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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명의 작가 Nov 29. 2021

싫어하는 것들의 목록

정확한 사랑을 읽기 위하여

지난 금요일, 십년지기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 맛있는 걸 나눠 먹고 시시콜콜 떠들다가 내가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연어랑 곱창이 싫어. 그 둘을 서로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싫어해."

그랬더니 친구들이 눈동자를 반짝이며 그 이유를 물어보았다.


"연어는 내 인생에 너무 늦게 도착한 것이라서, 익숙하지 않아서 싫어하게 됐고 곱창은 내 생활 너무 가까이에 존재했던 거라 싫어해. 근데 그걸 싫어하면 곧잘 역적으로 몰린다니까? 연어랑 곱창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말이야. 내 친구들도 연어랑 곱창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데, 걔네들 앞에서 그것들이 싫다고 말해야 할 때마다 걸핏하면 뭔갈 싫다고만 말하는 사람 같아져. 뭐, 완전히 아니진 않겠지만..."


이 친구들은 만나기만 하면 너 정말 이런저런 걸 잘한다, 그러니 글을 써 봐, 집 꾸민 걸 어디 올려 봐, 사진을 본격적으로 찍어보는 건 어때, 하며 내가 조금 더 꿈틀거리기를 나보다 더 바라 준다. 이 말인즉슨 내가 '연어랑 곱창이 싫다'는 문장을 뱉는 순간 그들은 벌써 나를 <연어랑 곱창이 싫은데요?>라는 책의 작가로 만들어버린다는 것이다. 싫은 것만 계속 써도 책이 되겠다면서.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툴툴거려도 소용이 없다. 그러기로 결정하는 순간 그렇게 불러버리니까!


재밌다며 부추기는(?) 친구들 덕분에 연어랑 곱창이 싫은 나는 그다음 싫은 것을 줄줄이 읊어댔다.

내가 근래 또 싫어했던 건 누구나 다 갖고 싶어 하는(혹은 갖고 있는) 애플 워치다.

나는 평상시에도 핸드폰을 무음으로 해두는 사람이다. 카톡 알림을 다 꺼두고도 어플 위로 뜨는 빨간 팝업이 힘들어 그 알림마저 보이지 않게 해 놓는 무알림의 인간. 사사건건 시달리는 게 싫은데 알림을 보고 그냥 지나치질 못해 언제나 피곤해 하는 류의 그런 사람인 것이다... 그러니 이런 내게 애플 워치라는 물건은...


실, 핸드폰의 온갖 알림을 싫어하기 때문에 애플 워치를 싫어하게   아니다.  순간 애플 워치에 반응하는 상대방을 보는    시끄러워서 그렇게 됐다. 그들은 손목에 오는 진동에 매번 반응했고 곧잘 본인만의 시공간으로 옮겨 갔다. 누군가의 바쁜 일이야 내가 짐작하고 마는 것이지만, 나와 함께 있는 시간에 홀로 어딘가로 떠났다 돌아오는  묵묵히 기다리는    피곤하게 다가왔다.

내가 그걸 안 써봐서 그런가? 아니면 내 앞에 앉은 저 사람보다 덜 바빠서...? 타인의 메시지에 시달리고 싶지 않은 나만의 마음으로 무작정 상대방을 평가해버리는 건가? 매번 복잡한 기분으로 그 순간을 버티곤 했지만, 결론적으로 나는 손목에 오는 알림에 늘 시달리는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이 힘들다. 그래서 싫고, 갖고 싶은 마음도 생기지 않는다.


아무튼 요즘은 매일매일 '싫어하는 것들의 목록'을 작성하고 있다.

무언가를 싫어한다고 이야기하다 보니 그 안에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조금 더 좋아하는 것이 보인다. 애플 워치가 싫다는 건 마주 앉은 사람과의 시간에 집중하는 걸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뜻이다. 연어를 싫어한다는 건 우리 가족의 '입맛의 역사'가 나에게로 이어졌고, 그것의 증명이 지금의 나에게 때때로 중요하다는  것(쓰면서 야-악간 끼워맞춘 기분이 들긴 하지만 사실은 정말 그렇다)이다. 곱창이 싫다는 건 내 엄마의 무릎을 닳게 만들었던 온갖 내장들이 밉고(엄마는 10여년간 순대국밥집을 했었다), 더 이상 엄마의 건강을 해치는 것들과는 상종(?)하지 않고 싶으며, 건강한 이대로를 오래오래 보고 싶다는 것이다.


싫어하는 마음보다 좋아하는 마음을 더 많이 말하는 사람이 더 큰 사랑을 받는다는 걸 안다.

하지만 나는 이 이야기를 무척 잘 해내는 사람이고 싶다.

따가운 외피를 모두 벗겨낸 다음에는 그 속의 부드러운 사랑이 조금 더 잘 읽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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