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슬기 Jan 08. 2018

첫 경험을 고민하고 있는 소녀들에게

남자 친구가 잠자리를 요구할 때 

                                                                                  

   

첫 경험을 고민하고 있는 소녀들에게





서점에서 시집 코너를 둘러보다 책 한 권을 들춰봤어요.


오래 보아야 예쁘다 너도 그렇다




예쁜 제목에 감탄하며 우연히 펼친 페이지.


자기를 함부로 주지 말아라

자기를 함부로 아무것에나 주지 말아라
부디 무가치하고 무익한 것들에게
자기를 맡기지 말아라
그것은 눈 감은 일이고 악덕이며
인생한테 죄짓는 일이다

가장 아깝고 소중한 것은 자기 자신이다.

- 나태주                                                                                                                                               



                                                                                            

이 시를 읽고 나니 오래전부터 가슴에 담아왔던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첫 경험을 고민하는 소녀들에게 말하고 싶어요. 

'내 몸을 준다', '관계를 허락한다'는 말을 박박! 벅벅! 완전히 지워버리라고요. 나는 함부로 주지 말아야 할 것, 아무것에나 주지 말아야 할 것이 아니라 신중하게도, 좋은 사람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줄 수 없는 것이에요. 내 몸은 누군가에게 줄 수 있는 물건이 아니므로, 내 몸의 주인은 언제나 '나 자신'. 고로 첫 경험은 절대 '허락하는 것'이 될 수 없습니다.






'허락하다'의 뜻은 '청하는 일을 하도록 들어주다'.

성관계는 청하는 일을 들어주는 일이 아니에요. 섹스는 상대방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한 것이 아니므로, 섹스의 핵심은 상대의 요구가 아니라 '나의 욕망'에 있습니다. 






                                                                                            

우리 때만 해도 첫 경험에 대한 고민은 스무 살 무렵, 대학생활과 함께 시작되었는데 세대가 낮아질수록 첫 경험의 시기가 빨라진다고 하니 요즘은 중·고등학교 학창 시절의 흔한 고민일지 모르겠어요. 연애를 시작하면 자연스레 스킨십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는데, 그 중심에는 '첫 경험의 시기'가 자리합니다.

성 경험이 있는 여자들에게도 남자 친구와의 첫 잠자리는 고민의 대상인데, 하물며 경험이 전무한, 10대, 20대 초반의 소녀들에게는 오죽할까요. 그녀들에게는 더욱더 절대적인 고민일 터-!

인터넷 검색창에 '첫 경험'을 검색해보니 남자 친구가 잠자리를 요구하는 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고민부터 언제 어디서 어떻게 첫 경험을 하는 게 좋다는 조언 글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쏟아지더라고요. 하지만 제가 꼭 당부하고 싶은 것은 사귄 지 며칠이 되었느냐, 남자 친구가 얼마나 간절히 원하느냐는 눈곱만큼도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는 말이에요.

한 달을 만났냐, 1년을 만났냐가 뭐가 그리 중요할까요. 사귄 기간은 전혀 고려하지 않아도 좋아요. 남자 친구가 너무 원한다고요? 참기 힘들어한다고요? 그건 그 사람의 사정일 뿐! 오로지 중요한 단 하나는 나의 욕망입니다. 내 마음!

첫 경험을 하기 딱 좋은 때가 언제냐 묻는다면 고민없이 답하겠어요. '저 사람과 자고 싶다'는 마음이 너무도 강렬해 그것 외의 다른 어떤 것도 생각할 수 없을 때. 바로 그때, 관계를 가지라고요. 


물론 반드시 주의해야 할 것이 있어요. 성관계가 야기할 수 있는 상황의 심각성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원치 않는 임신을 하지 않도록 철저하게 계획을 해야 한다는 것. 모든 선택에는 책임이 따르지만, 남녀 사이의 성관계는 특히나 더 무거운 책임이 뒤따릅니다. 하나의 생명이 생겨날 수도 있는 일. 이건 정말 무시무시한 일이랍니다.

일단 임신이 되는 순간 여자의 인생은 완전히 뒤집힙니다. 무엇을 선택해도 마찬가지에요. 출산을 하든, 낙태를 하든, 낳아서 입양을 보내든, 그 어떤 경우에도 결코 임신 전과 같을 수 없어요. 뒤돌아서서 나 몰라라 하면 그만인 남자들과는 다른 세상, 다른 사건, 다른 의미임을 알아야 해요. 아이는 오로지 단 한 사람, 여자인 내 몸에만 생긴다는 것을 명심하고 더욱 철저하게 대비해야 합니다. 


                                                  



                                                                                           

저는 21살에 처음으로 '진지한' 연애를 시작했는데, 만난 지 몇 주가 되지 않았을 때 선전포고하듯 내 의사를 밝혔어요.

"좀 생뚱맞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내 생각을 얘기해두고 싶어. 난 혼전순결주의자는 아니지만 연애를 하면서는 관계를 갖고 싶지 않아. 아무리 콘돔을 쓰고 피임을 해도 성공률 100%라는 건 있을 수가 없으니 임신이 될 수도 있는 거잖아? 난 낙태는 못 할 것 같아. 그런데 그렇다고 애를 낳으면? 지금 우리가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있는 처지도 아니고, 책임질 자격도 없으면서 덜컥 임신을 하는 건 정말 최악이야.

