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2 - 1. 두 번의 이직과 한 번의 연봉 협상
1. 두 번의 이직과 한 번의 연봉 협상
“희연 씨, 다른 회사 알아봐야 할 거 같아.”
2021년 10월, 재택근무로 업무 전환이 된 지 6개월 만에 P이사가 전한 비보에, 떡진 머리 잠옷 차림의 나는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근래에 일이 많이 없어지긴 했는데 설마하니 회사가 없어지겠어? 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는데 그 설마가 사람을 잡을 줄이야.
간단히 말하자면 회사가 망했으니까 새로운 직장을 찾아봐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재택근무에 너무 익숙해진 탓에 다시 취업을 해서 주 5일 오피스에 출근하게 되는 생활을 할 수 있을지부터 김칫국 사발로 드링킹하며 걱정 인형이 됐다. 아차, 이력서를 써서 보내고 면접을 보는 ‘구직’의 과정을 먼저 거쳐야 하는데!
첫 번째 이직
2020년 12월, 여전히 코로나로 세상이 뒤숭숭하던 때, 눈을 낮추고 나를 낮춰서 이력서를 내고 취직을 하게 된 나의 첫 직장은, 그렇게 ‘실패한 사업’이 되어 실업자 1(+P 이사님까지 총 두 명이었지만)을 사회의 차디찬 바닥에 도로 뱉어놓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한 달의 유예기간이 주어졌다. 이 회사는 부자가 아니었기에 망하고 나서도 3대까지 그 명맥을 잇지는 못하겠으나, 사업을 정리하고 기존 고객사와 협력사와의 금전 문제를 해결하는 한 달은 어떻게든 숨을 붙여둘 수 있었다. 그 동안은 일을 (거의) 안 해도 급여가 나온 덕분에 여전히 고용인 상태에서 구직을 하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는데, 마음 한 구석에는 기왕 회사가 망한 김에 좀 쉬어갈까 하는 생각이 조금 들썩거렸다. 그렇지만 역시 캐나다의 이주 노동자 신분으로, 앞으로의 비자 상황에다가 매달 내야 하는 월세, 생활비 등등을 고려하면 이력서를 써내려가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애매한 시점에 구인을 하는 회사가 있을까, 하는 걱정이 무색하게도 물류회사는 언제 어디서나 구인 열풍이었다. 사회의 차디찬 바닥에 한 줌의 희망을 느낄 수 있는 직군이라 미약한 안심을 내뱉고는, 또 닥치는 대로 여기저기 이력서를 보낼 태세를 취했다.
그때 눈에 들어온 한 회사, 한국의 D 물류회사의 캐나다 지점!
한국계 회사를 떠나 다시 한국계 회사로 들어갈 생각을 진지하게 했던 것은 아니지만, 반쯤은 ‘캐나다에도 이 D회사 지점이 있단 말이야?’하는 호기심에, 본격적으로 구직을 시작하기 전에 면접 연습이라도 해보자는 마음에, 그러다가 덜컥 합격해 버리면 그대로 다녀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이력서를 슬그머니 제출했다. 그러니까 딱히 곧바로 재취직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라고는 0에 수렴했으니까 그렇게 쉽게 지원해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안일한 마음으로 지원한 탓에 면접 준비가 제대로 되었을 리는 없었다. 내가 생각해도 “왜 그따위로 밖에 대답을 못 했을까”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좌절의 시간이었고, 당연히 될 리 없다는 생각에 기대를 접고 금세 기억에서 지워가려던 차에, 놀랍게도 합격 연락을 받게 되었다. 여러 가지 요소가 있었겠지만, 1년도 채 안 되긴 하더라도 캐나다에서의 동종 업계 경력이 있고, 토론토에서 물류로 유명한 학교에서 공부했던 점도 확실히 플러스 요소였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아다리가 맞았던 것이, D회사에서 이제 내륙 운송 쪽으로 비지니스를 확장하고 싶어하던 차였고 마침 내가 내륙 운송 쪽 업무의 경력이 있던 게 확실한 가산점이 되었다.
