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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Jun 15. 2024

그 용돈으로

오래 쓰는 육아일기


15일은 강이에게 용돈을 주는 날이다. 한 달에 두 번, 한 번에 3만 3천 원씩 받는다. 산이는 주급이다. 매주 월요일 아침 6만 원을 계좌로 보낸다. 단순히 중학생, 고등학생이라서 액수가 차이 나는 것은 아니다. 산이가 받는 용돈의 대부분은 저녁 밥값이다.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저녁을 밖에서 해결해야 한다. 급등한 물가 탓에 어지간한 한 끼는 만 원이 훌쩍 넘는다. 학교에서 저녁 급식을 신청할 수도 있지만 학원에 다니느라 시간을 맞출 수가 없다.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용돈이 필요한 이유는 부지기수로 많을 것이다. 강이는 저녁을 집에서 먹기 때문에 3만 3천 원이 적지 않다. 강이가 우리 집 '은행'으로 불리는 것은 용돈이 고스란히 그대로 자기 통장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강이에게 오빠도 돈을 빌리고 엄마도 급전을 당겨 쓴다.

산이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용돈을 받기 시작했다. 강이는 오빠가 있어서 뭐든지 일찍 경험하는 편이다. 뽀로로 만화도 산이 옆에 앉아서 봤고 아이스크림도 똑같이 한 컵씩 해치우면서 자랐다. 그래서 좋은 것도 있었고 그렇지 못했던 것도 있었을 것이다. 강이는 4학년 때부터 우리와 함께 길을 걸었다. 그때도 고민했던 거 같다. 강이도 용돈을 줄까, 돈은 또 다른 '물건'이라서 주의가 필요하다. 유대인은 일찍부터 돈을 가르친다고 그런다. 지금의 유대 사회를 이룬 초석이 그들의 교육에 있다는 것은 너무나 유명하다. 우리는 강이도 중학생이 될 때를 기다리기로 했다. '교육' 자체도 중요하지만 정작 그 교육을 받을 '사람'이 먼저 아닐까 싶었다. 대신 강이에게는 생일 선물로 핸드폰을 사줬다. 게임을 할 수 있는 그런 핸드폰이 아니라, 엄마나 아빠한테 연락할 수 있는 아동용 휴대폰이었다. 강이는 학교가 끝나면 전화했고 피아노 학원이 끝나면 전화했다. 지금 어디쯤 가고 있고 있다고 알려주곤 했다.

가끔씩 강이에게 용돈을 보내면서 300원을 더 보낼 때가 있다. 무엇이든 반납이 늦으면 연체료가 발생한다. 강이는 괜찮다고 사양하지만 3만 3천 원보다 거기에 덧붙이는 300원이 더 재미있고 소중하게 여겨지는 날이 있다. 이것도 알아둬야 한다고 아이에게 전달하고 싶지는 않아서 따로 메시지를 보낸다. 늦어서 미안하다는 뜻이야, 귀여운 300원이지만 그 역할이 꽤 커. 그런 사람들이 세상에는 많아야 한다는 말을 쓸까 말까····. 썼을까, 쓰지 않았을까?

산이와 강이에게 고마운 것 중에 하나가 용돈을 재촉하거나 닦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그 돈을 잘 사용한다는 점이다. 강이는 친구 생일을 챙기는 데 그 돈을 쓰고 '백다방'에 가서 흑당 버블티를 주문할 때 쓴다. 강이는 원대한 목표를 하나 갖고 있다. 안마 의자가 강이의 목표다. 허리 아프다는 소리가 어린 마음에도 그냥 스치지 못했던가 보다. 엄마는 다리 아프다고 그러니까 자기가 안마 의자를 사주겠다는 것이다. 그 말이 피라미드처럼 높게 들린다. 도저히 불가능한 것 같다는 뜻이 아니다. 피라미드는 사막에 있어서 더 신비롭다는 뜻이다. 한 번도 나는 우리 부모에게 그런 자식이 되지 못했다는 뜻이다. 그래서 더욱 내 부모가 사막이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산이는 이제 자전거를 타고 등교를 한다. 카풀에서 독립한 것이다. 아이들이 용돈을 어떻게 쓰는지 관심을 두지는 않지만 어떤 식으로 지내는지는 확인한다. 담배 피우면 좋지 않다거나 술이며 이성 친구는 '봄'에 만나는 것이 좋다고 말해준다. 너에게 봄이 오고 있다고, 너무 일찍 꽃이 피면 혼자서 계절을 견뎌내기 힘들다고 말해준다. 봄에 꽃 피고 여름에 열매 맺고 가을에 익어가던 지리산을 이야기하면 금방 끄덕인다. 너는 봄을 맞으러 가고 있다고 또 일러준다. 네 봄이 나도 보고 싶다는 말도.

당근 마켓에서 자전거를 한 대 살까 한다고 그런다. 20만 원인데 상태도 좋고 마음에 든다는 것이다. 자전거는 사람에게도 좋고 환경에도 좋다. 그러나 망설인다. 혹시 다치면 어떡하나 싶은 것이다. 저도 나와 같겠지, 그 마음으로 허락한 듯싶다. 지금도 나는 자전거에 배낭을 싣고 곳곳을 찾아다니고 싶다. 암이라는 말을 듣고 차를 몰고 돌아오는데 그 생각이 났다. 이제 자전거 타고 지리산을 오를 일은 없겠구나····. 지금도 우리 집 입구에는 그 자전거가 있다. 앞바퀴는 바람도 빠져서 홀쭉해 보이는 그 자전거가 지리산 일주 도로를 타고 성삼재까지 올랐다면 믿지 않을 것이다. 화살처럼 바람을 가르고 달려 내려오던 그때를 혼자서 조용히 더듬거리며 다시 한번 달려보고 싶을 것이다. 나도 그러니까.

그래서 10만 원만 보태달라는 것이었다. 자기 용돈으로 10만 원을 마련했으니까 어떠냐고 묻는데 어떤 말을 할까. 산이는 그런 식으로 문제를 푼다. 방학에 친구들과 놀러 가는 데 얼마가 필요할 것 같으면 그 절반을 자기 용돈을 아껴서 마련해 두고 그다음을 우리에게 요청하는 식이다. 그렇게 나오면 대부분의 일들이 쉽게 풀린다. 저도 그것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대신 산이는 안마 의자 같은 것은 꿈꾸지 않는다. 무엇을 어쩌겠다는 약속도 없다. 그런데, 그런데 안마 의자에 누워 벌써 안마를 시원하게 받고 있는 듯하다. 돈을 잘 쓴다는 것은 주변 사람들을 얼마나 안심시키는 일인지, 새삼스레 토요일 아침 고맙다는 말로 오늘자 오래 쓰는 육아일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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