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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슬기 Dec 28. 2017

결혼할 상대를 어떻게 골라야 하냐고 묻는 청춘에게

그놈이 그놈 중에 그놈을 고르는 법


결혼할 상대를 어떻게 골라야 하냐고 묻는 청춘에게



"엄마가 1억은 보태줄 수 있다고 하니까, 내가 모아 놓은 돈이랑 합하고 모자란 건 대출을 받아서 서울 변두리 아파트 전세를 알아보자."

"대출? 무슨 대출? 아버님이 아파트 정도는 해주시는 거 아니야? 아니 어떻게 대출을 받아? 어머 너무 당황스럽다."



그녀는 아파트 한 채는 당연히 해와야 한다고, 대출 같은 건 상상해 본 적도 없다며 학을 뗐다.

5억이 넘는 아파트 한 채는 커녕 2억짜리 전세를 구해줄 아버지가 없는 그는 그녀를 설득하고 회유했다. 


반쯤의 애원과 반쯤의 협박 끝에 집 문제는 일단락이 되는 듯했으나 크고 작은 문제들은 끊임없이 튀어나왔고, 그때마다 그의 귓속에는 그녀의 목소리가 울려댔다. 


"어머 너무 당황스럽다. 

아파트 정도는 당연히 해주셔야 되는 거 아니야?"


얼마쯤의 분노와 얼마쯤의 후회, 얼마쯤의 흔들림을 안고 그는 방황했다. 좀처럼 무뎌지지 않는 쓰라림에 몸부림치던 어느 날 밤, 그는 전하지 말아야 할 말들까지 모두 쏟아내는 철부지 소년이 되었고, 경솔하게 놀린 혓바닥은 돌이킬 수 없는 상처가 되어 돌아왔다. 


"우리가 능력만 있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걸.

집 한 채 사줄 능력도 없는 게 이렇게 속상할 수가 없네요."

"그러게 말이야. 다 내가 부족한 탓이지."



강제 징병으로 끌려갔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온 무일푼의 아버지 밑에서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한 남자. 9급 공무원으로 입사해 하늘에 별 따기라는 5급 사무관 시험까지 통과한 그의 아버지는 일순간에 무능력자가 되었다. 그는 그의 아버지가 일구고 이뤄온 수많은 것들을 최소한의 능력조차 갖추지 못 한 수준으로 전락시켜 버렸고, 이제는 어쩔 수도 없는 실수를 한없이 자책하며 이별의 가능성을 굴려대기 시작했다. 


달라진 그의 기류를 알아챈 그녀는 파혼을 선언했고, 그는 그런 그녀를 잡지 않았다.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라며 집이 문제라면 어떻게든 돈을 더 마련해 보겠다는 부모의 만류는 무력했다. 이 모든 과정을 별말없이 지켜본 나는 결혼할 상대를 고르는 제1법칙 [그놈이 그놈 중에 그놈을 고르는 방법]의 기본을 모르는 남녀가 그저 안타까울 뿐이었다. 






새 앨범을 들고 돌아온 소길댁 이효리가 라디오 스타에서 했다는 한 마디 "그놈이 그놈이다"를 보고 피식 웃었는데, 그 말에 담긴 그녀의 내공이 느껴지기도 했거니와, 굳이 방송을 보지 않아도 그 말속에 담긴 만고의 진리 - 이놈이고 저놈이고 하자 없는 놈은 없다. 세상에 완벽한 놈, 특별한 놈은 없다 - 가 들렸기 때문이다.


내가 줄곧 주장하는 결혼의 제1법칙 [그놈이 그놈 중에 그놈을 고르는 방법]은 여기서 시작한다. 세상에 하자 없는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으므로 이놈이고 저놈이고 어차피 결함상품인 건 매한가지인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 흠의 모양과 위치가 제각각이란 걸 알 수 있다. 


가지각색의 흠들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되는 데, [참을 수 있는 흠과 참을 수 없는 흠]의 이 분류는 지구 상에 존재하는 여자들의 숫자만큼 다양하다. 누군가에게는 1분 1초도 견딜 수 없는 흠이 누군가에게는 별것도 아닌 흠이 되곤 하므로 봐줄 수 있는 흠과 꼴도 보기 싫은 흠을 나누는 건 나 자신이고, 나에 대한 이해가 분명할수록 더 나은 놈(정확하게는 더 잘 맞는 놈)을 고를 수 있는데, 일단 무언가를 골랐다면 그 무언가에 존재하는 흠은 철저하게 부록으로 취급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친구들 중 가장 일찍 결혼을 한 나는 결혼해도 좋을 남자라는 걸 어떻게 확신할 수 있냐는 질문을 종종 받곤 하는데, 그때마다 선명하게 떠오르는 연애 2년 차 어느 날의 대화를 곱씹는다. 








갑자기 왜 그런 질문을 꺼냈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그에게 물었다.

"자기는 꿈이 뭐야? 이루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게 있어?"



그때 그의 대답은 굉장히 놀라웠는데,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꾸한 말이 '여우 같은 마누라, 토끼 같은 자식이랑 행복하게 사는 것'이었다. 


나는 순간 매우 당황했는데, '이게 20대 초반 남자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대답인가?'하는 의아함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니 이건 은퇴 후의 가장이 할 법한 이야기가 아닌가?'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정말? 그게 꿈이라고? 어떤 일에서 성공하고 싶다거나, 어떤 자리에 오르고 싶다거나, 돈을 얼마큼 벌고 싶다거나, 뭐 그런 목표나 꿈같은 건 없어?"



그는 말했다.

