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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mian Jun 21. 2021

여행 인문학

관광과 여행의 차이

여행 인문학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옛말이 있다. 이는 우리나라에 국한된 격언은 아닌 듯 하다. 이탈리아 시인 Cesare Paves 는 “여행은 잔인하다. 이방인을 믿도록 강요하고 집과 친구라는 익숙한 안락함을 잃어버리게 만든다” Traveling is a brutality. It forces you to trust strangers and to lose sight of all that familiar comfort of home and friends”고 했다. 집 떠나면 고생이란 생각은 동서고금을 망라하는 현상인 듯하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저런 이유로 집을 떠난다.

일상은, 집을 떠나기 위한 신성한 예식으로 시작된다. 몸을 닦거나, 밥을 먹는 일, 화장하는 일, 그리고 예를 갖추듯,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을 꺼내 입는 일 등은 집을 떠나기 위한 준비 과정이다. 하루의 여행이 시작되는 순례의 준비 과정이자 정주의 안락을 포기하는 원시 정신의 발현이다. 


여행 또는 관광의 학문적 정의는 “돌아올 것을 전제로 정주지를 떠나는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일상 중 떠나고 돌아 오는 일은 하루의 여행에 견줄 수 있다. 학문에 의한 여행의 정의는, 단어가 동반하는 설렘이나 흥분을 일순에 사라지게 하는 경직이 느껴지지만, 학문에서의 정의는 정의 자체가 연구의 대상이 되는 일로, 관련 산업의 통계, 경제적 효과 등의 분석을 위해 범주를 정해야 하는 부분에 소홀할 수 없어, 구획 짓기에 있어 명확하고, 단정적이므로 돌아올 것을 목적으로 정주지를 떠난다는 학문상의 정의는 타당하다.

여행의 어원은 고생이라고 한다. 프랑스어의 ‘travail’을 기원으로 볼 수 있는데 이 단어의 의미가 “일하다”””고생하다”이다. 영국에서는 Traveling을 사용했는데 이 또한 Travail(고생)의 파생어로 일과 고생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또한, Travel의 어원으로 알고 있는 Trouble(문제, 곤란, 괴로움, 고통, 고뇌)과, Toil(힘들게 일하다)이 결합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여행(Travel)이 고통, 고난, 문제 등의 뜻을 함유하고 있음을 보면 중세 시대의 여행이 내포한 고행적 의미를 엿볼 수 있다.  

 이동 수단이 말 또는 자신의 도보에 불과했을 이 시기에 지역과 지역을 이동하거나, 성지를 찾아 순례하는 이동, 탐험을 목적으로 하는 이동은 실행에 이르기까지 장엄하고 고뇌에 찬 결의를 필요로 해야 했던 일임을 가늠할 수 있다. 여행자의 고난은 숙명과도 같았을 것이다. 중세 시대 여행은 학문적 정의에서, 돌아 오는 행위를 뺀,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집을 떠나는 행위”였을 것이다. 제한적인 이동 수단과, 이동 거리 등을 고려하면 정주지로 돌아 오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세계 최초의 여행자는 탐험가 마젤란(1480~1520)으로 언급되고 있다. 이는 마젤란의 탐험에 의해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이 최초로 입증되고, 마젤란 해협을 발견했다는 역사적 성과에 따른 유명세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인류의 시작과 함께 인간은 먹거리를 찾거나, 더 나은 주거환경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이동해왔다. 이미 신석기 시대부터 이동을 위한 배를 만들고, 바퀴를 개발한 것을 보면 인류의 시작이 곧 여행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관광과 여행은 통상 동일한 개념이고 일반적으로 혼용되어 쓰이고 있다. 하지만, 서양에서 Travel과 Tourism이란 단어의 출현을 기준으로 보면 여행에서 관광의 개념으로 이동하게 된 시기는 중세시대로, 이 시기에 그리스와 로마의 역사적 장소(Historic site)를 견학하는 Heritage Tourism이 존재했고, 이에따라 도처에 스파와 해변 중심의 타운이 형성됐으며 또한, 로마를 중심으로 회화,조각,건축물의 견학과 역사적인 장소를 찾는 관광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17세기 중엽에는 영국의 귀족 자녀들이 견문을 넓히기 위해 르네상스 문화의 발현지를 방문하는 Grand Tour가 시작됐다. 또한, 중세 시대의 이야기를 기록한 “The Canterbury Tales”에 의하면 순례자들은 성지(Holy Shrine)를 방문하는 것 못지않게 휴식과 더불어 즐기는 것에 몰두했다. 이러한 중세 관광의 형태에서 현대적 의미의 Holiday(휴가)라는 단어가 탄생했으며, 18세기에 들어서는 일반적인 순례 중심의 관광에 더해 건강과 문화라는 영역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여행은 독립적이다. 여행엔 사색이 있다. 돌아 보는 길, 그곳에서 지나온 삶의 자취를 엿볼 수 있다.

