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지 Feb 28. 2018

<리틀 포레스트> 비움의 미학


*이 글은 브런치 무비패스가 마련한 시사회를 관람한 후에 작성되었습니다.


마음 속을 짱짱하게 채우는 감정을 선호하던 때가 있었다. 어린 시절 <태극기 휘날리며>를 보며 이토록 슬픈 감정은 처음이었고, <국제시장>을 보며 내 인생도 비극으로 점철된 희극처럼 보이는 묘한 카타르시스도 느꼈다. 이 작품들이 천만 관객을 넘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이런 감정을 폭발하여 느껴지는 감정의 정화 작용을 나만 좋아했던 것은 아닌 모양이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극의 장르이기에, 많은 성공 영화가 드라마틱한 서사를 극대화 하여 감정을 자극하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근데 언제부턴가 이런 것이 조금 불편하다. 내가 느끼는 감정이 어떤 통찰이나 진실된 감정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롤러코스터를 타면 짜릿한 것처럼 누군가 그저 탁, 스위치를 키면 틀어지는 본능적인 것이란 걸 눈치 챘을 무렵부터 일거다. 이 정도의 드라마틱 함이 아니면 더이상 눈물이 나지 않는 중독과 마비를 겪는 다는 것을 알게 된 무렵부터이기도 하다. 감정을 폭발시키는 카타르시스 미학의 마술사, 김용화 감독의 <신과 함께>가 최근 흥행을 하는 것을 보면, 어전히 그 이런 서사의 효력이 다했다고 보기는 어렵겠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사람들도 이런 눈물을 조금씩 경계한다.


최근 <효리네 민박>이나 <삼시세끼>와 같은 예능이 인기를 끌고, 젊은 이들 사이에서 '소확행'. '노멀크러시'와 같은 키워드가 트렌드로 자리잡는 것도 같은 맥락에 있다. '국가'와 같은 거시적 가치를 위한 개인의 희생, 그리고 그 비장함에 관한 영화적 메시지에 관객은 조금씩 탈주를 시도하고 있다. 이제 우리의 마음을 채우는 것은 눈물샘을 자극시켜 부정적 감정들을 함께 씻겨나가도록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조금 더 개인적이고 조금 더 담백한 것들이다. 이런 트렌드에는 비움의 미학이 있다. 거창한 이야기나 입담을 비워내고 그저 제주도 풍경을 함께 바라보는 그 눈빛만으로 <효리네 민박>은 사람들의 가슴을 잔잔하게 울린 것처럼 말이다.  <리틀 포레스트>의 가장 큰 매력도 그런 비움의 미학이다.



<리틀 포레스트>는 무엇을 비웠을까? 우선, 이야기를 비웠다. 구구절절 인물의 특별한 사연을 말하지 않는 셈이다. 혜원과 재하와 은숙, 그리고 혜원의 엄마에게는 이야기가 있긴 하지만, 그 이야기들은 대부분 단편적이며 특별하지 않다. 그렇기에 각 인물들을 설명하는 데 중심적이지 않다. 그냥, 혜원은 취업이 어려운 취준생, 재하는 퇴직하고 귀농한 젊은이라는 것으로 이들의 이야기를 모두 설명할 수 있는 정도.

이야기에 여백이 많다는 것은 내 이야기로 채울 수 있는 곳이 많다는 의미다. 혜원과 재하를 퍽퍽한 삶을 사는 이들을 모두가 자신 스스로로 치환할 수 있다. 특별하고 드라마틱한, 어떤 특수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냥 나와 다르지 않은 누군가가 농촌에서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영화를 따라가다보면 어느 새 그냥 내가 그 농촌에 절친한 고향 친구들과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특히 이야기의 공백이 가장 큰 매력을 보였던 부분은 혜원의 어머니이다. 혜원의 엄마가 말없이 혜원을 떠났어야 하는 데에는 어떤 이야기도 더해지지 않는다. 오직 혜원이 스스로 기억하는 엄마를 되살려보면서 당신이 떠난 이유를 짐작하고 또 이해해볼 뿐인데, 그 과정을 통해 우리도 그 인물의 삶을 조심스럽게 짐작하고 이해하게 된다. 인물 각각의 이야기를 서사에 가득 메우는 것보다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이해하는 과정을 따라가는 것이 그 인물들에 더욱 설득될 때가 있나보다.


감정을 비운다. 간간히 혜원의 한숨이나 재하의 표정이 감정을 비추는 듯 하지만, 그 감정은 폭발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그저 잠깐, 인물들에게 머물렀다 사라진다. 감정을 촘촘히 쌓아올려 폭발시키는 서사는 때때로 그 감정이 정답인 것처럼 제시된다. <신과 함께>에서 어머니는 자식에게 해주지 못한 것을 회한하고, 자식은 어머니의 지대한 사랑에 보답하지 못해 슬퍼해야 하는 것이 모든 어머니와 자식 사이의 정답처럼 존재한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 어떤 감정을 폭발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리틀 포레스트>는 한 개인의 견디기 힘든 삶에 어떤 감정이나 성장을 정답처럼 내세우지 않는다.

대신 감정이 채워져야 할 공간에 영화는 음식을 먹는 혜원의 '한 입'을 채운다. 그 먹는 행위를 통해 말로써 어떤 정답을 주지 않아도 마음이 정화된다. 스스로 거두어 올린 수확물로 지글지글 소리와 함께 요리한 음식을 먹는 소소한 기쁨. 그 먹는 맛에 우리도 함께 마음의 짐을 털어 낸다. 말을 하지 않고 감정을 부풀리지 않아도 먹는 한입, 그걸로 우리는 인생의 힐링을 만난다.


<리틀 포레스트>는 오늘, 극장에서 개봉한다. 흥행할 수 있을까? 흥행법칙에 부합하는 영화가 아니기에 확언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단 한가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영화를 보고 나오는 관객들만큼은 그 순간만큼은 농촌의 세 청년의 이야기에 새로운 힐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란 점이다. 촘촘한 서사와 감정선 없이, 영화 곳곳을 여백으로 남겨둔 이 담백한 영화가 가진 호소력을 많은 이들이 공감하길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 #77<브루클린> 나는 어떻게 이 도시를 사랑하게 됐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