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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붐 Mar 22. 2023

마스크가 살갗에 달라붙은 사람들

내 생각을 외주 주지 않기

 대중교통 등 실내에서도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지된 지 이틀째다.

아직 버스와 지하철엔 마스크를 꽁꽁 모범적으로 착용한 시민들이 수두룩하다. 그런데, 이 모범은 무엇을 위한 모범일까. 제 아무리 미세먼지를 막는 마스크라 할지라도 바이러스를 막는 효과는 사실상 없다. 그냥 제로다.


바이러스는 정말로, 미친 듯이 작다. 제아무리 초미세먼지를 막는 마스크라도 바이러스라면 터널을 통과하는 자동차만큼이나 슝슝 드나들 수 있다. 어쩌면 그보다 더하겠다.



바이러스

는 세균의 100분의 1, 많게는 1000분의 1 정도의 크기이다.


세균

집먼지 진드기의 100분의 1 정도 크기이고,


집먼지진드기

 0.3mm 정도의 크기로,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을 만큼 작은 크기다. 집진드기라는 것들과 집먼지 진드기를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확연히 다르다.


그런데도 우리들 중 많은, 정말이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마스크를 철저하고 성실하게 써왔고 심지어 자유가 된 지금 까지도 열심히 마스크를 쓴다. 대체 왜일까. 왜 그들은 마스크를 쓸까. 심지어 장시간 착용하고 호흡하면 폐세포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는 게 밝혀졌음에도.








몇 가지 유력(?)한 후보가 있다.


1. 정부에서는 아직도 마스크를 '권고'하기 때문. 그렇다면 정부는 왜 권고할까. 자본주의는 결국 돈의 순환이고, 정부는 시장경제에 개입한다. 매일같이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한다면 마스크는 돈이고, 안정적인 순환 수단이며 국제적인 흐름에 열심히 발맞춘 결과이기도 하다. 미국의 정부는 제약산업, 무기산업과 결탁해 돌아간다 해도 과언이 아니며 전 세계는 미국 정부의 움직임과 함께 돌아간다 해도 무리가 아니지 않을까. 특히 우리나라는 더욱,


2. 이미 관습화.

한번 습관화되어 버린 행동을 바꾸는 건 그 타당한 필요성과 합리성이 완전히 이해되기 전에는 매우 어렵다. 그걸 이해시키는 것도 마찬가지로 몹시 어렵고.


3. 미디어에 나오는 사람들이 여전히 마스크를 착용하고, 뉴스에선 여전히 코로나를 운운하며 놓지 않고 있기 때문. 우리나라의 언론은 언론 다운 소리를 거의 내지 않거나, 거의 내지 못하고 있다. 콘텐츠가 방송되기 위해선 윗선의 승인이 나야 하는데 제 아무리 좋은 기자가 있다 한 들 윗선이 자본의 목줄에 매여있다면 자본의 뜻에 반하는 방송이나 기사를 낼 수 없다. 문제는 이미 전 세계의 대다수는 자본을 따르고 있다는 것. 그렇지 않으면 나라의, 기업의, 가정의 존립에 문제가 생기니까.


오늘날에는 수없이 많은 개인 방송이 있지만, 그만큼 방송의 공신력은 줄어들었다. 시청자들은 그저 자신과 의견이 맞은 채널을 골라서 시청할 뿐이다. 그렇게 사람들은 점점 더 끼리끼리 모이게 된다. 각자의 세계가 양립할 수 없는 상태, 의견의 양극화가 진행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떤 메시지에 대한 맹신 없이, 중립상태로 인과관계를 살피는 것.  



정부와 미디어에서 그렇다 하니까 의심도 없이 정답인 것처럼, 몸에 좋은 보약이라도 되는 것처럼 꿀떡 집어삼키는 사람들도 꽤나 있어 보인다. 그러나, 여기서 멈춰 생각해 봐야만 한다.

정부와 대다수(전부라 봐도 무방하다) 언론이 같은 의견을 보이는 나라에서 그들이 뿜어내는 정보는 신뢰할 수 있는 것일까.


언론은 정부나 기업을 견제하는 기능을 해야만 한다고 믿는다.


많은 언론사는 대기업의 자회사이며 대기업은 정부에 로비를 한다. 그러니 언론이 언론다운 기능을 할 수 있을까. 이럴 때일수록 정보가 범람하는 정보의 홍수에서 빠져나와 진행되고 있는, 벌어지고 있는 현상을 스스로 고찰하고 판단해야 하지 않을까.


백신부작용 사망자들은 국가의 권고를 잘 따랐을 뿐이다. 무엇을 보상한다 한들 보상이 될 수 없겠지만 피해자 유가족들은 마땅한 보상도 받지 못하고 있다. 원활한 호흡을 일정량 제한할 수밖에 없는 마스크는 과연 안전한 것일까. 꽤 많은 사람들의 얼굴 살갗에 이미 달라붙어버린 듯한 마스크는 정말 안전할까.


코로나와 마스크를 이렇게 까지 지겹도록 길게 끌고 온 것은 어쩌면 자신의 생각을

외주 내준 상냥한 시민들 덕이 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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