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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지 Jul 08. 2017

#46 <기적> 행복을 향하는 아이들의 본능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아이들이 기적을 찾아간 자리에 있던 것


  기차와 기차가 만나는 순간 기적이 이뤄진대!


     가고시마서 ‘사쿠라호’가 260km로 달려오고 하카타에서 ‘츠보미호’가 206km로 달려와 두 열차가 처음 서로 스치고 지날 때 기적이 일어난단다. 안 그래도 실험실 수업이 지루했는데 이 신비한 이야기에 아이들은 귀가 솔깃하다. 그리고 각자 마음속에 이루어졌으면 하는 기적 하나씩을 품어본다. 조만간 아이들의 마음속에는 온통 ‘기적’이 이루어지는 기차로 가득 찬다. 기적이 이루어지면 얼마나 멋질까!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관객은 기찻길을 향해 주저 없이 뛰어가는 이 아이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


바로 이렇게.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스틸컷.


   아이들은 기적을 찾아 달려갔지만 기차가 만나는 순간 아이들이 진짜 바랐던 것들을 들으니 그들이 찾아 나선 것은 기적이 아닌 행복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 없이 빠르게 달리기만 하는 것 같았던 아이들은 달려가던 어느 틈샌가 자신을 가장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진중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유명한 야구선수가 되는 것보다 죽은 강아지를 살리는 것이 더 행복할 것이고 선생님과 결혼하는 것보다 우리 아빠가 더 이상 도박을 하지 않는 것이 행복할 것이라고. 


  아이들의 행복은 그들의 삶, 일상과 동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일상의 행복조차도 사실은 기적과도 같은 것이니 그래, 아이들이 찾은 것은 행복도 맞고, 기적도 맞을 것이다. 사실 진짜 기적은 아이들의 능력, 자신을 가장 행복하게 만드는 것들을 감지하고 그것을 향해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달려가는 그 축복받은 능력과 에너지일지도 모르겠다. 


기차가 지나가던 순간 배우가 되게 해달라고 외치는 메구미. 메구미에게는 그 순간의 외침만으로도 '기죽지 않고, 안될 거라 말하지 않고, 나도 여배우가 될 수 있다'고 믿어 볼 수 있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메구미는 여행에서 돌아온 날 용기를 얻어 도쿄로 떠나겠다고 말한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스틸컷.



그중에서도 코이치의 행복은 특히 눈길이 간다.


한 입 베어 먹은 아이스크림, 남아있는 과자 부스러기, 겨드랑이에 열을 내서 잰 40.1도, 화산이 분출하는 빨간 물감, 6학년 3반이 적힌 명찰, 엄마가 만들어준 밥, 물에 담가 놓은 수영복, 집에 가던 길의 흙, 꿈을 꾸듯 무언가를 표현하던 할머니의 손짓, 선생님이 미안한 마음을 전하며 잡던 어깨, 가루칸떡, 이제는 색이 조금 바란 동생과 찍은 사진. 


  코이치가 기차가 교차하는 순간 떠올린 것들이다. 늘 가족과 함께 사는 것을 일관되게 꿈꿨던 코이치는 끝내 자신의 소원을 빌지 않는다. 그 대신 머쓱하게 웃으며 동생에게 말한다. “가족보다 세계를 선택했거든.” 코이치의 아빠에게 세계는 음악이었지만 코이치에게 세계는 그의 일상 속 구석구석에 녹아있던 기억이었다. 꾀병을 지지해주던 양호 선생님과 할아버지에 대한 고마움. 다 먹은 과자 부스러기가 가장 맛있었던 기억. 수영 학원을 다녀온 흔적인 수영복. 할아버지의 자부심이 담긴 가루칸떡. 코이치는 화산재가 날리는 가고시마의 일상에 늘 뚱해있었지만 기차가 교차하는 순간 일상 속에 행복의 흔적들을 찾아낸다. 이제 가고시마에서의 일상은 코이치의 세계이자 행복이고 또 기적이 된다.


  영화는 말한다, 아이들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고. 그렇기에 이 영화는 행복을 찾아내고 이를 위해 뛰어가는 아이들의 본능에 대한 찬사이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 아이들의 모습은 등장하는 많은 어른들이 자신의 행복 앞에서 머뭇거리고 주저하는 것과 대비된다. 여배우가 되고 싶었지만 ‘그때 더 열심히 했더라면...’하고 현재에 안주하고 있는 메구미의 엄마. 류를 보고 싶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전화조차 자주 걸지 못하던 류의 엄마. 잘 나가는 가루칸을 만들고 싶지만 전통을 지키느라 늘 밍밍한 가루칸만 만들던 할아버지. 아이들은 달린다면 어른들은 그들만의 이유로 멈춰있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아이들은 옳고 어른들은 틀렸다는 이분법적 경계를 긋고 있지는 않다는 것도 말해두고자 한다. 영화는 유년시절을 훌쩍 지나쳐온 어른들의 행복도 배제하지 않는다. 아이들처럼 행복한 것을 향해 곧장 달려가지 못했던 어른들이 있었지만 그들 또한 일상에서 행복하게 웃는 순간들이 있다. 동창들을 만나며 함께 노래를 부르며 헤어지던 순간에. 춤 학원에서 춤을 추던 시간에. 어딘가 씁쓸하게 삶을 살아가던 그들이 행복하게 웃는 짧은 순간들을 비추며 영화는 어른들에게도 말한다. 당신은 여전히 행복이 어디에 있는지 안다. 그 행복이 멀리 있지 않다는 것도. 이 아이들처럼 웃을 수 있다는 것도. 


"아이들도 가슴이 저릿저릿할까."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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