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캐나다에서도 한번 살아보지, 뭐

8. 캐나다의 대자연 (2) - 밴프, 하늘과 가장 가까운

by 희연

캐나다에서도 한번 살아보지, 뭐

Season 2

8. 캐나다의 대자연 (2) - 밴프, 하늘과 가장 가까운


비가 올 것 같아.


토론토 피어슨 공항에서 캘거리로 가는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며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기 시작했다. 첫 문장을 읽자마자 눈물이 와르르 쏟아졌다.


2024년 10월 13일, 배우자의 가족 행사에 초대를 받아 비행기를 타고 먼 거리를 날아가게 되었다. 겸사겸사 나는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그 유명한 밴프 관광도 곁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여행이 시작하기 불과 며칠 전, 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뉴스가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소년이 온다>를 읽어야지. 더불어서 휴가 동안에 한강의 소설들을 다 읽어야겠다는 작은 목표도 세웠다. 그런데 첫 문장에서부터 무너져내렸다.

휴가의 시작이 눈물바다였다. 6시간 남짓 비행 시간 동안 나는 무슨 굉장한 사연을 가진 여자처럼 엉엉 울었다. 책을 다 읽고 덮은 다음에도 여운이 한참 남아 조용히 코를 훌쩍이고 눈물을 닦았다. 옆자리에 앉아있던 여성분이 괜찮냐고 물어볼 정도였는데, 한국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탔고 그 작가의 작품을 읽느라 그랬다며 너도 꼭 읽어보라는 추천도 잊지 않았다.

비행기에서 내리면서도 눈이 빨갰고 코가 시큰했다. 마중을 나온 시아버지가 놀라서 사연을 물었고 이야기를 듣더니 허허 웃으셨다.


결론적으로 나는 이 책을 휴가 시작 하는 날, 비행기 안에서 완독한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일상을 지내면서 읽었다면 아마 이 책이 남긴 여운 때문에 생활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이 휴가의 모든 일정은 시아버지가 짜두셨기 때문에 내 역할은 '뇌 빼고 잘 쫓아다니기'였고, 나는 그걸 아주, 매우 잘 했다. 원래 계획 짜는 거 잘 못하는 P들이 계획 기깔나게 짜주는 J의 은혜로움을 또 잘 만끽할 수 있는 법.


그리하여 첫 날은 밴프에서 차로 약 20분 가량 떨어진 곳에 있는 캔모아에서 짐을 풀었다. 마침 친구가 밴프 여행을 다녀오면서 밴프보다 캔모아가 더 좋았다며 강력 추천한 곳인데, 시아버지는 나와 내 친구와의 대화를 엿들은 것도 아닐 텐데 어떻게 딱 알맞게 숙소를 그곳에 잡아주셨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오후에 도착한 탓에 밴프를 모두 구경할 수는 없었고 밴프에 있는 동굴 속 자연 온천Cave and Basin만 관광하게 되었다. 이곳은 캐나다 국립공원의 시초라고도 할 수 있는 곳이었는데, 과거에는 사람들이 수영도 하고 목욕도 했던 천연 온천이다.

하지만 현재는 수영은 커녕 손조차 담글 수 없는 곳이 되었는데, 바로 이곳에서 멸종 위기종인 달팽이가 서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환경 변화에 민감한 이 달팽이는, 사람의 손을 통한 오염에 취약하다. 더군다나 전국 각지에서 오는 사람들은 이곳 생태와는 전혀 다른 오염 물질을 자신도 모르게 손에 쥐고 올 테니, 더더욱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평소의 나라면, 주변의 경비나 관리자가 보지 않는 틈을 타 손가락이라도 찍어봤을 것이다. 미술관이나 전시회에 가면 <손 대지 마시오>라는 경고가 있는 작품에는 은근슬쩍 지문이라도 남겨 보려는 척 손을 뻗어보기도 했는데, 생명 앞에서는 그런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손이 닿지 않아도, 손을 뻗치는 것만으로도 나의 몸에서 나쁜 기운이 뿜어져 나와 이 작고 연약한 생명을 해칠까 겁이 났다.

대체 내가 뭐라고, 나따위가 누릴 일순간의 즐거움이 어떤 생명을 뺏을 가치가 있나.