그리고 빠른 입사를 원한 D회사 덕분에, 첫 회사의 마지막 업무가 11월 19일 금요일이었고, 새 회사 첫 출근 날은 바로 그다음 주 월요일인 11월 22일이었다. (그리고 한국은 23일이 되면서 학살범 전두환의 사망 소식이 들려왔고 어쩐지 잊을 수 없는 첫 출근이 되었다.)
무사히 첫 번째 이직을 마쳤으니, 이제 이 회사에서 뼈를 묻을 각오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력서에 예쁘게 1년 이상의 경력을 채워 넣을 수 있도록 잘 버텨보자는 마음가짐을 다시금 다졌다. 경력을 곱게 잘 모아서 영주권 신청도 하고 또 혹시 모르지 2, 3년 후에는 다른 회사로 연봉을 올려서 이직을 고려해볼 수도 있을지도. 그러니까 한국계 회사에서 착실히 경력을 모아보자.
그렇지만 나의 권태는 조금 더 일찍 내 마음을 어지럽히기 시작했다. 6개월 정도 되었을까, 이제 슬슬 일이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누가 들으면 배부른 소리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한국에서 제대로 된 직장 생활을 해본 적 없는, 몇 개월짜리 알바만 여기저기 전전하며 살던 내가 정규직으로 6개월 이상 한 직장을 다닌다는 것 자체가 어떻게 보면 기적과 같았다. 첫 회사는 망해버린 탓이 슬금슬금 피어오르던 권태가 순식간에 스릴로 바뀌었지만, D회사는 훨씬 탄탄하고 기반이 확실한 회사였기에 같은 일은 벌어질 일이 없었다.
그러다가 생각지도 못한 기회가 찾아왔다.
첫 회사에서 내 직장 상사였던 P이사에게서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는데, 본인이 영업 포지션으로 이직한 회사에 오퍼레이터로 나를 불러오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 회사는 첫 회사의 파트너 회사 중 하나였던 캐나다 운송 회사, L회사였다.
고양감이 권태를 물리쳤다.
첫 회사에서 업무 실력을 그다지 발휘한 적이 없던 것 같은데, P이사는 나의 어떤 모습을 보고 일을 ‘잘한다’고 생각을 하고 스카웃 제의를 했을까? 역시 나는 하면 하는 사람인 건가? 어깨가 으쓱했고 폐에 시원한 바람이 들어찼다. 누군가가 나를 필요로 한다는 감각만큼 나를 뻐렁치게 하는 것도 없을 것이다. 그야말로 부모에게도 받지 못한 인정 욕구가 어느 정도 채워지는 순간이었으니까.
두 번째 이직
부랴부랴 이력서를 손봐서 L회사 인사팀에 이메일을 보냈다. 혹시 모르니 자신에게도 한 통 보내라고 하여, P이사에게도 보내두었다. 레퍼런스 문화권이니까 나는 이력서 스크리닝 바로 통과하겠지? 그리고 면접도 그냥 뭐 프리패스겠지? 그럴 리 없다는 것은 알지만 피어오르는 기대감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하루, 이틀, 사흘, 일주일, 한 달. 도무지 이 사람들이 내 이력서를 받아보긴 한 건지 아니면 애초에 이력서 스크리닝조차 통과하지 못한 건지, 당최 연락이 올 생각이 없었다. 기대감은 곤두박질쳤고 초조함이 밀려왔다.
L회사에 이력서를 내는 순간 벌써 그 회사에 합격이라도 한 것처럼 D회사에 대한 미련을 훌훌 털어버린 탓에 점점 더 출근을 하고 싶지 않은 날이 많아졌다. 그렇지만 티를 내면 너무 하수니까, 그리고 정말 혹시 만의 하나의 경우라는 것도 있으니까.