동양에서 관광의 어원은 주역의 “관국지광이용빈우왕(觀國之光利用賓于王)”이라는 구절에서 찾을 수 있다. 한 나라의 사절이 다른 나라를 방문하여 왕을 알현하고 자기 나라의 훌륭한 문물을 소개하는 동시에, 그 나라의 우수한 문물을 관찰하는 것은 왕의 중요한 손님으로 대접받기에 마땅하다는 의미로 교육과 문화의 경험, 그리고 이를 통한 왕의 알현이라는 의전이 합치된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여기에서 본다는 의미의 관(觀)과 방문지 문화의 빛을 의미하는광(光)을 합친 관광이 현재까지 통용되고 있는 관광의 기원이다. 

국내로 시선을 돌려 관광이라는 어원의 효시를 보면 최치원(崔致遠, 857∼?)의 『계원필경(桂苑筆耕)』 서문(序文) 중 “남이 백 번 하면 나는 천 번 해서 관광 6년 만에 과거 급제자의 명단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人百己千之 觀光六年 銘勝尾).”라는 글에서 관광이라는 용어를 볼 수 있다. 이 글에서의 관광은 ‘당나라의 빛나는 선진 문화를 보는 것’이라고 풀이할 수 있어 앞서 『주역』의 용례와 비슷한 뜻으로 볼 수 있다. 

『조선 왕조 실록』에서는 ‘관광상국(觀光上國)’이라 하여 중국의 제도나 문물을 보고 배우는 것 이외에, 과거(科擧) 또는 과거를 구경한다는 뜻(觀國之光)과 임금이나 중국 사신의 행차를 구경한다는 뜻이 있었다. 그리고 사찰(寺刹) 등 국내 유람을 뜻하기도 하였으며, 왜(倭)의 사신들이 임금이 베푸는 연회에 참여하거나 사예(射藝)·방화(放火)를 참관하는 것에 관광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이 밖에 한양의 북부 지명 중에 관광방(觀光坊)이 있었으며, 사대부의 부인들이 대궐 안을 구경하는 것을 관광이라고 하였다. 


현대에 이르러 여행과 관광은 좀더 명확히 구분 되고 있다. 영국의 시인이자 수필가인 K. Chesterton은 여행자는 현재 보이는 것을 보고 관광객은 보러 온 것을 본다고 했다. 여행은 관광에 비해 좀더 창의적이고, 비 구속적이고, 모험적이며, 도전적이다. 여행에는 물리적인 목적지가 없다. 마음이 행하는 곳이 목적지다. 눌러 놓고 차마 행하지 못했던 노마드의 기질에 숨결을 불어 넣으면 된다. 서울부터 부산까지 수많은 역 어디든, 발길이 닿는 곳이 목적지다. 서울에서 부산 그리고 다시 부산에서 서울, 내려가고 올라옴을 반복만 해도 우리는 이를 여행이라 칭할 수 있다. 사람들은 여행을 통해서 위로를 얻고 삶의 가치를 느끼게 된다. 관광은 진행에 있어 여행보다 구체적이고 목적이 존재하며 안정적이다. 하지만 여행과 관광의 어원이나 역사적 의미와는 별도로, 어떤 형태의 떠남을 선택한다해도 우리는 그곳에서, 사회에 맞게 각이진 자신을 위로하고, 새로이 시작하는 계기를 얻을 수 있다. 결국, 떠나는 것은 일상을 놓을 줄 아는 용기이며 길 위에서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명상과도 같은 것이다.


참고문헌

English Magazine A Brief History of Tourism - Travel English

김종은, 『관광학 원론』, 현학사, 2000 , 18쪽

한경수, 「한국에 있어서 관광(觀光)의 역사적 의미와 용례(用例)」, 『관광학 연구』 36, 한국 관광학회, 2001,2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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