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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임죄(2)] 회사를 위한 경영상의 판단이었어요

법을 알아야 하는 이유

by 평범한지혜

수많은 배임죄 사건에 있어서 유죄인지 무죄인지를 가르는 중요한 원칙, 바로 경영 판단의 원칙(business judgement rule)이 바로 그것입니다.


쇼핑몰을 운영하는 회사의 K이사가 있습니다. K이사는 일본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감기 비슷한 전염병이 돌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코로나 전염병이 돌던 때가 생각나서, K이사는 회사의 자금을 대대적으로 투자하여 마스크를 사재기하여 두자고 강력하게 주장하였고, 다른 임원들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그렇게 강행시켰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일본에서 잠시 문제가 된 그 병은 단순한 감기에 불과한 것으로 판명이 났습니다. 회사는 마스크를 사재기하느라 큰 손해를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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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K이사는 회사에 손해를 끼쳤기 때문에
손해배상이나 배임죄의 책임을 져야 할까요?

K이사는 대번에 이렇게 얘기할 겁니다.


"아니, 내가 회사 좋자고 그랬던 것이지 나 좋자고 그랬던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결과적으로 회사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무조건 내게 손해배상이나 배임죄 책임을 지라는 것은 너무하지 않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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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이사의 이런 주장이 바로 다름 아닌 경영판단의 원칙(business judgement rule)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경영판단의 원칙이란,
이사가 경영상 회사의 이익을 위하여 선의를 가지고 신중하게 판단하였다면 그 판단의 결과가 비록 회사에게 손해가 발생하여도 그 손해에 대하여 이사에게 손해배상이나 배임죄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원칙(법리)입니다.


K이사의 이런 주장(경영판단의 원칙)은 말 자체는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K이사가 과연 '경영상 회사의 이익을 위하여
선의를 가지고 신중하게 판단하였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K이사가 이런저런 얘기를 한다고 수사기관이나 법원에서, "아, 그렇군요."라고 호락호락하게 넘어갈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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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인 기준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맞습니다. 법원은 경영 판단의 원칙을 적용할 때 어느 정도 구체적인 기준을 만들어 두었습니다. 법원이란, 이렇게 추상적인 기준을 현실의 상황에 실제로 적용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기준을 만드는 일을 하는 곳입니다.


쇼핑몰 회사의 K이사가 마스크 사재기를 하자고 해서 회사가 대규모 사재기를 했지만, 전염병이 발생할 수 있다는 소식은 잘못된 것이어서 쇼핑몰 회사가 큰 손해를 입었습니다. K이사는 회사의 이익을 위해서 선의로 하였던 경영 판단이므로 자기에게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된다고 강변하고 있습니다(경영 판단의 원칙).


수사기관이나 법원은 구체적으로 어떤 기준을 적용할 수 있을까요? K이사의 주장이 원칙적으로는 맞는 얘기이긴 하지만 그 주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애매모호하지요? 이럴 줄 알고, 법원은 구체적인 기준을 2가지 마련해 두었습니다. 이리 가까이 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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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은 두 가지를 눈여겨보라고 합니다.

①K이사에게 '개인적 이익'이 있었는지 여부(미국에서는 이것을 충실의무 duty of loyalty가 문제 되는 상황으로 이해합니다, 이사가 '사익의 유혹'에 빠진 경우입니다)


②K이사가 '정보의 수집'을 충분히 하였는지 여부(미쿡에서는 이것을 주의의무 duty of care가 문제 되는 상황으로 이해합니다, 이사가 '나태의 유혹'에 빠진 경우입니다)(참고로 duty of loyalty와 duty of care를 합쳐서 미쿡에서는, 신인의무 duty of fiduciary라고 부릅니다).


경영 판단의 원칙을 배임죄에 처음 수용한 2004년도 대법원 판결을 통해 위 ①②를 확인해 보겠습니다.


