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은 늘 그랬다. 외로움의 극치를 막 지나 온, 가을의 여운을 떨칠 수 없어 그리움은 배가 됐고, 추웠다. 어느 곳에 머물고 있어도 계절의 바뀜은 나를 쉽사리 흔들어 놓았다. 벗어나지 못하는, 일상이란 이름의 뫼비우스 띠에 갇혀 쉽사리 절망했다. 그런 나에게 사진은 해방구였다. 유일한 놀이였고, 우울하고 너저분한 일상에서 잠시 나를 건져낼 수 있는 일이었다. 잠시의 노출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빛의 산란을, 작은 렌즈 구멍으로 훔쳐보는 시간은 고독했고, 찰나의 순간 잡히는 피조물은 뼛속 깊은 외로움이었다. 살아 낸다는 표현이 적당한 우리의 일상과, 그 편린들이 모여 삶을 이루는 지난한 과정은, 실로 장대한 역정이지만 어찌 보면 삶의 서사는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니다. 살다 보면 살아진다. "차지연"이 노래했다. 그저 살다 보면 살아진단다.
렌즈를 통해 담아 올 여정에 대한 기대를 겨울 바다는 저버리지 않았다. 인적은 드물었고 파도는 들고 나기를 거듭하며 겨울의 적막을 메우고 있었다. 바다는 실연에 버금가는 아픔이 있어야만 찾는 시절이 있었다. 꿉꿉한 생활형 냄새로 가득했던 완행 버스에, 잊거나 버리고 와야 했던 청춘의 아픔을 주섬 주섬 담아 차에 오르면, 제대로 움직일까 싶었던 낡고 침침했던 버스는 좌우로 흔들 거리며 서너 시간을 달려 바다로 데려가주었다. 겨울의 바다는 예나 제나 여지없이 살벌한 바람으로 정신을 흔들고. 냉기를 품은 햇살은 그림자가 되어 종일을 따라다녔다. 오죽했으면 고개를 떨구고 걷던 사구의 구비를 따라, 일렁이던 그림자에 치여 멀미의 미감으로 고통스러웠을까. 세상은 어지러웠고 실연에 빠져 흥청거리는 일은 사치였던 시절이다. 그저 단단하게 나를 잡자 했다. 마실 줄도 모르던 알코올의 힘을 빌려 허위적거리며 달려 본 바다는 내달려 본들 바다였고, 청춘은 끝도 없이 멀미를 했다. 바다를 향해 줄지어서, 바람이 이끄는 대로 나부끼던 깃발처럼 흔들렸던 시간을 보내며, 모래 바닥에 나를 묻고 싶었다. 모든 것은 지나갔다. 시간이 약이다. 바다를 떠나며 생각했다. 잊은 것 같다고..
오늘 그 바다에서 작은 렌즈 구멍을 통해 세상을 본다. 여전한 젊은 날의 그리움은 뷰파인더 안에서 아지랑이로 일렁인다. 바람처럼 흔들렸던 젊은 시절의 오후가 살아있었다.
스쳐간 많은 인연들이 바다에 오면 생각났다. 어느 세상에 머무르고 있든 간에 바다를 찾는 건 오롯한 외로움의 전주였다. 낮은 저음으로 웅얼거리듯 일렁이는 파도는 침잠했던 고독을 일깨우고, 여전한 바람은 까마득했던 세상의 인연에 나를 밀어 넣는다.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사랑이라 믿었던 모든 것들은 닿지 못하는 섬과 같다는.., 사람은 누구나 떠난다. 남는 건 없다. 시간의 문제일 뿐 영원한 것은 없다. 그러니 우리가 영원할 거라 믿고 전심으로 몰아치며 나눴던 사랑은 덧없다. 포말 같다. 일제히 일어서 우레같이 환호하고, 일순에 거품이 되어 사라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