D회사에서는 내부 공고로 새 포지션에 사람을 구하고 있었고, 이미 맡아 하는 업무보다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여기에도 역시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봤다. 급격한 환경 변화는 아니더라도 약간의 포지션 번화만 있어도 일이 지겹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P이사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인사팀과 면접을 봤느냐고. 절실해 보이지 않으려 마음을 꾹꾹 누르며 연락이 온 게 없다고 했더니, P이사 마저 조급증이 돋았는지 자기가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했다. 이걸 믿어도 되나? 다행히도 그 전화 통화 이후 하루 만에 L회사의 인사팀에서 전화 면접을 보게 되었다.
L회사는 첫 회사와 D회사보다도 더 큰 회사라, 구직 과정에 여러 단계가 더 있었다. 우선 인사팀과 전화로 간단한 사실 확인-본인이 맞는지, 영어로 전화 통화하는데 무리가 없는지 같은 것들-을 하는 전화 면접을 본 다음, 팀 매니저와 대면 인터뷰로 이어진다. 원래도 전화 통화를 어려워하는 데다가 인사 담당자의 목소리는 매우 빨라서 제대로 대답한 게 맞는지 걱정이 되었는데, 다행히 잘 통과했는지 곧바로 팀 매니저와의 면접이 금방 잡혔다.
이번엔 나를 ‘추천’해준 사람도 있으니 정말 만발의 준비를 하고 면접을 봐야지.
정말로 그런 생각을 했다. 날 추천해준 사람 얼굴에 먹칠할 수는 없으니까. 성심성의껏 예상 질문을 뽑아보고 답변을 준비해보고, 그렇지만 역시 제일 중요한 것은 단정한 인상이니 어떤 옷을 입을지도 잘 골라보고 나름 단단한 준비를 하고 면접에 나섰다.
팀 매니저인 J는 선한 인상의 야망이 있는 사람이었다. 내 긴장을 풀어주려 한 것인지 아니면 원래 그렇게 말이 많은 편인지, 면접에서 나보다도 그가 말을 더 많이 했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기껏해야 10분~20분 정도 걸릴 거라 생각했던 면접은 거의 1시간 가까이 수다 떠는 시간이 되었다.
느낌이 좋다고 해도 될 것 같았다. 고용하지도 않을 사람을 한 시간이나 앉혀두고 떠들지는 않겠지!
그리고 며칠 후, 기대했던 것보다 더 높은 연봉이 적힌 잡오퍼가 날아왔다. 무려 당시 받던 연봉에서 앞자리가 두 번이나 바뀐 금액이었고 도무지 수락을 안 할 수가 없는 조건이었다.
오퍼에 사인한 다음 이메일을 회신하고 곧바로 D회사에 사직 의사를 전달했다. 팀 매니저와 먼저 면담하고 브랜치 매니저와도 면담을 했다. 사직 이유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더 좋은 조건으로 오퍼를 받았고 수락을 했으니 2주만 더 다니고 그만둘 것이라고 했다. 진심인지 아니면 체면치레인지 알 수는 없지만 (기왕이면 진심인 게 좋을 것 같다) 팀 매니저와 브랜치 매니저는 나의 사직을 아쉬워하면서도 좋은 일로 이직하는 것이니 축하의 말도 아끼지 않았다.
그렇게 두 번째 이직을 했다.
이제 와서 억울하다고 할 만한 건, 이직을 하는 사이에 일주일이라도 휴식을 가지면 좋았을 텐데, 두 번째 이직 역시 휴식기 없이 곧바로 출근하게 된 것이다. D회사의 마지막 근무 다음 날 8월 26일 금요일이었고, 새 회사 첫 출근은 그다음 주 월요일이었으니까. 어쩔 수 없이 손에 일이 떨어지지 않는 운명인가보다 하고 금방 체념하긴 했지만.
L회사는 이전의 두 한국계 회사와는 달리 동아시아인의 비율이 높지 않은 조직이었고, 어느 인종이 제일 많은지도 가늠하기 애매할 정도로 다양성이 확연히 높았다. 그리고 내가 속한 팀은 다른 팀에 비해 퍼포먼스도 좋았기 때문에 분기마다 달콤한 인센티브가 주어졌다. 일이 지겨워지거나 권태로워질 뻔할 때쯤엔 오피스 이사라는 이벤트가 찾아왔다. 단지 일하는 환경이 바뀌었을 뿐인데 일이 덜 지겨워지다니, 나도 참 단순한 편이구나, 했다.