관계는 모두에게 축복받으며 행복하게 임신할 수 있을 때, 내가 아이를 제대로 책임질 수 있을 때 하고 싶어. 지금 우리는 전혀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까, 그냥 하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관계를 요구하거나 조르지 않았으면 좋겠어. 네가 그런 말을 꺼내면 난 정말 너한테 실망할 것 같아. 상상만 해도 정이 뚝 떨어져서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을 것 같거든. 그러니까 우리 이 부분에 대해서는 지금 확실히 해두자. 너는 어떻게 생각해?"

그는 내 생각에 동의했고, 절대 관계를 요구하지 않겠다 약속했어요. 그리고 자신이 한 약속을 철저하게 지켰습니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데이트를 할 때에도, 세 번의 여행을 다녀오는 동안에도 그는 결코 약속한 선을 넘지 않았어요.




                                                  


하지만 우리는 서로를 보기만 해도 불꽃이 타오르는 열정의 덩어리 - 청춘이었어요. 제대로 된 연애를 하기 전에는 알지 못했어요. 사랑하면 안고 싶고, 만지고 싶고, 가까워지고 싶고, 은밀해지고 싶다는 것을... 손을 잡으니 뽀뽀를 하게 되고, 뽀뽀를 하면 키스로, 키스는 진한 애무로, 농도 짙은 애무는 섹스를 향한 갈망으로 연결되었고, 사랑과 욕망은 구분해서 떼어놓기 힘들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우리는, 저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쾌락은 너무도 강렬해서 이성의 억압만으로는 제어하기 힘들다는 것을 몸으로 배웠습니다.



저는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멈추고 싶지 않다, 끝까지 가보고 싶다, 이 사람과 함께 하고 싶다.' 


그리고 검색했어요. 

'실패 없는 피임법, 완벽한 피임법, 피임 확률이 제일 높은 방법'



그리고 이야기했습니다.
"우리 다음 휴가 때 괜찮은 호텔에서 하루 자자. 다음 달 첫째 주면 좋을 것 같아. 생리 끝난 직후니까 그때가 괜찮아. 콘돔은 자기가 준비해. 그날이 우리 첫날밤이야. 그날은 멈추지 말고 끝까지 가자."

당시 그가 군인이었던지라 직접 말을 하지는 못 하고 편지에 이야기를 담아 보냈는데 (민간인이었다 한들 이 말을 입 밖으로 꺼내 직접 말할 용기까지는 없었을 것 같지만) 편지를 받아본 그에게 전화가 왔어요. 무슨 말을 할까, 어떻게 반응할까, 두근 반 세근 반 전화를 받았는데 그의 첫마디는 나의 상상을 뛰어넘는 말이었으니,


"도대체 무슨 일이야?"


응?  
응?

"응? 무슨 일이냐니? 편지 봤어?"
"봤지. 그러니까 묻잖아. 무슨 일이야? 집에 무슨 일이 생긴 거야?"
"일은 무슨 일. 우리 집에 갑자기 뭔 일이 생겨~"
"그럼 뭐야. 솔직하게 얘기해봐. 무슨 큰일이 생긴 거지? 얘기해봐. 괜찮아. 얘기해봐."

무슨 일이 생긴 게 틀림없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그를 진정시키는 데 꽤 긴 시간이 걸렸어요. 절대 아무 일도 없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전부터 오래 생각했던 문제다, 내 마음에 확신이 들었고, 결심이 섰기 때문에 이야기한 거라고 수없이 반복한 뒤에야 제대로 된 대화가 시작되었는데, 또 한 번 예상치 못 한 의외의 반응이 나왔으니 오늘부터 일주일간 더 생각해보라는 것.

그게 정말 '네 생각'인지, 전적으로 '네 마음이 시켜서 한 선택'인지 생각해보라고, 누구한테 무슨 말을 듣고 와서 그러는 건 아닌지, 다른 어떤 일 때문에 휩쓸린 건 아닌지, 차분히 내 마음을 다시 들여다보라고. 오늘 이야기는 없었던 걸로, 못 들은 걸로 할 테니 부담 갖지 말고 생각하라고, 일주일 뒤에 마음이 바뀌어도 괜찮다고, 이 이야기는 일주일 뒤에 다시 하는 걸로 하자며 대화 끝- 상황 종료. 


상상도 못 했던 그의 반응에 매우 당황했으나 저로선 어쩔 도리가 없는 일. 시키는 대로 일주일을 더 생각했고, 변함없는 내 마음을 확인했고, 다시 이야기를 나눈 뒤 우리는 우리의 '그날'을 함께 계획했습니다. 



그리고 맞이한 우리의 첫날밤. 강산이 변한다는 시간이 훌쩍 지난 오늘까지도 저는 그날의 순간순간을 모두 기억해요. 그 날밤은 잊을 수 없는 밤, 정말 특별했던 밤.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우리만의 밤이었습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그에게 물었어요. 

