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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지 Aug 29. 2017

#54<혹성탈출: 종의 전쟁> 모션캡처의 영화적 가능성

무엇이 시저에게 인간성을 부여했나

© <혹성탈출: 종의 전쟁> 스틸컷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심화되는 '시저'의 감정은 리부트 작 <혹성탈출> 트릴로지의 서사에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처음엔 그저 놀라울 정도로 똑똑한 유인원에서 시작하였지만 시간이 흘러 <종의 전쟁>에 이르러서는 '셰익스피어적 인물'이라는 명칭이 붙을 정도로 심도 있는 감정을 내보인다. 시저를 비롯한 유인원의 얼굴에서 보이는 심도 깊은 감정선은 이 영화의 가장 큰 볼거리이면서, 동시에 영화의 메시지와도 직결된다.


  <혹성탈출>의 세 편을 거치면서 필연적으로 시저의 감정만큼이나 심화된 것이 있다. 시저의 감정 표현과 가장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모션 캡처의 기술이다. 더욱 심도 있는 시저의 감정을 표현해야 했기에 모션 캡처 기술이 심화되었고 모션 캡처 기술이 심화되었기에 시저의 내면이 더 섬세하게 표현되었기 때문. 기술의 발전으로 이 영화가 표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더욱 온전하도록 하였으니 모션 캡처의 기술 또한 이 영화의 주인공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영화 <혹성탈출: 종의 전쟁> 촬영 현장

 

  그렇다면 모션 캡처 기술이 발전이 영화라는 장르에 시사하는 바는 과연 무엇일까. 인간의 형태 밖에서 섬세한 인간적 표정(사고와 감정의 표현)을 담아낸다는 것, 그것이 주는 가능성과 한계는 과연 무엇인가.


   <혹성탈출>은 언어를 획득해 가는 유인원과 언어를 상실해 가는 인간의 모습을 세밀하게 묘사해낸다. 유인원 시저는 인간의 언어와 감정, 이성적 사고까지 터득해 가더니 이내 강한 분노(복수심)와 자신의 신념 사이에서 갈등하는 철학적 사고까지 실현한다. 모션 캡처 기술을 통해 이 내적 갈등의 과정이 말이 아닌 표정으로 전해지기에 우리는 시저의 심리를 더 리얼하게 따라가게 된다. 그렇다면 인간적인 고민을 유인원의 얼굴로 담아내는 시저를 지켜보는 관객들이 이런 질문을 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이성도, 감정도, 언어적 능력도 제한다면 인간은 무엇으로 정의할 수 있는가? 스스로의 논리에 따라 자연의 질서를 재구축해 온 인간에게 반기를 들 수밖에 없는 이 종족과 인간은 상생할 수 있을까? 모션 캡처로 실현한 시저는 영화의 메시지의 직접적 상징이자 은유이다. 예술의 한 갈래로서의 영화 속에 인간과 이 사회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욕망이 여전히 유효하다면, 기술은 영화에게 또 다른 은유를 가능케 한다는 것을 <혹성탈출>은 보여준 셈이다.


  우리와는 다른 얼굴, 그러나 같은 표정을 짓는 시저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인간에게 '타자'에 머물렀던 존재들이 주연으로서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시대가 본격적으로 올 것을 기대하게 된다. 타자가 주인공이 되는 영화들은 이들의 존재감 그 자체로 인해 필연적으로 인간 스스로를 성찰하도록 하는 질문들을 던지도록 한다. '인간성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특질, 더 나아가 본질이라 믿었던 것들은 존재하는가', '인간은 그들과 유사하면서도 타자인 존재들과 공존할 수 있는가.' 물론 이런 논의들이 그간의 영화 속에서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는 <A.I>나 <블레이드 러너> 등의 S.F 작에서도 종종 다루어졌지만 재현된 타자들은 여전히 인간의 모습에 가까웠다. 모션 캡처는 더 다양한 모습의 타자가 등장시키도록 함으로써 앞서 언급한 논의들을 더욱 확장시킬 것이다.

© <혹성탈출: 종의 전쟁> 스틸컷

   한편 모션 캡처 기술은 영화에게 다양한 은유를 가능토록 한다. 새로운 가능성을 늘 앞장서 모색해 왔던 앤디 서키스(시저를 연기한 모션 캡처 배우이면서 동시에 모션 캡처 스튜디오 이미 지내리 엄(The Imaginarium)의 설립자)의 다음 연출작은 <동물 농장>이다.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이 실사화 된다니! 물론 공산주의 사회가 실패한 현재 시점에 앤디 서키스의 <동물 농장>이 시사하는 바는 분명 다르겠지만 정치 풍자적 우화(혹은 알레고리 소설)의 영화적 실현이라는 점에서 그의 차기작은 모션 캡처가 어떤 영화적 메시지를 실현할 수 있는지 그 또 다른 가능성을 엿볼 수 있게 한다.


 모션 캡처가  타자의 모습을 구현하면서도 그 안에서 인간을 담아내려는 지극히 인간 중심적인 욕망을 바탕으로 하는 만큼 모션 캡처는 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이 될 수도, 혹은 한계를 맞딱뜨릴 수도 있다. 이는 인간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모션 캡처가 재현할 존재들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에 달려있을 것이다. 모션 캡처를 CG 기술로 받아들이기 앞서 감독과 모션 액터에게 타자를 어떻게 구현할 것이며 그 타자들에게 인간의 무엇을 담아낼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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