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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서도 한번 살아보지, 뭐

by 희연

캐나다에서도 한번 살아보지, 뭐

Season 2

4. 우당탕탕 영주권 신청기 (1) - feat. 끝나지 않는 영어 시험의 굴레



계획은 이러했다.

캐나다에 오면 일단 2년짜리 컬리지를 다닌다. (운이 좋다면 1년 6개월 만에 4학기를 모두 마칠 수도 있다) 그리고 3년 짜리 졸업후 워킹 비자 (PGWP - Post Graduate Working Permit)를 받아서 캐나다 직장 경력 1년을 채운다. 그 사이 영어 시험을 쳐서 영어 점수를 만든다. 직장 경력이 1년이 넘어가는 시점에서 연방정부 영주권 익스프레스 엔트리(EE- Express Entry) 풀Pool에 프로필을 넣는다. 그 외에도 주정부 영주권의 기회가 있는지 살피며 다양한 가능성을 모색하는 한편 영어 점수가 높지 않다면 계속 시험을 쳐서 점수를 높이기도 동시에 한다. 그렇게 약 1년~2년 정도 기다리면 언젠가는 영주권 초대장이 날아올 테고, 그 뒤로는 영주권 취득까지 일사 천리!

자기 힘으로 캐나다의 영주권을 딸 생각으로 준비를 하는 사람들은 대략 이 정도의 계획은 다들 갖고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최선을 다 하는 한편 다른 기회도 계속 호시탐탐 노리고 또 가능한 다른 방법들을 모색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그렇게 해도 운이 좋아야만 영주권을 딸 수 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고 지금은 안다.


2021년 4월인가, 코로나의 여파가 아직 가시지 않았던 즈음에 갑작스럽게 캐나다 이민성이 EE 점수가 80점이 넘는 사람들 모두에게 영주권 초청을 뿌린 기행을 벌인 때가 있었다. (그 당시 점수 커트라인이 보통 400점대를 상회하는 걸 생각하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점수인지 알 수 있다. 300점대로만 내려가도 좋은 기회라고 할 때였으니!) 나를 포함한, 그 기회를 놓친 안타까운 국제 학생들+이민 준비자들은 이와 같은 기행을 두 번은 벌이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러나 80점에서 갑자기 500점까지 커트라인이 치솟진 않을 거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서, 앞다투어 영어 시험에 응시를 하는 바람에 영어 시험 가능한 날짜가 몇달 간 예약이 꽉 차버리는 사태가 발생했다. 그 탓에 나도 가장 빠른 시험 날짜를 9월로 잡을 수밖에 없었다.

아, 나는 왜 게을러서 미리 영어 시험을 안 쳐두었나. 영어 점수의 유효기간은 2년이니까 미리 쳐 둬봐야 의미 없지. 또 쳐야할 수도 있으니까. 하다못해 영어 점수 미리 만들어 두어서 프로필 등록만 해뒀어도, 영어 점수야 유효기간 끝나기 전에 업데이트 하기라도 할 수 있었을 텐데. 경력이 모자라서 의미 없었을 것이다. 1년, 아니 반년 만이라도 더 일찍 캐나다에 들어올 걸! 그렇다면 코로나 직격탄을 맞아서 기껏 한 취업 취소되고 귀국엔딩이었을 것이다. 아니 차라리 대학 졸업하자마자 바로 캐나다로 올걸! 이미 지나간 일을 후회하지는 말자, 제발.

머릿속에서는 끊임없이 나와 내가 싸워댔고, 5달의 영어 시험 준비 기간은 나를 나태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영주권을 위한 영어 시험은 아이엘츠나 셀핍으로 점수를 만들어서 사용할 수 있는데, 나는 아이엘츠를 선택했다. 단순히 유학을 준비하며 공부했던 것이라 익숙한 시험이기 때문이었고, 또 셀핍은 말하기 시험을 사람이랑 대화식으로 하는 게 아니라 컴퓨터에다가 녹음 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기에 거부감이 먼저 들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리고 유학용 영어 시험인 아카데믹 아이엘츠가 아니라, 영주권용 제네럴 아이엘츠 시험은 문제가 쉬울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도 있었는데, 이것이 나를 나태하게 만든 두 번째 이유가 되었다.

