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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붐 Oct 19. 2023

구정, 옛 정.

 구정, 설이다. 아주 단촐한, 10년 전과 비교할 때 그 그림자 정도만 어렴풋이 남아있는 <세배 의식>을 했다. 

더이상 세뱃돈을 줄 아이들도 없으며 가족들의 다수는 여기저기로 각자의 살 길을 찾아 떠났기 때문이다.

세뱃돈을 받을 일은 없다 더이상. 그것이 설날의 짭짤한 별미일진데 말이지. 이미 서른을 넘어섰지만 그 간단한 수익창출 과정을 뇌리에서 채 지워내진 못했나보다. 한심한가, 누구나 그래봤을 법 한데...아니라면 죄송.

어쨌든, 내게 세뱃돈을 받을 일은 이제 없다. 영영 없다. 고조 할아버지 쯤이 갑자기 되살아나지 않는다면 말이다. 물론 그런다 한들 방금 묘지에서 흙을 털며 걸어나오신 분께 세뱃돈이 마련되어있을 리 만무하기도하고. 다만 한가지 다행스러운 건 내 쪽에서 세뱃돈을 챙겨줘야 할 귀여운 조카들 또한 생기지 않았고, 앞으로 생기는 일 또한 요원한 일이라는 것. 어쩐지 내 삶이란 인간의 성장 과정의 중간 중간 누락이 많은 삶이지만, 어쨌든 일단은 다행이 아닌가! 

공평하게 받지도 않고 주지도 않고! 게다가 과거에 이미 많이 받아먹었고. 후후. 이만한 이익이 있을까! 다행인 일이다.


다행인가? 정말? 인구 증가와 거의 대부분 민주 정부의 전체주의화, 관료 사회화 그리고 인간이 불러일으킨 기후위기, 식량난에서 이어지는 각종 자가면역질환 등 만성질병의 원인인 유전자조작식품(GMO)의 범람 등... 아이의 성장 터전이 되어줄 자연과 건강한 먹거리가 희귀해져가는 세상에 굳이 탄생 씩이나 해가면서(그것도 불가항력적으로)

고령화 되어가는 사회를 돌아가게 하는 연료처럼 만들 것이라면,, 이라고 생각하는 측면에서 다행인 일이 맞다는, 무엇보다 맞다는 결론을 내지만, 커플의 사진에서 특성을 합쳐 애기 얼굴을 가늠해 보여주는 어플 속에 있던 내 자신의 얼굴과 여자친구의 얼굴을 꼭 닮은 미소가 분명히 아름다울 그 아이의 얼굴이 간혹 떠오르고, 그 압도적인 예쁨과 귀여움에 나도 모르게 입꼬리를 씨익 올리곤 한다.

얼굴에 마스크를 접착한 사람들이 지나간다. 백신 접종을 권고(?)하는 안내메세지가 울린다. 회색 하늘을 올려다본다.

이내 입꼬리를 내리고 아랫 입술을 앞니로 지긋이 누른다.

어떤 희망, 그런 달달한 것이 21세기 자본만능주의 사회 속에 남아 있던가.

눈이 소복히 내려앉은 골목의 추억 대다수가 사라진 동네의 풍경을 바라본다. 

앰뷸런스는 설에도 바빴다.


-2022.02.01 고향,응암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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