그렇게 잃한 지 1년 남짓 되었을 때, 이제는 이 회사의 영업사원이 된 P이사가 어마어마한 프로젝트를 물어왔다. 최소 한 사람이 처음부터 헌신해야 할 만큼 규모가 있는 프로젝트였고, 곧바로 내가 담당자로 정해졌다. 그리고 원래 내가 하던 일을 맡아서 할 다른 한국인 직원도 새로 뽑았다.
프로젝트는 이리저리 난항을 겪으면서도 차근히 잘 진행되었고, 그 과정에서 나는 어느샌가 한 사람의 몫을, 어쩌면 그 이상을 해내고 있었다. 그건 내가 만들어내는 매출액의 숫자만으로도 가늠할 수 있는 거였다.
그리고 연봉 협상.
원래는 분기마다 한 번씩 매니저와 퍼포먼스 리뷰를 해야하는데 우리 팀의 매니저 J는 바빠도 너무 바쁜 사람이었다. 내가 입사하고서 수습 기간 3개월이 지나고도 기미가 없었고 6개월이 지나갈 때 즈음에서야 겨우 첫 퍼포먼스 리뷰를 하게 되었다.
솔직한 말로 일은 돈이나 버는 데 쓰는 것이고 나의 자아실현을 위해 더 노력하거나, 이 회사의 매출을 높이고 내 퍼포먼스를 뽐내겠다는 의지는 정말 하나도 없었는데, 이 퍼포먼스 리뷰의 역할은 이런 사람의 엉뎅이도 통통 두들겨주며 “너 정말 잘하고 있는데 이거만 보완하면 완벽할 거야!”하고 응원을 해주는 데 있다는 것을 첫 리뷰 때 알게 되었다. 없던 열정도 생길 정도였다.
그러나 두 번째 퍼포먼스 리뷰가 그 뒤로도 1년 가까이 진행되지 않아서, 이 회사 제대로 굴러가는 거 맞나, 우리 매니저 J가 내가 하는 일에 관심이 있는 건 맞나? 하는 의구심이 조금씩 고개를 기웃대기 시작했다.
그러던 차에 드디어 두 번째 퍼포먼스 리뷰를 하게 되었다.
“네가 아니었다면 이 프로젝트에서 이만한 성과가 나지 않았을 거야.”
그리고 매니저 J는 15% 더 오른 새로운 연봉이 적힌 리뷰 종이를 슬그머니 내밀었다. 앞자리가 한 번 더 바뀌는 순간이었다.
내 쪽에서 카운터 오퍼를 하지도 않았고, 이렇다 할 ‘협상’의 단계가 있던 것도 아니었던 탓에 이걸 ‘연봉 협상’이라고 불러도 되는가 하는 의문이 조금 남긴 하지만, 중요한 건 나의 퍼포먼스가 회사 차원에서 ‘인정’받을 만한 것이라는 확인할 수 있어 신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는 이 직장에서도 벌서 경력이 2년이 넘었다. 지금의 내가 10대, 20대 때의 나에게 “넌 나중에 캐나다에 가서 평범한 직장인이 될 거란다.”라고 말한다면 아마 나는 코웃음을 치며 그럴 리 없다고 비웃을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첫 직장은 망해서 다른 데로 이직을 하는데, 거기서도 1년 못(안) 채우고 다른 데로 또 이직을 하거든. 근데 거기 1년 다니면 연봉도 올려줌.”이라고 한다? 믿을 리가 없다. 믿길 리가 없다.
지금도 약간은 꿈같다는 생각으로, 그러나 또 내일의 지겨운 출근을 생각하며 이보다 더 현실 같을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캐나다의 직장인 1은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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