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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erulean blue Jan 18. 2022

엄마의 20년 - 오소희

한 살 두 살 세 살,


처음 3년은 너를 먹이고 재우고 그저 건강히

잘 키우는 데 쓰마.

너의 미소도

너의 똥도

모두 나를 미치게 할 것이다.

나는 미치도록 행복했다가

미치도록 힘겨울 것이다.

이런 ‘미침’은 엄마만의 뜨거운 특권.

나는 웃다가,

울다가,

그 어떤 경우라도

다시 네 자그만 손바닥 냄새를 맡고 일어설 것이다.



네 살 다섯 살 여섯 살 일곱 살,


이 4년은 너와 함께 하는 순간마다

뛰고 웃고 노래하는 데 쓰마.

봄의 꽃나무 아래를 함께 걸을 것이다.

가을 낙엽 위를 함께 뒹굴 것이다.

너는 시인의 어휘로 꽃과 낙엽을 낭송할 것이고

나는 그것을 오롯이 음미하는 영광스러운 청중이 될 것이다.


어쩌면 너는 킥보드를 타다 넘어져 몇 바늘 꿰매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왕성히 회복할 것이다.

내가 아파 누우면 내 이마에 흥건한 물수건을 올려주며

제법 근심스러운 표정을 짓기도 할 것이다.

우리는 이 하루하루가

엄마와 자식 사이의 황금기임을 알 것이다.

알기에 제대로 누리며 살아갈 것이다.



여덟 살 아홉 살 열 살 열한 살 열두 살,


이 5년은 네가 네 방식대로 생을 펼치는 것을

받아들이는 데 쓰마.

내 잣대로 너를 판단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의 잣대로 너를 속단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네가 세상의 잣대로 잘하는 아이라면

그 또한 내게는 기쁨일 것이다.

하지만 만약 네가 세상의 잣대로 못하는 아이라도

나는 크게 걱정하지 않을 것이다.

엄마인 내가 그 누구보다 너만의 장점을 잘 알고 있으니,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장점으로 생을 일구는

법을 배우게 되어 있으니,

유사 이래 내내 그래 왔으니,

시절의 겁박에 새삼스레 오그라들어

너를 들볶지는 않을 것이다.


이때의 내 진정한 숙제는

이전에 겹쳐 있는 너와 나의 생을 따로 떼어 놓고

나란히 세우는 법을 배우는 일


나는 네게 부끄럽지 않을 만큼

나의 세계를 가꿀 것이다.

네가 너의 생을 펼칠 때에 궁금한 것이 있다면

가끔 나의 세계를 노크하고 참고할 수 있도록



열세 살 열네 살 열다섯 살 열여섯 살,


이 4년은 너를 모른 척하는 데 쓰마.

네가 네 길을 네 식으로 모색할 수 있도록.

나의 방해로 인해

아예 모색의 길을 떠나지 못한다거나,

모색의 길에서 중간에 돌아온다거나,

그런 비극이 없도록 나는 빠져 있어 주마.


믿으면서,

너를 믿으면서,

너를 믿는 나를 믿으면서,

나는 담담히 내 세계를 가꾸고 있을 것이다.


네 인생이다.

기성화 된 내 눈에

너는 실컷 아둔하게 방황하라.

실컷 기이하게 행동하라.

너는 신세대.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을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살아갈 특권이 있다.


늙은이들의 약아빠진 조언에 겁먹지 마라.

꽉 막힌 세상의 셈법에 굴복하지도 마라.

예비해두지도 마라.

탕진해도

방전되어도 좋다.

배터리가 다 나가 기절하고 깨어난 뒤

현기증을 느끼며

네가 첫눈을 뜨고 볼 세상,

거기서부터 시작이다.

그것이 네 것이다.



열일곱 살 열여덟 살 열아홉 살,


이 3년은 내가 할 일이 많지 않을 것이다.

네가 모색한 바를 내게 들고 와 구체적인 도움을 요청할 것이니,

진실로 나의 할 일은 그 항목을 충족시키는 데에 그칠 것이다.

너는 이미 나의 한계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애초에 내가 줄 수 있는 만큼의 도움만을 요구할 것이다.

사실 네가 내 눈에 띄는 시간도 많지 않을 것이다.

나는 네가 여덟 살이 된 이래로,

홀로 담담히 가꿔왔던 내 세계에 집중할 더 많은 자유를 얻을 것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목매지 않을 것이다.

그 어떤 부담도 주지 않을 것이다.

두 개의 서로 다른 세계를 존중할 것이다.


나는 네 젊은 세계에 감탄할 것이다.

네 무모함과,

네 불안정함과,

그럼에도 두려움을 꾹꾹 누르고 나아가는

네 의지에 감탄할 것이다


너는 가끔 생각난 듯

나의 세계를 힐끗 들여다볼 것이다.

그것이 잘 돌아가기만 한다면, 그래, 되었다는 듯

한번 따끈히 안아주고

총총히 네 바쁜 세계로 돌아갈 것이다.

힐끗, 네한 번의 시선과

따끈한 네 한번의 허그,

그것으로 되었다.

나는 또 살아갈 것이다.



스무 살,


너는 어른이 되었다.




#오소희 #엄마의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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