가는 사람과 생명이다. 보는 방향의 작은 차이가 기후변화에 대한 이해를 겉돌게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만큼 약간만 시각이 달라져도, 기후변화 문제의 복잡한 실체를 훨씬 더 가깝고 깊게 받아들일 수 있다.


매년 여름 한국에선 장마로 고생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나도 한때 대학가 앞의 반지하에 살았던 적이 있었고, 장마로 수해를 입은 선배들 사연을 종종 듣기도 했다. 그 정도일 줄로만 알았다. 책이 젖어서 못 쓰게 되고, 푹 젖은 옷을 이고지고 빨래방으로 가져가야 하고. 그냥 인생에 일어난 스쳐가는 여러가지 불행 중 하나 정도로만 그칠 일.

그런데 반지하에 살던 사람들이 장마로 불어난 물에 그대로 갇혀 죽는 사고가 발생했다. 아마 나만 몰랐겠지, 실제로 해마다 수해로 목숨을 잃은 사람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아마 많은 사람들이 몰랐겠지.

이걸 단순히 기후위기가 불러일으키는 자연재해가 일으키는 사망사고로 치부할 수 없다. 기후위기는 물론 현실이고 이것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건 사람의 문제다.

지금 당장 장마철에 비를 적게 내리게 하는 것은 불가능할지 몰라도, 반지하에 물이 흘러들어가지 않을 수 있도록 방제를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한 문제다.


기후위기를, 개인으로서 우리는 이렇게 바라봐야 하는 것이다. 나 하나의 힘은 미약해서 내가 아무리 비건하며 친환경 제품만 쓰고 새 옷은 안 사고 입던 옷 고쳐 입고 분리수거 철저히 한다고 하더라도, 지구 반대편에서 음식물을 던지며 놀고 쓰지도 않을 물을 틀어 놓고 펑펑 낭비를 한다면 환경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작금의 기후위기를 바라보는 각국의 정부들도 결국 치킨게임, 제로섬게임을 하려고 눈치를 주고 받고 있을 뿐이다. 우리 나라를 부국강병하게 만들려면 우리 나라에게 유리한 기준을 만들어서 컨트롤 해야 한다. 다른 나라야 어찌되든 무슨 상관인가, 우리 나라만 잘 살면 되는 것을.

아마 이 태도를 고치는 것은 아주 오래 걸리고 힘든 과정일 것이다. 1997년에 의논된 교토의정서도 여태까지 지지부진한 이유가 별다른 곳에 있는 게 아니다.


책에서는 기후위기의 진실에 대해, 그리고 이에 대응하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를 초반에 풀어놓는다.

솔직한 마음으로 다들 욕심을 버리고 조금씩 양보하면 좋겠다, 그게 아니라면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은 놈들(제국주의, 식민주의 국가들)이 다 망해버리면 좋겠다는 허황된 꿈을 꿨다. 그렇지만 이는 작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되기는 퍽 어렵다.


사실 전기차를 찬양하는 이야기가 책의 3분의 1을 차지해서 고개를 갸웃하며 읽기는 했다. 전기 저장의 문제를 해결해 모든 것을 전기로 돌릴 수 있다면 그것만큼 친환경적인 것이 없다는 말, 그 말은 다르게 말하면 전기가 공급되지 않으면 모든 것이 선사시대로 돌아간다는 말이나 다름 없다.

이것이 정말로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게다가 책에서도 간략하게 언급하긴 했지만, 다 사용한 리튬 이온 전자 배터리의 처리 문제 역시 남아있다. 물론 기술이 계속 발전하면 답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역시 나는 감정적으로 '기술의 발전이 문제를 모두 해결해 줄 것이다'라는 주장에는 공감할 수가 없다. 기술이 발전했기 때문에 기후위기가 찾아온 것도 맞으니까.


넷플릭스 TV시리즈 중 하나 <굿플레이스>를 보면서 내가 하는 행동이 내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래서 개인의 행동을 통제하는 데에는 분명한 한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책에서도 개인의 행동이 환경에 어떻게 작용할지 알아보는 것은 쉽지 않고, 그러니 계속해서 계산하고 따져봐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역시 개인에게는 한계가 있고 개인은 쉽게 무력해진다.

아쉬운 점은 기후문제를 결국엔 개인의 책임으로 환원시키고 기술의 발전이 해답인 것처럼 결론을 내린 것이었다.


P. 404. 요즘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노력이란, 무슨 고상한 취향을 드러내기 위한 선행 같은 것이 아니다. 기후변화는 미래에 우리와 우리 이웃이 어떻게 버틸 수 있을 것이냐에 대한 더 긴박하고 현실적인 문제다. 기후변화에 대해 고민한답시고 사람의 손길에서 벗어난 자연의 섭리 같은 평온하고 흐릿한 관념에 빠져 있던 세상은 이미 갔고, 이제는 사람을 살리기 위한 치밀한 계산이 필요할 수밖에 없는 세상이 찾아왔다.


기후변화의 문제는 비단 '미래 세대'의 문제만이 아니게 되었다. 이제는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환경의 문제, 내 생존이 걸린 문제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아야할 때다.

그리고 '지구의 환경을 보호하자'라는 모호한 목표의식이 아닌, 지금 당장 나의 생존, 나의 이웃의 생존을 위해 다같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며 행동해야 할 때다.


책은 쉽게 쓰였다. 마치 청소년들이 주 타겟 독자층인 것처럼. 그렇다고 해서 내용이 유치하지는 않다. 모두가 읽고 깊은 고민을 시작할 수 있는 화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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