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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연 Jun 27. 2024

타인의 고통 - 수전 손택

타인의 고통

수전 손택


학부 시절에 들었던 전공 수업 중 '미디어 교육'이라는 과목이 있었다. 매우 인기 있는 과목이었고 선배들이 입을 모아 칭찬하며 꼭 들으라고 추천해주는 과목 중 하나였는데,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그 수업을 들었던 때를 회상해보면, '수전 손택', 그리고 <타인의 고통>만이 유독 기억에 남아 있었다. 과제 레포트를 써야하는 도서였는데, 어찌나 어려웠는지 절절매며 읽었던 기억, 그럼에도 너무 좋은 글이었다는 기억이 짙게 남았었다. 그리고 교수님이 이 책을 읽기 전에 던졌던 어구, Compassion Fatigue. 이 표현을 잘 기억하며 읽으라고 했던 것도.

십 년도 더 지난 지금 다시 읽은 <타인의 고통>은 그 때의 기억과는 사뭇 달랐다. 이게 이토록 절절한 반전 호소문이었던가. 그리고 이 책이 쓰였던 2003년에도 '팔레스타인 학살을 그만두라'고 말하던 수전 손택은 아마 무덤에서 뛰쳐나와 지금도 '팔레스타인 학살을 그만두라'고 목에 피가 맺히도록 소리지르고 싶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내내 떠나지 않았다.



<타인의 고통>은 전쟁 중에 시작된 '포토저널리즘'을 짚어내며 사진 미디어가 갖는 힘과 영향력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렇지만 사진에 찍히는 순간, 전쟁은 이미 '대상화'가 되어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오르내리게 된다. 같은 사진을 두고도 해석이 달라지는 이유는 사진을 보는 사람들의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진은 '사실', 혹은 '진실'만을 보여준다고 믿어졌지만, 이제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옛날 사진도 조작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상식처럼 받아들여진다.

책은 2003년에 출판되어, 지금으로부터 무려 20여년의 시차를 자랑한다. 그 20년 동안 미디어는 너무 많이 변했다. 이것을 '발전'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까. 2003년엔 안방에서, 거실에서, 남의 나라 전쟁 소식을 뉴스로 접할 수 있었다고 하면, 지금은 내 손안의 작은 화면으로도 먼 곳의 전쟁 소식이 날아든다. 그렇지만 이제는 내가 직접 큐레이션하여 정보를 선별적으로, 혹은 알고리즘이 선별해서 던져주는 정보들만을 받아보는 세상이 되었다. 모르긴 몰라도 2003년에 전쟁 뉴스를 접하는 사람들의 수보다 현재 전쟁 뉴스를 접하는 사람의 수가 더 적을 것이다. 2003년에는 전쟁 뉴스를 눈 앞에 들이밀며 "동정심을 가져봐!"하고 소리쳤다면, 현재는 전쟁 뉴스가 있는데 보고 싶지 않으면 다른 뉴스를 보여줄게, 하고 슬그머니 지나가는 정도가 되지 않았을까.

그러니까 이제는 개인이 적극적으로 원하는 종류의 소식들을 직접 찾아 나서거나, 그렇게 자신의 미디어 환경을 꾸려나갸아만 알고리즘의 은혜로 소식을 접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그 20년의 간극을 내내 생각하며 읽었다. 너무 아득해서 우리는 너무 멀리까지 와 버린 건 아닐까, 하고 덜컥 겁이 나기까지 한다.


그러나 수전 손택의 힘있는 문장들이 나를 자꾸만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지금,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고민하고 생각하게 해준다.


P. 154. 특권을 누리는 우리와 고통을 받는 그들이 똑같은 지도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의 특권이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 보는 것, 그래서 전쟁과 악락한 정치에 둘러싸인 채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휘저어 놓는 고통스런 이미지들은 최초의 자극만을 제공할 뿐이니.


얼마 전에 영화관에서 <인사이드 아웃 2>를 보고서도 계속 마음의 부채감을 지울 수가 없었는데, 이 문장을 다시금 읽으며 멍해졌다. 나의 특권, 편안한 좌석에 앉아 영화를 즐기는 것 - 이것은 팔레스타인을 폭격할 전쟁무기를 지원하는 것과 연결이 되어있다. 디즈니는 이스라엘을, 그리고 그들의 학살을 지지하는 기업이고 나는 이 기업의 컨텐츠를 즐기는 소비자가 되어 학살에 한 푼을 보탠 사람이 되었다.



이 불편한 마음을 견딜 수가 없어졌다. 그래서 이 글을 쓰는 동안 디즈니 플러스 구독을 해지했다.

생각만에서 그치지 않고 행동을 하는 것. 수전 손택은 개인의 작은 실천을 응원할 것이다.


책을 다시 읽고 나서는 일기를 열심히 쓰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혔다. 원래도 기록하는 것을 좋아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기록에 피로감을 느꼈다가, 또 어느 순간에는 의무감을 느끼기도 했다. 가만 생각해보니, 사진으로 기록을 남긴 다음, 그 기록을 되새김질하는 것이 익숙해진 때부터였던 것 같다.


P. 135. 사진만을 통해서 기억하게 되면 다른 형태의 이해와 기억이 퇴색된다. (중략)
시간이 흐륵수록, 기억한다는 것은 어떤 이야기를 떠올린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진을 불러낼 수 있다는 것이 되어버렸다.


이제는 사진도 아니라 미디어의 각종 숏폼에 익숙해져버린 사람들에게는 또 어떤 이해와 기억이 퇴색되어 버렸을까. 나도 더 많은 것들을 잃어버리기 전에, 사진이나 영상 미디어만으로 기억할 수 있는 것이 아닌, 나의 단어와 문장으로, 그리고 서사로, 나의 시간들을 오래오래 기억에 남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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