그때 그 편지를 받고 왜 그렇게 물어봤냐고, 난 정말 상상도 못 했던 반응이었다고요.

그가 대답했습니다.
"갑자기 그런 얘기를 하니까. 뭔가 큰일이 생긴 게 틀림없다 싶었지.
에라 모르겠다 그냥 막 가보자. 될 대로 돼라. 인생 막살아보자. 이런 건가 싶었거든.
또 어디서 무슨 소리를 듣고 와서 그러는 건지도 모르니까. 자기 귀 얇잖아.
주위에서 남녀관계가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뭐라고 한 소리에 휩쓸려서 순간적으로 한 선택일 수도 있으니까."

"그러다가 내가 진짜 마음이라도 바꾸면 어쩌려고? 하자고 해서 좋지 않았어?"

"좋았지. 너무 떨려서, 일주일 동안 잠도 제대로 못 잤다니까. 그치만 일단 벌어진 일은 되돌릴 수 없으니까. 
아, 그러지 말걸. 내가 왜 그랬을까. 후회하는 일로 만들고 싶진 않았어.
신난다고 그냥 덜컥 잤다가 완전 충격받고 내가 싫어지면 어떻게!
그거 잠깐 참는 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너한테 상처 주거나 널 영원히 잃는 게 정말 끔찍한 일이지.
절대 참을 수 없는 건 그런 거야. 순간의 성욕이 아니라."




                                                  


널 너무 사랑해서 참을 수가 없다고요? 네가 너무 예뻐서 멈출 수가 없다고요?
웃기는 소리 하지 말라고 콧방귀를 뀌어주시길.

진짜 사랑한다면, 정말 소중히 여긴다면, 여자의 마음과 욕망에 먼저 귀 기울여 줘야지요.
원치 않는 임신으로 돌이킬 수 없는 일을 만들지 않도록 철저하게 준비하고 실천해야 할 일입니다.

관계를 빌미로 협박하는 놈과는 1분 1초도 함께 하지 마세요. 내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잊지 말아요. 첫 경험은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 상대의 요구에 맞춰주기 위해 하는 게 아니라는 걸 꼭 기억하세요. 내 몸의 주인은 나 자신이므로, 내가 나를 먼저 사랑하고 존중해야 해요. 당신은 세상에서 더없이 귀한 사람,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시리게 곱고 고운 사람. 그런 나를 제대로 인정하고 소중히 여기는 사람에게 온전히 사랑받아야 합니다. 









운이 좋은 저는 첫사랑과 13년째 연애를 하며 매일 밤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잡니다. 


그의 세포 하나하나가 나만을 향해있는 느낌을 전해주는 사람, 세상에 나보다 더 귀한 것이 없음을 모든 순간 느끼게 해주는 사람, 그런 사람과 함께 예쁜 사랑을 그려가시길 바랄게요.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뻔한 말은 변하지 않는 진리, 

나를 진심으로 사랑해주는 사람과 함께 하기도 모자란 게 우리네 인생이랍니다.







덧붙이는 말 : 피임은 정말 철저하게!



우리는 임신 가능성 0%를 만들기 위해 생리주기 계산과 콘돔을 함께 사용했어요. 


생리 예정일로부터 14일 전이 배란 예정일. 배란 예정일 앞뒤 5일은 임신 가능 기간. 우리는 이 기간 동안에는 절대 관계를 갖지 않았어요. 콘돔의 피임 성공률도 100%는 아니므로 단 1%의 가능성도 차단하기 위해 임신 가능 기간에는 관계를 갖지 않고,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날에만 콘돔을 사용했답니다. 


단 한 번도 예외 없이 규칙을 지킨 결과 혹시나 임신일까 불안해할 일 또한 없었으나... 결혼과 동시에 피임에 대한 단호함이 무너져 결혼 한 달 차, 생리 예정일 바로 전 날이니 괜찮다는 생각에 콘돔 없이 딱! 한 번! 단! 한 번! 관계를 가졌는데,        


그 단 한 번으로 우리는 계획했던 1년간의 신혼기간을 반납하고 이 작디작은 꼬맹이의 엄마 아빠가 되었어요.


그 한 번이, 두 번, 세 번의 기회도 없이 단 한 번이 이런 결과를 야기할 줄이야.......




임신은 이런 것임을 명심하시길. 

괜찮은 날, 안전한 날, 하루쯤은, 한 번인데 뭐 같은 말 따위는 지금 당장! 영원히! 싹싹! 박박! 지워버리세요!!!


  

                                                




+ 위의 글은 수정과 편집을 거쳐 2020년 5월 출간한 저의 세 번째 책 <딸에게 들려주는 여자 이야기> 16장, 여자의 섹스, 오로지 '나'를 위해 (130쪽)에 들어갔습니다. 브런치에 올렸던 글과 다른 문체로 실은 출간 도서의 글을 맛보고 싶은 분, 이 글을 소장/선물하고 싶은 분은 


▲ 위의 책을 펼쳐봐주세요 ^^


매거진의 이전글 결혼할 상대를 어떻게 골라야 하냐고 묻는 청춘에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