"돈이고 자리고 권력이고 다 부질없는 거야. 인생무상 몰라?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인생.

무언가를 이루려고 아등바등 사는 것보다 지금 이 순간의 행복에 충실한 게 제일이지. 

나는 돈이나 성공에 대한 욕심 없어. 여우 같은 마누라, 토끼 같은 내 자식 굶기지 않고 먹여 살릴 정도의 돈이야 벌 수 있겠지. 귀여운 내 새끼들 데리고 알콩달콩 사는 거~~ 그게 내 꿈인데, 왜? 이상해?"



아니라고 손을 휘저으며 생각했다.

'오호라, 이놈은 결혼까지 생각하고 만나도 될 놈이군.'








내가 최초로- 동시에 매우 명료하게 - 그런 확신을 가진 이유는 하나인데, 그가 삶을 대하는 태도가 나의 인생관과 정확하게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독기 어린 야망 없는 그가 좋았다. 결핍 없이 자라 원만한 성품도, 언제나 느긋하고 여유로운 태도도 좋았다. 나에겐 일에 미쳐 부인이고 자식이고 안중에 없는 남자가 참을 수 없는 흠이었고, 내일의 행복을 위해 오늘의 나를 저당잡히는 삶을 혐오하는 그를 주저 없이 선택했다.


그리고 기꺼이 수용했다. 두 시간쯤 공부를 하고 나면 네 시간쯤 쉬어 주어야 하는 그의 방식도, 열 시간쯤 자고 나도 열두 시간쯤 더 잘 수 있는 그의 일상도. 나는 그를 '공부는 기본 8시간, 수면은 최대 5시간'이라는 나의 기준에서 재단하고 평가하지 않았다. 평가가 없으니 비난과 지적질 역시 뒤따를 일이 없고, 나와 다른 그를 이해해 보겠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그저 언제나 신기해할 뿐, 한결같이 혀를 내두르며 감탄한다. 

"우와. 정말 대단하다. 놀라워!" 


불가능한 것을 향한 욕망은 자신과 상대를 해치는 최악의 흉기로 돌변한다. 느긋하고 여유로운 남자를 택했다면 약간의 한만함과 나태함은 흠이 될 수 없다. 일보다 가족을 우선시하는 남자를 골라놓고 화려한 직장과 입이 떡 벌어지는 연봉을 기대한다는 건 가당치도 않은 일이 아닌가.








돈과 자리를 욕망하지 않는 남자를 선택한 나는 그가 대기업에 들어가지 않아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어도, 편의점을 시작해도 언제나 그를 지지하고 응원하며 진심으로 존경한다. 더없이 가정적인 아버지를 둔 남자를 사랑하는 나는 매일 아침 우리집 현관문에 그가 먹을 아침을 걸어놓고 수차례 전화를 하며, 우리 착한 아들이 부인에게 무시를 당하며 꼬봉 노릇을 하고 있다고 굳게 믿는 어머니를 불편해하지 않는다. 자신의 장점을 '정직함'으로 꼽는 남자의 아내인 나는 거짓 보고서를 작성하는 불법 행위를 강요하는 사장의 명령에 따르지 못 하는 그에게 "괜찮아. 사표 써!"를 말할 수 있고, 6개월의 백수 생활도 기쁘게 즐긴다. 내가 그를 선택한 순간, 그가 비난받아야 할 흠과 한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사랑하고 보듬어야 할 한 남자가 존재할 뿐이다. 


그놈이 그놈 중에 그놈을 선택했다는 것은, 그놈이 가진 매력뿐 아니라 그놈이 가진 흠과 하자, 그놈이 갖지 못 한 수많은 것들 또한 함께 끌어안는 것이다. 그놈이 갖지 못한 것을 욕망할 거라면 그놈을 선택하지 말았어야 할 일. 왜 너는 그걸 갖지 못 했느냐, 왜 너는 그런 흠을 갖고 있느냐 상대를 비난할 일이 아니라 그런 흠을 갖고 있는 그를 선택한 나 자신을 비난하고 몰아칠 일이다.


내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가치, 내가 결코 견뎌낼 수 없는 하자를 명확하게 분별하자. 어느 위치, 어떤 모양의 흠을 참을 수 [있고] [없는지] 분류하고, 신중하게 선택하자. 그리고 책임지자. 최선을 다해서, 아주 확실하게.


언제나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는 없다. 잘못된 선택을 했다면 다시 시도하자. 모든 실수는 값진 경험이다. 그걸 밑거름 삼아 성장하면 될 일이다. 


성불을 이루지 못 한 바에야 조금의 불평과 비난, 구시렁 없이 타인을 감싸 안을 수는 없다. 때때로 부딪치고 흔들리고, 갈등하고 미워도 하겠지만 상대의 가슴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지는 말자. 내가 뭐라고 너를 비난하는가. 나는 너보다 나은 인간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 너 아닌 다른 너는, 너보다 과연 더 괜찮을까.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23살 아들에게 거세게 불타는 순간의 장작불 같은 사랑보다 오래도록 은은하게 따스한 연탄불 같은 사랑을 하라고, 사랑은 결코 어느 한 쪽의 희생으로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고, 언제나 끊임없이 상대를 위해 애쓰고 노력할 때만이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사랑이니 그 귀하고 아름다운 불씨를 꺼트리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말씀하셨다는 아버님을 추억하며… 


결혼할 상대를 어떻게 골라야 하냐고 묻는 청춘에게 대답하고 싶다. 그놈이 그놈이라는 진리, 그놈이 그놈 중에 그놈을 고르는 법칙을 기억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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