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잊는 일
출근 준비로 바쁜 중에 '인간극장' 내레이터의 억양이 잠시 나를 티브이로 이끈다. 9순의 엄마와 7순 아들의 행복한 모습이 한창인 아침이다. 엄마와 아들은 오랜 세월을 떨어져 지내다가, 나이 들어가는 엄마와 오래 남지 않았을 함께함을 위해, 퇴직과 함께 엄마와의 오순도순한 삶을 택한 아들과 엄마의 얘기다. 아들은 엄마를 향해 연신 사랑해를 날리고, 엄마는 사는 게 행복하단다.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고 다섯 남매를 키워낸 엄마의 속이 꽉 찬 삶 얘기가 아침을 달군다. 9순의 엄마가 아들 할아버지를 위해 나물을 무치고, 맛난 음식을 내는 모습은 여느 아들과 엄마의 얘기와 같다. 그렇게 일상적인 모자의 모습에 눈길이 간다.
나도 엄마가 있으면 연신 엄마를 향해 하트를 날리고, 일껏 장난스러운 목소리를 꾸며 엄마에게 지청구를 놓고 싶다. 여름, 더운 날엔 엄마 손을 잡아끌어 가까운 시장에 나가 엄마가 좋아하던 냉면이나 콩국수로 한낮의 더위를 날리고, 돌아오는 길엔 생전에 "수박은 먹고 싶어도 너무 무거워서.." 하시던 그 수박을 사들고 엄마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고 싶다.
나는 요즘 길을 걷다 나무 그늘 아래 다리를 쉬는 할머니나, 뽀글 파마에 몸빼를 입고 적당히 앞으로 기울어진 몸으로 허위적 걷는 할머니를 보면 걷던 일을 멈추거나 하던 일을 멈추고 한참을 지켜보게 된다. 엄마도 살아 계셨다면 저 나이셨지 그런 생각에 마음이 멈추면, 세상의 할머니는 다 엄마 같다.
사람이 늙고 병들어 세상을 떠나는 일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모두 그런 삶의 과정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 우리가 겪어내야 하는 이별은 결코 단련되지 않는다. 많은 죽음을 겪었다 해서 죽음 앞에 의연해질 수 없고, 많은 이별을 경험했다 해서 대수롭지 않은 양 이별을 대할 순 없다.
어떤 죽음, 어떤 이별 그 앞에서, 우리는 늘 같은 무게로 아프고 슬프다. 다가올 죽음과 이별 앞에,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자의 슬픔을 덜기 위해서는, 지금 옆에 있는 그 사람을 원 없이 사랑하는 일, 그 길 밖에 없을 것 같다. 그리고,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변함없는 믿음을 키우는 일이, 사랑을 잃은 사람이 무너지지 않는 유일한 방법임을 인간극장을 통해 배우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