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가을 입학을 목표로. 2023년 8월부터 대학원에 지원할 서류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한 것은 아이엘츠 준비였다. 다행히 일하면서 영어 논문을 워낙 많이 읽었고 미드 보기, 아이와 영어 대화 시간 갖기 등 꾸준히 영어와 연을 놓지 않았기에 내게 그리 큰 관문은 아니었다. 아마 유학 준비에 있어 다른 한국 지원자들에 비해 크게 부담이 덜 했던 부분이었을 것이다. 8월에 시험을 봤고, 내 목표였던 세 학교(옥스포드, 캠브릿지, UCL)에 지원할 수 있는 점수가 나왔다.
두번째로 준비할 건 자기소개서(personal statement)였다. 에세이와 더불어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이리라. 내가 누구고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는지를 짧은 글 안에 잘 설득해야 하는 가장 어려운 미션 중 하나였다. 이 글을 읽을 낯선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여야 했다.
나는 좋은 자기소개서가 어떤 건지 잘 알고 있다. 생각보다 화려한 이력을 지니고도 빛나는 자기소개서를 못 쓰는 사람이 정말 많다는 것을 취업 준비를 하면서 느꼈다. 내가 이제껏 뭘 해왔는지를 늘어놓기에 급급한 서류는, 수많은 비슷한 지원자들 사이에서 묻히기 마련이다. 나는 어떤 사람이다!라는 진실된 인상이 있어야 한다. 이는 스타트업 공동창립자로서 사람을 채용하면서도 뼈저리게 느꼈다. 읽는 사람은, 진심으로 좋은 사람을 뽑고 싶고, 당신이 누군지 진심으로 궁금해 한다. 그것을 글로 잘 풀어내는 것이 지원자의 몫이다.
자기소개서가 막막하다면 그건 자신에 대해 충분히 사유하지 못했다는 뜻이거나 자신감이 부족해서일 것이다. 특히 한국에서 취업준비를 할 때, “이런 걸 써도 될까?”하는 고민을 하는 친구들이 참 많았다. 정답 찾는 한국 교육 문화에서 오는 자신감 부족이다. 자신을 보여주는 좋은 에피소드는 사실 뭐든 활용하면 되고 풀어내기 나름인데, 기업 담당자가 원하는 에피소드가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만의 이야기가 없는 자기소개서는 정말이지 읽고 싶은 매력이 없다.
나는 자기소개서에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았다. 내가 왜 이 영역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어떻게 그 관심을 공부로 이어왔고 왜 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공부하고자 하는지. 옥스퍼드의 기준인 1,000단어로 사실 턱없이 부족할 정도였다. 쓰고 싶은 것들을 쭉 쓰고, 많이 쳐내고 다듬었다.
나는 아동 발달 중에서도 주의력이라는 분야에 열정이 있었다. 초반부에는 아동 발달에 내가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아이를 키우기 시작했고, 논문을 읽기 시작하며 지식이라는 게 현실과 이다지도 긴밀하게 얽힐 수 있다는 깨달음에 감탄했던 이야기를 썼다. 그 지식을 나누기 위해 유튜브를 시작하고 부모들과 소통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그러다 보니 내 아이를 잘 키우고 싶다는 열정이 대한민국, 나아가 전 세계 아이들이 잘 크는 데 이바지하고 싶다는 열정으로 이어졌다는 이야기를 썼다. 이를 위해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고 창업을 했고 무엇을 해 왔는지에 대해, ‘논문 2,000편’ 과 같은 구체적인 숫자들을 넣어서 썼다.
후반부에는 내가 주의력 공부를 하고 싶은 이유에 대해, 사회적인 대의와 엮어서 썼다. 개인적으로 내 공부가 사회적으로 무슨 의미가 있을지에 대해 서술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내 경우엔, 초등학교 입학 시점엔 주의력 격차가 이미 크게 나타나는데 이는 부모의 소득 수준과 가정 환경에 영향을 크게 받는다는 이야기를 했다. 학교에 들어가면 이미 갭을 메우기 어렵다는 근거는 제임스 헤크만 교수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제시했다. 영유아 시기에 주의력 발달이 잘 되도록 지원하는 것이 교육 격차를 줄이고, 저소득층에게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주의력 위기 시대에 이들을 지원하는 방법임을 주장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부모-아동 상호작용 속에서 주의력이 길러지는 요소들을 파악하여 커리큘럼화하고 부모교육이든 보육기관이든 대중의 부모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나의 목적임을 명확히 했다. 마무리로 입학 후 무엇을 중점적으로 공부하고 무엇에 대해 논문을 쓸 것인지를 기술했다.
