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캐나다의 대자연 (3) - 은퇴 후의 삶을 상상하며
9. 캐나다의 대자연 (3) - 은퇴 후의 삶을 상상하며
나는 늘 주택에서 살고 싶었다. 창을 열면 높고 푸르른 하늘을 보드라운 흰 구름이 유영하고, 그 모습을 따라하듯 부서지는 파도를 품은 파란 바다, 그 수평선 너머로 희미한 녹빛의 언덕이 굼실거리는 풍경을 볼 수 있는 그런 집. 엄마는 그런 나에게 항상 "너는 게을러 터져서 할 일 많은 주택 관리 절대 못 한다. 그냥 남들처럼 평범하게 아파트에서나 살아라." 하고 핀잔을 주곤 했다. 그 말이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는 걸 십수 년이 흐른 뒤에 알게 된다.
배우자의 가족 행사를 위해 떠난 가을의 여행은 배우자의 아버지가 살고 있는 곳에서 정점을 맞이했다. 캐나다 지도에서 서남쪽에 가까운, 그렇지만 로키산맥의 살짝 동쪽에 위치해있는, 행정구역상으로는 밴쿠버가 있는 브리티시 콜롬비아주에 속해있지만, 거리상으로는 알버타주의 캘거리가 밴쿠버보다는 가까운 (가깝다고는 해도 운전만 6시간을 해야 도착할 수 있는), 그야말로 첩첩산중의 '아웃 오브 노웨어 Out of Nowhere'에 위치한 곳이었다. 가장 가까운 도심지까지도 차로 한 시간 반은 떨어진 외딴 곳. 그리고 그만큼 사람의 손길이 덜 닿은 곳이지만, 그럼에도 이상하리만치 비포장도로는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충분히 개발한 곳이었다.
이쯤에서 배우자의 가족을 뜬금없이 소개를 해야할 것 같다. 배우자의 부모님인 그가 8살일 때 이혼하신 후 각자 결혼을 하셨고, 그 덕분에 그는 부모님이 4명이 되었다. 친부모에게서는 자신과 누나가, 그리고 어머니가 재혼한 쪽으로는 이부동생이 다섯이 있다. 아버지가 재혼해 새어머니가 된 분도 재가하신 거라 이전 결혼에서 딸 하나가 있었다. 아버지 이름은 크리스, 새어머니의 이름은 수잔.
그리고 크리스와 수잔이 은퇴 후에 자리잡은 곳은 수잔의 친부가 사는 집이었다. 즉, 배우자의 아버지의 장인어른의 집이라는 것.
수잔의 아버지는 제2 차 세계대전 나치에 부역한 부모님이 캐나다로 넘어와 터를 잡은 곳에 오래도록 살고 있었다. 낡은 집을 크리스가 살면서 여기저기 고치고 다듬어 보기 좋게 만들어 주고 있다.
어쨌든 이 집은 2개의 층으로 되어 있었는데, 경사진 곳에 비스듬히 지어진 덕분인지 지하가 1층처럼, 1층이 2층처럼 보이는 독특한 구조였다. 수잔의 아버지가 1층에 기거하고 2층은 수잔과 크리스의 보금자리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2층 한 벽면에 어설프게 덧댄 간이 벽으로 확장한 손님 방에 묵었는데, 잠자리의 불편함 같은 건 아침 거실 창밖 풍경으로 싹 날아갔다.
내가 꿈꿔왔던 '내 집'이랑은 달리 바다는 없었지만, 언덕 아래로 너른 평야 같은 것이 펼쳐지고 그 끝에 우뚝 솟은 산자락과 그 위를 덮은 구름 이불, 청명한 하늘 같은 것들을 보면 이 풍경에 경도되지 않을 수 없었다.
밴프에서 느꼈던 것과는 다른 감정이 일었다. 그때엔 '이 어마어마한 대자연을 한낱 미물에 불과한 나 따위가 감히 감상해도 되는가' 하는 겸손함이 자랐다면, 이번엔 그저 이런 풍경 속에 한 조각이라도 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함이 물들었다.
캐나다에 살게 되면서 내 생활에 찾아 온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아침에 비교적 일찍 일어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여전히 아침에 일어나는 게 힘들고 어렵지만, 전날 밤 무리해서 늦게까지 깨어있지 않았다면 주말이라도 오전 10시까지 꾸물거리며 자다깨다 하는 걸 반복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자연 속에 녹아들면 한층 더 개운하게 눈을 뜰 수 있다는 것을 이날 깨달았다.
분명 작고 통통거리는 침대에서 둘이 부대껴 자느라(심지어 배우자의 코고는 소음 탓에 중간에 수십 번씩은 더 깼는데도) 몸이 찌뿌둥할 법도 했는데, 아침에 눈을 뜨고 거실로 나와 커튼을 걷으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커피를 마시지 않아도 상쾌하고 머리가 맑아질 수 있다니. 이런 풍경을 매일 볼 수 있다면 정말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를 것만 같았다.
