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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연 Nov 01. 2024

유전자 지배 사회 -

유전자 지배 사회

최정균


많은 기대를 하고 읽기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이기적 유전자를 읽어본 적도 없고, 유전자에 대한 지식이라면 유튜브에서 짤막하게 전해주는 지식 채널 같은 것을 본 게 전부라 뭘 잘 안다고 할 수도 없어서 순전히 지적 허영심을 채워보자는 마음으로 읽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특히나 마지막 장에서 유전자와 종교의 관계를 대체 어떻게 풀어냈을까가 제일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기대를 한 것도 아니었는데도 실망스러웠다면 내가 아직 과학을 잘 몰라서일까 아니면 저자의 능력이 그것 밖에 안 되서인 걸까.

논문으로 사실관계가 증명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영원불변한 진리는 아니라는 것은 과학자들 모두가 동의하는 믿음이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몇 년 전까지는 진리로 여겨졌던 '이론'들이 과학이 발전하면서 사실관계가 뒤집히기도 하니까. 그러지 않은 것들은 '법칙'으로 불렸을 테니까(반유인력의 법칙과 같이, 그 모든 조건에서 동일하게 일어나는 현상이라면) 이론이 이론에 그치는 데는 "지금까지의 실험 결과 사실로 밝혀짐 - 앞으로 다른 방식으로 실험을 했을 때는 달라질 수도 있음"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렇지만 저자는 다른 사람들의 논문을 인용하며 마치 자신의 가설이 모두 진실인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껴졌다.

특히 제일 기대했던 종교와 유전자의 관계를 밝혀줄 6장에서는 기독교 이야기만 주구장창 하고 있어, 저자가 독실한 기독교인인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이 책에서 얻을 것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지적 호기심을 충족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훌륭히 그 역할을 해내고 있다. 어쨌든 여러가지 논문을 섭렵해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였으니 그 부분을 감안하고 필요한 정보를 취한다면 충분히 재미있는 독서가 될 수도 있다.


사랑과 혐오도 유전자의 속삭임

이 책을 딱히 읽지 않았어도 이미 세간에는 '사랑이란 유전자가 종족 번식을 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만들어낸 호르몬의 농간에 지나지 않는다'거나 '혐오란 종을 보호하기 위해 발동하는 유전자 수준의 방어 기제'라는 이야기들이 널려 있어서 아주 새롭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동성애가 인간만의 특수한 사회 문화적 현상이 아닌 다양한 동물 종에서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생물학적인 현상이라는 것도 조금은 식상하게 느껴질 법도 했다.

그렇지만 "아이를 많이 낳는 어머니에게서는 동성애자 아들이 태어날 확률이 유전적으로 높다"고 언급한 부분은 꽤 흥미로웠는데, 어머니가 아이를 많이 낳았다는 것은 '남자를 좋아하는 유전적 기질'이 있다는 것이고 그것이 자식에게 유전되어 '남자를 좋아하는 아들'이 태어난다는 설명이었다.


자연선택의 관심 대상은 유전자의 성공적인 번식이지 개체의 행복한 삶이 아니다. 따라서 진화의 세계에서 오직 생물학적으로 건강하고 다양한 후손을 남길 수만 있다면 부부의 삶과 행복이 유전자의 입장에서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또한 이 분도 재미있는 지점이었는데, 부부의 삶이 행복한 것과 자식을 많이 낳는 부부가 되는 것(유전적 번식의 성공)은 별개라는 것이, 아이는 많고 불행한 결혼 생활을 하는 수많은 커플들을 떠올리게 했다.



인간의 '자연스러운 생물학적 선택'은 경제 불균형을 이끌어내는 보수주의

그리고 '이기적인 유전자'가 이끄는대로 행동하는 인간들은 자유경제 자본주의를 신봉하는 경제학자들이 말하듯 "자연스러운 균형 경제"로 이끄는 것이 아닌 "극단적인 불균형"으로 이끈다는 논점도 흥미로웠다. 인간들이 이기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 결국 유전자가 시키는 대로 생존과 번식을 위해 자원을 소비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그렇다면 이미 자원이 충분한 이들이 계속해서 타인을 착취해가며 자원을 획득하려고 하는지는 설명이 되지 않는 것 같았다. (결국 이기적인 유전자가 시켜서 하는 거라고 하려나?)


진보와 보수도 유전적인 관점에서 해석을 했는데, 사실상 '진보'와 '보수'를 나누는 기준이 모호다나는 것부터 짚고서 시작한다.


진보와 보수의 이데올로기를 정확히 규정하기는 매우 어렵다. 사전적 의미로만 볼 때 보수는 전통적 가치를 옹호하며 현재의 체제, 제도, 관습을 보존함으로써 질서와 안정을 유지하고자 하는 경향이며, 진보는 변화를 지향하며 현재의 체제, 제도, 관습을 개혁하겨 혁신함으로써 발전을 추구하는 가치관이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에서 어디까지가 전통이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없으며 보수가 변화를 거부한다고 볼 수도 없다.

한 가지 알 수 있는 것은 보수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의 유전자는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의 유전자보다는 더욱 '생존에 유리'하다는 것, 즉 비교적 '이기적'인 유전자를 가졌다는 것이 었다. (혹은 저자가 그렇게 믿는다거나.) 


마지막 장에서는 너무나도 인간 중심적인 사고방식이 드러나는 논점들이 많아서 읽는 내내 반박 메모를 적었는데, 가령 '인간 없이 자연은 의미가 없다'는 지점들이 그런 것이었다. 특히나 오만하고, 너무도 인간 중심적인 부분이라 과연 과학자는 이런 사람들이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생물학적 취약성을 깨닫고 이에 대항해 함께 힘을 합쳐 싸우는 것이야말로 문명의 존재 목적이며, 오늘날 우리가 자연이 아닌 문명사회에 살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많은 부분을 동의하지 못하면서 읽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유의미한 메세지는 있었다. 유전자의 설계야 나 개인의 생존을 위해 이기적으로 행동하도록 되어 있을지언정, 우리는 그것을 인지하고 받아들인 다음, 그것에 대항하여 개인만을 위한 게 아닌 인류 전체에게 이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한다는 메세지였다.

그러니 유전자가 뭐라고 속삭이든 나는 조금 덜 이기적인 행동을 하기 위해 조금 더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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