그리하여 5월부터 9월 시험 직전까지 정신상태는 “아, 시험 공부 해야하는데.”라는 관성적인 생각과 “그래도 내가 여기서 학교도 다니고 직장생활도 하는데 어떻게든 되지 않겠어?” 하는 오만함이 좀먹은 애매한 불안이 뒤섞인 채로 미묘하게 시험 당일까지 이어졌다.


시험 당일은 2021년 9월 12일은 여전히 코로나의 영향력을 두려워하며 곳곳에서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한 시점이었는데, 그래서 말하기 시험은 비디오콜 (영상통화)로 진행될 것이라는 이야기도 떠돌고 있었다. 영상통화로 진행을 한다면, 이직 하느라 새 회사 면접을 영상통화로 해본 경험이 있어 못할 건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웬걸, 시험장 들어가니 살아있는(!) 할머니 면접관이 앉아 계셨고, 그 덕에 마스크를 쓴 채로 말하기 시험을 치는 난관에 봉착했다. 마스크도 꼈고 할머니시다보니 목소리가 크지 않았어서 대화하기가 수월하지 않았던 느낌에다가 안 그래도 크지 않은 목소리, 긴장한 탓에 더 작아졌을 터라 자신감을 점점 잃어가며 시험을 쳤다. 캐내디언 약혼자를 둔 보람이 없다는 생각가지 들 지경이었다.

이어지는 듣기와 읽기, 쓰기 시험은 컴퓨터로 치는 시험이었다. 유학용 시험은 아날로그 식이어서 종이 시험지로 다 쳤었기에, 컴퓨터로 치는 시험은 조금 낯설고 어색했지만, 이는 쓰기 시험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제출 전까지는 ‘답안 수정이 용이하다’는 압도적인 장점이, 2시간 동안 모니터를 노려보느라 눈알이 빠질 것 같은 단점을 커버하고도 남을 정도였다.

그렇게 시험을 홀가분하게 치고 곧바로 전자기기 판매점으로 달려가 닌텐도 스위치를 구입함으로써 다섯 달 동안 나태하게 시험 준비를 한 나에게 상을 내려줬고, 애매한 영어 점수가 나를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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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과라고도 할 수 있었다. 공부 해야지 해야지 말만 하고 제대로 진득하게 앉아서 한 건 얼마나 되었나. 그나마 옛날에 공부했던 가닥이 남아있던 덕분에 얼추 구색은 맞춘 점수는 건졌지만 영주권 신청을 한다고 했을 때 애매~ 하게 만점에서 한두 단계 낮은 점수들이었기 때문에 추후에 영어 점수를 올리기 위해 시험을 계속 쳐야 하는 사태가 발생할 확률이 높았다.


그리고 나는 내 생각보다 더 게으른 사람이었다.

이 점수를 만들었으면 곧바로 영주권 신청을 하면 될 텐데, 영주권 신청을 도와주는 에이전시에서 준비해달라는 서류 준비를 차일피일 미루다가, 그러면 그 김에 셀핍이라는 영어 시험을 한 번 더 쳐보고 둘 중에 점수가 더 높은 걸로 서류를 만들어서 신청을 해야겠다는 생각에까지 도달했는데, 그 시험을 신청하고 치기까지도 1년의 시간이 더 걸렸고, 설상가상으로 점수는 아이엘츠 점수보다도 더 낮게 나와버린 탓에 기록으로 남겨두지도 못하고 성적표를 어디다가 처박아 두었다.

PGWP로 캐나다에 머무를 수 있는 3년 중 1년 6개월을 그렇게 흘려보냈다. 흘려보낸 줄도 모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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