당연하게도 집 주변엔 야생동물들이 종종 모습을 드러냈다. 야외에 설치한 카메라는 밤새 움직임이 포착되면 녹화를 해주는데, 그렇게 저장된 사진과 영상들 속에는 사슴과 곰, 라쿤과 다람쥐, 토끼가 자신의 집을 드나드는 것처럼 집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당연히 그들이 먼저 살았고 집이 나중에 지어진 것이니 자연스러운 모습일 것이다.
사람이 만들어내는 소음이 완벽히 통제된 외딴 곳에서의 아침은 고요하면서도 부산스러웠다. 새모이 통에는 형형색색의 크고작은 새들이 쉼없이 들락거리고, 몸집이 작은 다람쥐, 청설모들도 틈틈이 모이를 노리고 오르락내리락했다. 야생 칠면조 무리가 바닥에 떨어진 낱알을 주워먹는 건지 땅 속에 파묻힌 벌레를 잡아 먹는 건지 연신 고개를 박고 땅을 콕콕 쪼아댔다. 해가 기울때 쯤에 이 칠면조 무리가 언덕배기 높은 곳까지 올라갔다가 경사를 타고 내려오며 그 추진적으로 몸을 띄워 길 건너 편으로 날아가는 장면까지 보기도 했다.
이곳이 아니라면 이런 것들을 어디서 볼 수 있었을까. 나의 삶의 끝자락이 이런 풍경에 둘러싸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자꾸만 솟았다.
집이 로키산맥 한 귀퉁이에 자리해있던 덕분에 10월의 중순인데도 만년설이 멀지 않은 곳에 보였다. 차를 타고 굽이치는 도로를 따라 해발고도가 조금 높은 곳으로 오르면 작은 호수와 그 주변을 하얗게 물든 눈송이도 만날 수 있었다. '시내'도 아닌 '마을'이라고 불리는 동네에서 갓 튀긴 닭을 포장해호숫가로 와서 점심을 먹었다. 눈이 부실 정도로 쨍한 햇빛이 쏟아졌는데도 눈이 녹지 않을 만큼 찬 바람이 피부를 강타했기 때문에, 사진만 빠르게 찍고 차 안에서 닭다리를 뜯었다.
한국에서 종종 엄마랑 시장을 나갔다가 파는 통닭을 사다가 뜯어 먹었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닭을 튀긴 방법이 달라서인지 닭에 찍어 먹는 소스가 달라서인지, 맛은 분명 달랐는데도. 거실에 낮은 상을 펴놓고 뜯어 먹던 닭, 맑고 청명한 호수 앞에 주차한 차에 앉아 반사되는 햇빛에 눈을 찡그리며 씹어대는 닭. 서로 다른 공간과 시간이 하나의 경험으로 마주하는 기분이었다.
점심을 먹고 다시 귀가하는 길에는 숲속 요정의 보금자리도 들여다보았다. 누가 언제 시작했는지 모르겠지만 돌에 글자를 써서 모아두던 곳에 장난감이며 추억이 담긴 물건들을 가져다 둔 곳이었다. 오래된 것들, 바로 엊그제 가져다 둔 것인지 여전히 반짝거리는 새 물건들이 강가를 향해 이어지는 작은 길을 따라 놓여있었다.
각자의 사연을 담아, 그리고 심혈을 기울여 배치해두었을 작고 아기자기한 보물들 뒤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상상하는 것은 내 몫이었다. 나는 숲의 요정들이 장난감을 보고 흡족해하며 이것들을 가져다 둔 사람들의 소원을 이루어주었다고 상상했다. 우리도 반석같은 돌을 찾아 그곳에 이름을 쓰고, 다음에 이곳에 다시 찾아올 수 있기를 기원하며 한 곳에 잘 올려두었다.
또래보다 더 늦게 사회 생활(=정규직 회사원 생활)을 늦게한 탓에 은퇴는 훨씬 더 먼 얘기인 나에게도 은퇴 후의 삶을 꿈꾸게 해 주는 시간을 보냈다. 호화스러운 리조트에서 수영복을 입고 햇빛을 즐기며 칵테일을 마시는 삶보다는, 역시 나는 자연 속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나무와 풀 냄새가 진해지는 그런 곳에서 살고 싶다. 바다 냄새까지 곁들여지면 더 좋겠지만, 이렇게 산과 강, 호수와 하늘이 가득한 곳에 지내보니 바다가 없어도 괜찮을 것만 같았다.
이 여행의 원래 목적은 수잔 딸의 결혼식에 참석하는 데 있었지만, 이곳에서 머문 시간이 가장 밀도 있고 값진 시간이 되었다. 어린 시절 충청도 산골에 있던 외할아버지댁에서의 추억이 이따금 떠올랐는데, 흙과 돌과 자갈, 풀과 나뭇가지들을 밟고 울퉁불퉁한 길을 넘나들며 마치 나도 그때의 어린 나로 돌아간 것 같기도 했다. 산을 타고 나무를 오르고, 개울에서 개구리를 잡고 거머리에 물려 울기도 했던 그때. 가장 순수하고 해맑았던 자연 그대로의 나. 자연 속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며 그렇게 나 자신을 찾아가게 된 걸지도 모르겠다.
사회에서 내 소임을 끝내고 '진짜 나'로 돌아갈 미래의 어느 날이 아주 많이 그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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