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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붐 Oct 19. 2023

출처 없는 눈들의 세계

익명의 낯들

이어폰을 귀에 깊숙이 눌러 꽂은 채 버스 중간 즈음에서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깼다. 나도 모르게 우르르 몰려 내리는 사람들 사이로 몸을 던졌다. 여기가 어디인지도 모른 채 카드를 찍고 내려서야 눈을 비비며 주위를 살펴봤다.

여기가 어디… 어! 합정. 더 가지도 덜 오지도 않은 제 때에 알맞게 내린 것이다. 그제야 살짝 내려간 마스크 사이로 경직된 숨이 터져나왔다. 글방지기 까불이는 지각생을 기다리지 않는다 했기 때문이다. 안경에 김이 자욱했다. 마을 버스 환승을 위해 다시 기다렸다. 전광판이 버스가 가까워 옴을 알릴 수록 주변의 시선이 한 방향으로 흘렀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조금 전 까지만 해도 없었던, 언제 그곳에 솟아 났는지 모를 사람들이 고개를 쭉 뺀 채 미어캣 처럼 무언가를 애타게 바라보고 있었다. 미어캣 행렬 가장 앞에 서있던 나의 눈 앞으로 회색과 퍼런색이 뒤섞인 거대 고래 같은 버스가 몇대 지나갔고, 버스에 삼켜진 눈만 보이는 사람들은 그곳에 박제된 듯 창 바깥의 또 다른 눈만 보이는 행렬을 넋놓고 바라본다.

오늘도 그곳을 지나는 눈들이 참 많았다. 언제나 그랬다는 듯이.

기다리던 버스가 도착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버스의 두 문으로 몰려들었다. 월드 워 Z 라는 영화가 있는데, 합정역 버스 환승 장면으로 그 영화를 소개하면 적절하겠다.

버스는 나의 것이 포함된 수많은 눈알들을 싣고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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