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살 두 살 세 살,
처음 3년은 너를 먹이고 재우고 그저 건강히
잘 키우는 데 쓰마.
너의 미소도
너의 똥도
모두 나를 미치게 할 것이다.
나는 미치도록 행복했다가
미치도록 힘겨울 것이다.
이런 ‘미침’은 엄마만의 뜨거운 특권.
나는 웃다가,
울다가,
그 어떤 경우라도
다시 네 자그만 손바닥 냄새를 맡고 일어설 것이다.
네 살 다섯 살 여섯 살 일곱 살,
이 4년은 너와 함께 하는 순간마다
뛰고 웃고 노래하는 데 쓰마.
봄의 꽃나무 아래를 함께 걸을 것이다.
가을 낙엽 위를 함께 뒹굴 것이다.
너는 시인의 어휘로 꽃과 낙엽을 낭송할 것이고
나는 그것을 오롯이 음미하는 영광스러운 청중이 될 것이다.
어쩌면 너는 킥보드를 타다 넘어져 몇 바늘 꿰매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왕성히 회복할 것이다.
내가 아파 누우면 내 이마에 흥건한 물수건을 올려주며
제법 근심스러운 표정을 짓기도 할 것이다.
우리는 이 하루하루가
엄마와 자식 사이의 황금기임을 알 것이다.
알기에 제대로 누리며 살아갈 것이다.
여덟 살 아홉 살 열 살 열한 살 열두 살,
이 5년은 네가 네 방식대로 생을 펼치는 것을
받아들이는 데 쓰마.
내 잣대로 너를 판단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의 잣대로 너를 속단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네가 세상의 잣대로 잘하는 아이라면
그 또한 내게는 기쁨일 것이다.
하지만 만약 네가 세상의 잣대로 못하는 아이라도
나는 크게 걱정하지 않을 것이다.
엄마인 내가 그 누구보다 너만의 장점을 잘 알고 있으니,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장점으로 생을 일구는
법을 배우게 되어 있으니,
유사 이래 내내 그래 왔으니,
시절의 겁박에 새삼스레 오그라들어
너를 들볶지는 않을 것이다.
이때의 내 진정한 숙제는
이전에 겹쳐 있는 너와 나의 생을 따로 떼어 놓고
나란히 세우는 법을 배우는 일
나는 네게 부끄럽지 않을 만큼
나의 세계를 가꿀 것이다.
네가 너의 생을 펼칠 때에 궁금한 것이 있다면
가끔 나의 세계를 노크하고 참고할 수 있도록
열세 살 열네 살 열다섯 살 열여섯 살,
이 4년은 너를 모른 척하는 데 쓰마.
네가 네 길을 네 식으로 모색할 수 있도록.
나의 방해로 인해
아예 모색의 길을 떠나지 못한다거나,
모색의 길에서 중간에 돌아온다거나,
그런 비극이 없도록 나는 빠져 있어 주마.
믿으면서,
너를 믿으면서,
너를 믿는 나를 믿으면서,
나는 담담히 내 세계를 가꾸고 있을 것이다.
네 인생이다.
기성화 된 내 눈에
너는 실컷 아둔하게 방황하라.
실컷 기이하게 행동하라.
너는 신세대.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을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살아갈 특권이 있다.
늙은이들의 약아빠진 조언에 겁먹지 마라.
꽉 막힌 세상의 셈법에 굴복하지도 마라.
예비해두지도 마라.
탕진해도
방전되어도 좋다.
배터리가 다 나가 기절하고 깨어난 뒤
현기증을 느끼며
네가 첫눈을 뜨고 볼 세상,
거기서부터 시작이다.
그것이 네 것이다.
열일곱 살 열여덟 살 열아홉 살,
이 3년은 내가 할 일이 많지 않을 것이다.
네가 모색한 바를 내게 들고 와 구체적인 도움을 요청할 것이니,
진실로 나의 할 일은 그 항목을 충족시키는 데에 그칠 것이다.
너는 이미 나의 한계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애초에 내가 줄 수 있는 만큼의 도움만을 요구할 것이다.
사실 네가 내 눈에 띄는 시간도 많지 않을 것이다.
나는 네가 여덟 살이 된 이래로,
홀로 담담히 가꿔왔던 내 세계에 집중할 더 많은 자유를 얻을 것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목매지 않을 것이다.
그 어떤 부담도 주지 않을 것이다.
두 개의 서로 다른 세계를 존중할 것이다.
나는 네 젊은 세계에 감탄할 것이다.
네 무모함과,
네 불안정함과,
그럼에도 두려움을 꾹꾹 누르고 나아가는
네 의지에 감탄할 것이다
너는 가끔 생각난 듯
나의 세계를 힐끗 들여다볼 것이다.
그것이 잘 돌아가기만 한다면, 그래, 되었다는 듯
한번 따끈히 안아주고
총총히 네 바쁜 세계로 돌아갈 것이다.
힐끗, 네한 번의 시선과
따끈한 네 한번의 허그,
그것으로 되었다.
나는 또 살아갈 것이다.
스무 살,
너는 어른이 되었다.
#오소희 #엄마의2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