물론 이는 모두 사실에 기반한 것이었다. 중요한 건 내가 막 열정적인 어조를 쓰지 않더라도 이걸 읽은 사람이 ’이 사람은 정말 진심이고 열정이구나‘라는 것을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여기까지 구체적으로 생각했구나, 그걸 위해 이런 것들을 해왔구나. 뭘 했는지도 물론 중요하지만 내가 해온 것들과 생각들이 하나의 큰 줄기로 엮어지는 게 가장 중요하다. 유튜브를 한 것? 옥스포드에서 그리 중요하게 보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내 이야기 안에서는 내가 공부한 지식을 타인과 나누고 싶었다는, 사회봉사적인 가치로 연결되므로 의미가 있었다. 모든 것은 맥락이 중요하다. 내 구독자가 100명에 불과했더라도 나는 그 이야기를 자기소개서에 적었을 것이다. ‘이 이야기 하찮은데’라는 생각으로 지레 겁먹지 말자. 다시 말하지만 맥락이 중요하다.
쓸 때는 기본적으로 옥스포드에 맞춰 쓰고, 다른 학교에 낼 때는 분량을 조절해서 고쳤다. 처음부터 영어로 썼고 문법이나 매끄러움을 CHAT GPT로 한번 교정을 받았다. 타인에게 보여주지는 못했는데, 시간을 두고 여러 번 읽으면서 보완할 점이 생각나면 조금씩 수정을 했다. 사실 오랫동안 기본적으로 글로 소통하는 일을 하며(영상을 만드는 일이지만 사실상 글로 스크립트를 먼저 쓰기에…) 내 글이 괜찮다는 것에 대해 조금 자신감이 있었던 것 같기는 하다. 글을 평소 많이 쓰거나 읽지 않는다면 아무래도 그런 일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보여주고 피드백을 받는 것이 좋기는 하겠다.
내가 자기소개서를 쓸 무렵 CHAT GPT가 하도 화두였고 나도 일에 적용해보려는 노력을 상당히 하던 때라, CHAT GPT로 기획을 해보려는 시도도 했다. 그런데 뭐랄까 CHAT GPT는 수많은 모범답안들을 학습한 녀석이기에, 시작부터 CHAT GPT로 하면 다른 잘 쓴 자소서와 너무 유사한 틀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수정을 하더라도 처음 기획안에서 아주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니 말이다. CHAT GPT로 만들어본 컨텐츠들이 너무 뻔하고 그럴듯하지만 깊이가 없는 경우가 많았어서(물론 내 능력의 한계일 수도 있지만), 조금 신뢰를 잃었던 상태이기도 했다. 도움은 받을 수 있지만 아무래도 큰 뼈대는 스스로 치열하게 고민한 후에 만드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다.
자기소개서 외에 큰 준비해야 할 서류는 이제 옥스포드에 제출할 Written work, 즉 에세이 두 편이 남았다. 자유 주제로 학술적인 글을 써서 내면 되는데, 캠브릿지와 UCL에는 이걸 제출하지 않아도 됐다. 내가 유튜브를 하지 않았다면 이 에세이를 쓰는 게 굉장히 큰 산이었을 것이다. 주제 잡기부터 리서치 등 다 해야 하니 말이다. 다행히 나는 유튜브를 하며 써둔 리서치 기반 스크립트들이 있었다. 두 에세이 중 하나는 영상으로 만든 스크립트를 활용했고(인터랙티브 미디어가 수동적 미디어에 비해 교육적, 발달적으로 어떤 이점이 있는지) 나머지 하나는 그 시점에 한창 리서치 중이던 자기조절력과 부모의 양육 태도의 관계에 대해 총정리하는 글을 썼다.
개인적으로는 두번째를 더 열심히 썼는데, 나중에 옥스포드 면접 때 면접관이, 첫번째 에세이가 매우 흥미로웠다고 말해 줬다. 나중에 다시 생각해 보니 내가 지원한 곳에서 주로 하는 연구와 두번째 에세이가 아주 긴밀하게 연관되지는 않았다. 지원하는 학과에서 주로 어떤 연구들을 하는지 살펴보고 어느 정도 연결성이 있는(하지만 이미 다루어지지는 않은) 내용으로 주제를 정하는 게 중요하겠다. 사람은 어쨌든 자신이 평소 생각해본 주제에 대해 읽을 때, 훨씬 더 쉽게 흥미를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자기소개서와 에세이 외에 또 힘들었던 게 바로 추천서 받기다. 여기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더 풀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