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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붐 Oct 21. 2023

사랑하는 카페를 빠른 시간 안에 파멸시키는 법

feat. 저음질 고출력 스피커

 간밤엔 열혈 모기에게 손톱 사이 같은 망측하고 절묘한 고통 포인트를 선별적으로 뜯어 먹혔다. 날갯짓 소리도 우렁찼던 놈(기실 흡혈 하는 건 죄다 암 모기지만) 에게 물린 자리는 고약하게 아프고 간지러워 잠이 싹 물러갔다. 해서 나는

 

스스로를 질식시킬 수 있을 만치 에프킬라를 난사했고 한동안 숨을 들이쉬면 기침을 해야만 했다. 한참을 

뒤척이고서야 잠에 들 수 있었는데, 깨어나니 아홉 시였고 원래 깨어나려던 시간은 일곱 시였다. 두 시간 만큼 아득해진 나는 잠을 잤다고 믿을 수 없게끔 몽롱했다. 모기는 내 피 만을 가져간 게 아니라 가까운 미래의 활력마저 도둑질했던 것이다.


피로에 쪄들어 이미 망한 느낌이 물씬 풍기는 하루였지만 좌우당간에 시작된 하루는 이어가야 하겠으니 일단 생존을 위해 밥을 사 먹었다. 그 조차도 무기력하게 침대에 퍼질러져 가끔 스마트하지 않은 바보상자의 용도로 사용되는 스마트폰과 두 시간 가까이 교감하다 느지막이 점심이 다 되어서야 나간 것이었다.


밥을 먹은 곳은 한라 대학가의 일식집이었는데, 안 그래도 조그마한 실내는 온 동네에 만연한 거리 두기로 인해 레고로 만든 식당 마냥 개인만의 식사 공간들로 오밀조밀 구획되어 있었다. 주문해 오래지 않아 내 앞에 놓인 음식이란 것 또한 레고 보다는 조금 큰, 미취학 아동의 식당 놀이 세트 장난감인 듯 했다. 세상에. 겉모습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내 배는 절대 미취학 아동이 아닌데.. 장난이 아닌데. 맛은 참 좋았지만, 밥을 먹고자 했으나 간식을 섭취한 기분. 오, 미니멀리즘을 이렇게 실천하시는군요. 멋집니다만 왜인지 조금 우울하군요..


유사(?) 점심을 섭취한 뒤 동네의 애정 하는 카페에 도착했다. 서울의 이디야 만큼이나 이곳에 많은 체인을 운영 중인 어바웃이라는 이름을 가진 카페다. 이디야만큼의 가격에 커피를 마실 수 있지만, 그 공간만은 (수치화하기 어렵지만) 이디야의 70배가량 넓고 멋진 곳이다. 어느 지점이든 내부가 넓고 큼직해 마음마저 여유로워지는 듯 했다. 좌석도 공부하기 편한 좌석, 푹 퍼져 휴식할 수 있는 좌석 등 다양하고 많으며 두 면이 유리창으로 이뤄져 채광도 좋은 데다 층고가 높아 탁 트인 느낌을 주어서 몇 주 전부터 열혈 방문자가 된 곳이다. 


주로 평상 가격 절반 가량의 할인이 되는 이른 아침에만 카페에 방문했는데 오늘은 젠장, 오후에 오고야 만 것이다! 비극의 서막이었다. 오후의 카페는 음악 볼륨이 꽤 크며 노래 선곡은 난잡하기 그지없었다. 브리트니 스피어스 격의 노래가 나오다가 준 강아솔(강아 솔은 아닌 유사한 어떤.. 그런 느낌)을 튼 뒤 준 엔싱크 (엔싱크는 아닌 유사한 요란함)의 노래를 트는 식이다. 도대체 이렇게 선곡을 하는 능력이라는 것도 대단하지 싶었다. 손님의 탈출 욕구에 불을 지펴 카페의 좌석 회전율을 높이려는 고도의 전략일 것이다. 만약 의도치 않은 것이라면 믿을 수 없게 절망적인 음악 취향을 가진 누군가의 소행이겠지.


이런 선곡과 함께라면 편안한 휴식과 독서를 하려던 계획은 손쉽게 공중분해 되고 만다. 이런 전쟁, 재난과 같은 선곡과 함께이면 그 어디에 있더라도 언제 총알이 날아올지 모르는 배틀그라운드 세상에서 헐벗은 채 댕강 떨어진 듯 정신이 혼란할 것이다. 오늘 계획한 일을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꽤나 넓은 카페이기에 스피커로부터 멀찍이 격리된 공간을 찾고자 내부 두 바퀴를 답사했다. 카페의 모든 구석에는 값싼 

저음질 고출력 스피커가 탑재되어 있었다. 음질 이라는 것은 하나의 '고'만 삭제 해도 아주 끔찍해지는 위태로운 것이구나. 스피커는 카페 내부 어디든 구석구석 치밀하고 부지런히 배치되어 있었다. 어디에서나 공평하게 고막을 갈아먹을 듯한 음질에 난잡한 선곡의 음악을 감내해야만 하는 구조였다. 


이 지경이라면 만인의 평등한 고통을 위해 고안해낸 대중교통의 탈을 쓴 '대중고통' 이란 명칭에도 손색이 없겠다. 그렇지만 저 왼쪽에 앉아서 홀로 평화롭게 등을 기댄 채 다리를 꼬고 영화 기생충을 보고 있는 에어팟 프로를 낀 남자는 '노이즈 캔슬링' 기능으로 자신이 듣고 싶지 않은 세계는 모두 소거하겠지라는 생각에 가닿았을 때는 좀 머리가 지끈해 방금 본 것을 지우려는 양 눈을 질끈 감을 수 밖에 없었다. 


대중고통 속 대중 중에서도 무언가가 결여된 사람은 고통을 끝내 비껴갈 수 없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기저질환자인 나에게 일어날 부작용이 두려워 백신조차 맞기 두렵게 하는 건강의 결여, 고로 백신의 결여, 소음 감내 능력의 결여 같은 것을 생각하다가- 


이내 에어팟 프로를 갈망하는 나를 들여다보며 애초에 없어도 삶을 살아가는 데 아무런 지장 없는 무언가를 자꾸 필요로 할 수밖에 없게끔 물건을 계속 생산하고, 세상을 혼잡하게 만드는 것으로도 모자라 결국 환경을 낭떠러지 아래에 던져버리고 대신 쓰레기를 건져 올리는 모두를 둘러싼 자본주의 세상 같은 것을 생각하다 어느새 눈 앞이 아득해진 내가 있었다. 어서 노트를 접고 지옥의 음악으로부터 탈출하자. 최애 공간이 최악의 음악 선곡을 하다니, 역시 세상은 둘 다 얻을 수는 없는 곳인가 보다 하며 집으로 도망치고말았다.



21.09.07

노형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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