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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뮤 Oct 18. 2023

'무빙'과 '로키'의 공통점

드라마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포주의!

얼마 전 디즈니플러스의 화제작이었던 강풀 만화 원작의 드라마 '무빙'이 끝났다. 나는 원래 초능력이라는 소재와 판타지물을 좋아하지만 무빙이 다른 판타지물보다 좀 더 특별했던 이유는 남북관계라는 현실적인 배경을 바탕으로 그 이념 대립의 현장에서 누구보다 인간적인 갈등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었다.


극 중 김두식(조인성)은 국정원 수장의 지시를 받고 북한의 김일성을 암살하러 간다. 김두식은 김일성의 침실까지 가는 관문에서 만난 북한군과 싸울 때 그들이 죽지 않을 정도로만 공격하고 물리친 뒤 김일성을 죽이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그가 발휘한 휴머니즘은 결과까지 보장해주지는 않았다. 북한은 수령을 지키지 못한 죄로 살아남은 북한군을 모두 총살했기 때문이다. 이후 김두식이 한 번 더 북한의 통치자를 죽이러 갔을 때, 그동안 남한처럼 살인병기로 키워진 초능력자 북한군들이 지키고 있어 속수무책으로 잡힌다. 그러나 북한군은 김두식을 죽이지 않고 감옥에만 가두었고, 나중에는 풀어주기까지 한다.


드라마에서는 북한이 초능력자의 존재를 알고 남한의 공격에 대비해 전국의 초능력자를 모아 살인병기로 훈련시키는 과정이 매우 잔혹하게 그려진다. 옆에서 동료가 죽어나가고, 자신도 피를 흘리며 죽기 직전의 고통까지 느끼며 가족을 위해 살아남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버틴 초능력자 북한군들은 '남조선 너희가 아니었으면 내가, 내 동무들이 이렇게까지 힘들지 않았을 거다'라며 북한의 체계가 아닌 이념대립의 상대방을 탓한다. 하지만 그들도 내심 알고 있다. 자신을 고통으로 몰아넣은 것은 눈앞의 적이 아니라 자신이 몸담은 조직의 윗사람임을. 지금 눈앞의 적군 역시 윗사람의 지시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는 처지임을. 이 장면에서 또 한 번 느꼈다. 이 세계는, 과거로부터 쭉 변함없이, 권력을 쥔 소수의 결정권자에 의해 다수의 희생이 정당화되며 이상하리만치 비인간적으로 흘러가고 있다. 우리나라의 남북관계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무기 경쟁과 이념 대립, 무장단체의 테러 등을 보면 인류 역사에서 대립과 갈등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것만 같다. 우리가 그토록 외쳐대는 평화는 우리가 절대 닿을 수 없는 이상향이고, 우리는 그 이상향에 닿을 수 있을 것처럼 노력하지만 사실 모두가 파멸하기 전까지 그런 평화는 존재할 수 없음을 알고 더 열심히 싸워대고 있는 것이다.


다시 무빙으로 돌아와서, 드라마의 마지막 즈음 남한의 어린 초능력자들을 파악할 목적으로 침투한 북한 초능력자들이 남한의 초능력자들과 싸우는 과정에서 나는 물론 마음속으로 남한의 초능력자들을 응원했지만 그보다 북한의 초능력자들이 너무 안타까웠다. 나쁜 빌런이 이렇게까지 안쓰럽게 느껴지는 콘텐츠는 처음인 것 같다. 어쩌면 작가는 처음부터 그들을 악역으로 단정 짓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너무 히어로물에 익숙해져서 악당과 히어로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해 온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알고 보면 좋기만 한 사람도, 나쁘기만 한 사람도 없다. 북한군 입장에서는 남한의 초능력자들이 악당이다. 하지만 휴머니즘을 보여준 김두식을 보며 나쁜 사람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을 분명했을 것이다. 반대로 남한에 침투한 북한의 초능력자들, 적이고 악당이 맞다. 하지만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그들 한 명 한 명의 눈물겹고 안쓰러운 스토리는 우리가 그들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희수(고윤정)가 도망쳐 울고 있던 북한군 한 명을 길가에서 만나 안아주고 장주원(류승룡)이 그를 치킨집 알바로 일하게 해주는 장면도 그러한 맥락을 같이 한다.


'좋기만 한 사람도, 나쁘기만 한 사람도 없다.'

이것이 무빙과 로키의 공통점이다. 로키는 마블 시리즈 내내 대표적인 빌런으로 활약해 왔지만 '로키'라는 드라마를 보면 그의 인간적인 면을 엿볼 수 있다. 물론 로키는 신으로 나오지만 마법을 부리는 것 빼고는 누구보다 인간적이다. 엄마를 죽음으로 내몰고 형의 왕위를 뺏을 생각만 하는 배신과 거짓말의 대명사인 로키가 사실은 가족들을 무척이나 사랑하고 의지하며 그리워한다.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습도 보인다.


이 드라마의 흥미로운 점 중 하나는 이미 다른 마블 시리즈에서도 나왔지만 '멀티 유니버스'라는 개념이다. 그런데 로키가 다른 캐릭터들과 차별화되는 점은, 로키들 간에 차이점이 꽤 크다는 것이다. 여자 로키, 악어 로키, 악마 로키 같은 다양한 로키가 멀티버스에 살고 있다는 것은 로키가 그런 다면적인 인간임을 보여주는 동시에, 사실 우리들도 그와 같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 모두는 입체적인 면을 갖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다정하게 굴어도, 누군가에게는 불친절하게 군다. 그렇다고 우리가 다정하지 않은 사람인 건 아니다. 그리고 또 우리가 마냥 착한 사람인 것은 아니다.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세상에는 정말 나쁜 사람들도 있다. 죽여 마땅한 인간들. 그런 인간들조차 다면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이 인간의 특성이다. 그러니까 우리 주변에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그보다는 조금 더 이해심을 가지고 바라볼 수 있는, 조금 더 착한 다면적인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살면서 누군가 나쁘다고 생각될 때, 인간관계가 힘들 때, 그래서 내 마음이 미움과 갈등으로 가득할 때, 내 마음을 조금 더 나아지게 만들려면 이렇게 생각해 보자.

'세상에는 좋기만 한 사람도, 나쁘기만 한 사람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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