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erulean blue Jan 14. 2022

classmate와 friend 사이

   평소처럼 잠들지 못하던 어느 밤에 알고리즘에 따라 유랑하며 이런저런 영상들을 시청하고 있다가 우연히 오은영 박사님의 영상을 보게 되었다. 진행자가 강호동이었다는 것만 기억나고 다른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는데 굉장히 인상 깊어서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박사님의 말씀이 있다.


   "같은 반 아이들은 등교부터 하교까지 생활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에요. 친구는 친한 사람을 친구라고 해요. 

같은 반 아이들은 classmate에요, 친구는 friend에요. classmate가 언제나 friend이지는 않아요. 그런데 우리는 아이들에게 같은 반 친구라는 표현을 써요........ 안 맞는 아이가 있다면 굳이 친하게 지내야 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아야 하는데 같은 반 친구니까 친하게 지내야지, 라는 명목으로 짝을 만들어놔요." 

 

   이 말을 들으면서 맞아, 맞아, 그래, 그렇지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지금도 동의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이것을 조금 더 오래전에 알았더라면 나의 학창 시절을 돌아가고 싶지 않은 어떤 암흑기가 아니라 친구들과의 여러 추억이 가득한 지난날로 남았을 텐데 말이다. 



   Y는 키가 작고 이목구비가 오밀조밀한 예쁘장한 아이였다. 목소리가 높지 않고 행동은 차분했고 공부도 곧잘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주 큰 부자는 아니었지만 그 친구를 미국에 있는 학교로 유학을 보낼 수 있는 정도는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중학교 3학년 무렵 미국으로 갔다가 고등학교 3학년쯤 귀국했었던가. 내가 고3이었던 1999년은 나라가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했을 시기였고, 그 때문에 귀국을 했던 것 같았다. 내 기억이 이렇듯 희미하고 확실하지 않은 것은 이유가 있다. Y와 나의 관계가 딱 그러했기 때문이다. 


   같이 어울리는 친구들과 함께 만날 때면 분명히 그 자리에 나도 같이 있는데 나만 모르고 있던 이야기들이 많았고, 나는 묻지 않았다. 묻고 싶었지만 묻지 못했다. 대답을 하지 않고 애매한 웃음으로 상황을 넘기는 Y가 어려웠고 나에게만 이야기를 해주지 않는 것이 자존심 상하고 슬펐다. 그렇다고 해서 곤란할 지경까지 질문을 퍼붓는 성격이었느냐 하면 그렇지 않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런 성격이었으면 그렇게 어리숙하게 나에게 보이지 않는 선을 긋는 그 아이의 곁을 계속해서 친구라는 이름으로 지키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필요할 때는 기꺼이 내게 다가와 예쁘게 웃으며 팔짱을 꼈지만 기분이 좋지 않거나 말하고 싶지 않으면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벽을 쳤던 Y. 그 벽 너머로 들어갈 수 있는 권리가 내겐 없었다. 그 유리벽은 나에게만 분명하게 존재했다. 

 

   Y는 친구였던가, 돌이켜보면 아마 아니라고 대답해야 할 것이다. Y와 나의 사이가 멀어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우연히 치명적인 약점을 나에게 들켰기 때문이었다. 어찌나 그 비밀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올랐었는지, 나는 그 비밀이 무엇이었는지를 2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기억해냈다.  눈물이 고인 눈, 곤란한 표정으로 비밀을 꼭 지켜달라고 했다. 걱정 말라했더니 고맙다 했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Y는 내 친구 목록에서 빠르게 사라졌다. 아니, Y가 나를 지워버렸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여전히 순진하고 어리석게도, 나는 그 아이가 비밀을 꼭 지켜달라는 그 말이 이제 너와 나의 관계는 여기서 끝이라는 뜻인지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Y에게는 슬픈 일이었겠지만  드디어 이 아이가 나에게도 비밀을 말해주었다는 사실에 기뻤던 것 같다. 그 아이의 슬픔을 기뻐한 것이 아니라 내가 드디어 그 Y의 벽 안으로 한 발 들여놓게 된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 일은 나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그 뒤로도 나는 같은 표정을 하고 있는 '친구'라는 타이틀의 사람들을 여럿 만났으며, 보자마자 알아차렸고, 언제든지 보지 않아도 상처받지 않을 수 있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법을 배우려고 애쓰며 지냈고, 많은 시간 외로웠다. 



   지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 시절에 상처받은 나에게 괜찮다고 말해주어도 바뀌는 것은 없다. 하지만 오은영 박사님의 영상을 본 이후로 어쩌면 진짜 친구였을지도 모를 Y를 내 불안함과 자격지심으로 오해하고 멀어지게 둔 것이 아닌가 하는 자책은 더 이상 하지 않는다.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이전글 아마도 현재 진행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