앞도적인 자연 앞에서 사람은 한없이 작아진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내 존재가 너무 크고 무겁게만 느껴졌다. 나의 작은 한 걸음 안에 닿는 미물들의 세상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 두려웠다. 그 순간부터 인간이라는 존재가 인간이 아닌 다른 종에게 끼친 해악이 너무 크다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게 되었다.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아있다는, 아직도 살아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선생은, 나와 같은 인간인 선생은 어떤 대답을 나에게 해줄 수 있습니까?


한강 작가의 소설을 계속 생각했다. 인간들끼리 이념과 종교, 각종 이해득실에 따라 다투고 서로의 생명을 앗아가기까지 하는 이 세상에서,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걸었다.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죄가 되는 것만 같았다. 나의 들숨 하나 날숨 하나까지가 모두 죄를 짓는 행위처럼 느껴졌다.


예전에 만났던 애인 중 한 명이 내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은 산을 좋아하는 사람에 비해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더 높다고. 바다를 사랑하는, 철마다 바다를 보러가야 하는 나를 걱정해서 했던 말이었다. 바다의 어떤 면이 우울감에 일조를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 그냥 내가 바다를 좋아하는 것과 우울증에 걸린 사실이 우연찮게 겹쳤을 뿐이라고.

대륙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로키 산맥의 한 구역에 불과한 밴프에서, 그 크기를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가늠할 수 없는 굽이굽이 산을 보면서, 우습게도 나는 그의 말을 떠올렸다. 산을 싫어했던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렸다. 힘들게 오르막을 올라야 하는, 기껏 올라가서는 다시 내려와야하는 산을, 나는 좋아하지 않았었다. 그런 내가 지금은 로키 산맥의 한 자락을 걷는다.

그런데 그 거대하다던 로키 산맥도, 높고 높아서 한 여름에도 눈이 녹지 않는다는 저 산 봉우리들도, 끝끝내 하늘을 다 가리지는 못했다. 그러니까 당연한 사실인데, 하늘은 그 산맥들보다도 더 높은 곳에 있었다.


발밑을 보며 조심스러운 발걸음을 옮기다가 고개를 들었는데 하늘과 함께 있는 산 봉우리들을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껏 내 머릿속에 빙빙 돌던 고민이 순식간에 날아갔다.


어차피 이때까지 살아온 만큼 내가 쌓을 수 있는 죄는 다 쌓았다. 엎질러진 물을 주워담을 수는 없어도, 그 물이 주변의 다른 것까지 적셔 망가뜨리지 않을 수 있도록 수습할 수는 있다.

인간은 이미 너무 많은 자연을 훼손하며 살아왔다. 기후 위기를 말하며 당장 다음 세대의 안전과 행복이 아닌, 우리 세대의 목숨이 경각에 달했다고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들도 있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들에 안타까워하기보다는 지금이라도 할 수 있는 일들에 집중해야한다는 간단한 답으로 돌아왔다. 그러니까 멸종위기종의 달팽이를 보호하기 위해 물가에 손을 집어 넣지 말라는 안내문을 써붙인 국립공원의 노력 같은 것처럼.


밴프에서 곤돌라를 타고 산 꼭대기 전망대에 오른 것은 이곳에 머무른지 3일차 되는 날 오전이었다. 하늘과 가까워질 수 있을 만큼 높이 올라온 그곳에서 아래를 굽어보면 사람들이 일궈놓은 문명이라는 것이 손톱 옆의 거스러미보다도 더 작고 하찮아보였다. (인간의 문명인 곤돌라를 타고 이 높은 곳까지 올라 왔으면서!) 한쪽 눈을 감고 엄지 손가락으로 꾹 누르면, 아무 저항 없이 그저 순순히 바스라질 것 같은 연약한 인간 문명. 그리고 그 사소하고 미천한 인간인 나.

자연의 거대함을 생각하면 겸손해진다는 말은 진부하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자꾸만 겸손해졌다. 한낱 인간이, 겨우 인간 주제에 이런 풍경을 보는 호사를 누린다.

아마 죽을 때까지 이 풍경이 마음에 남아 맴돌겠지.








Copyright. 2025. 희연. All Rights Reserved.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캐나다에서도 한번 살아보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