기업의 경영에는 원천적으로 위험이 내재하고 있어서 ①경영자가 아무런 개인적인 이익을 취할 의도 없이 선의에 기하여 ②가능한 범위 내에서 수집된 정보를 바탕으로 기업의 이익에 합치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신중하게 결정을 내렸다고 하더라도, 그 예측이 빗나가 기업에 손해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는바, 이러한 경우에까지 고의에 관한 해석기준을 완화하여 업무상 배임죄의 형사책임을 묻고자 한다면 (중략) 영업이익의 원천인 기업가 정신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게 되어 (중략) 단순히 본인(회사)에게 손해가 발생하였다는 결과만으로 책임을 묻거나 주의의무를 소홀히 한 과실이 있다는 이유로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대법원 2004. 7. 22. 선고 2002도4229 판결 참조).


(이 판결에 대해 학자마다 문장을 끊어 읽는 곳이 다르지만, 위와 같이 미쿡식 전통에 따라 문장을 끊어 읽는 것이 가장 적절하고 또 이해하기도 쉽습니다. 본래 business judgement rule은 미쿡에서 수입한 것이니, 미쿡식 전통으로 끊어 읽자는 제 말을 믿으세요).



K이사가 마스크를 사재기해 두자는 것이
과연 회사의 이익을 위하여 선의로 하였던 경영 판단일까요?
그는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될까요?



자, 이제부터 판사처럼 위 판례를 이용하여 하나씩 따져 보겠습니다. 에헴.


첫째, 회사가 마스크를 사재기해 두는 것과 관련하여 K이사의 개인적 이익이 관여된 것은 없는지(not interested) 살펴보아야 합니다(duty of loyalty, 사익의 유혹).


만약에 쇼핑몰 회사의 K이사가 사실은 마스크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자라면 어떨까요? K회사가 또는 K이사의 친인척이나 친구가 마스크 회사의 대주주이거나 이사라면 어떨까요? 이런 경우, K이사가 "나는 회사의 이익을 위하여 선의로 마스크를 사재기하자고 했다"라고 주장하는 것을 곧이곧대로 믿기가 쉽지 않습니다. 인지상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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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쇼핑몰 회사가 마스크를 구매한 것이 오로지 K이사가 운영하는 회사로부터만 구입을 하였다면 어떨까요? 나아가 그것도 일반적인 시세보다 비싼 가격으로 구입했다면 어떨까요?

슬슬 그가 과연 회사의 이익을 위하여 선의로 경영 판단을 하였다는 생각으로부터 걸어 나오게 되지요.



둘째, 회사가 마스크를 사재기해 두는 것과 관련하여 K이사가 충분히 정보의 수집을 하고 결정한 것인지(informed) 살펴보아야 합니다(duty of care, 나태의 유혹)


만약에 쇼핑몰 회사의 K이사가 일본에서의 감기처럼 보이는 병에 대한 정보를 정확히 확인하지도 않고 마스크 사재기를 주장한 것이라면 어떨까요? 만약에 일본에서의 감기처럼 보이는 병에 대한 정보가 알고 보니 K이사가 운영하는 마스크 회사의 직원으로부터 보고를 받은 것이고 K이사는 더 이상 확인해 보지도 않았다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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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쇼핑몰 회사가 구입하려는 마스크에 대해서 다른 업체에서 훨씬 싼 가격으로 공급하고 있다는 사정을 조사해 보지도 않고 무조건 K이사가 운영하는 마스크 회사로부터 구매하기로 결정을 강권하였다면 어떨까요?


슬슬 그가 과연 회사의 이익을 위하여 선의로 경영 판단을 하였다고 믿기지 않을 겁니다.



이제, 간단히 정리해 볼까요.

경영 판단의 원칙(businese judgement rule), 회사의 의사결정을 책임지는 경영자들이 알아 두면 좋은 원칙입니다. 이 원칙은 위험한 사업의 세계에서 기업가 정신을 발휘하는 경영자들을 위한 원칙입니다. 그러나 이 원칙은 개인적 이익을 회사의 결정에 관여시키지도 않고 정보의 수집을 충분히 하여 회사의 이익을 위해 신중히 의사결정을 하였던 경영자, 즉 '사익의 유혹'과 '나태의 유혹'에 빠지지 않은 경영자들만 보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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