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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붐 Oct 27. 2023

노숙죽음과 H

 요즘 아주 많이 쓰고 싶은데, 쓸 마음의 여유가 없다. 아직 무엇도 이렇다 할 정확한 무기 혹은 도구 혹은 수단.. 뭐 그런게 정해지지 않은 채로 하루 중 대다수 시간을 그걸 발견하기 위해서랍시고 펼쳐 든 여러 권의 책에 더해 인터넷 검색 까지 더해져, 도무지 말을 들어먹지 않는 반려견을 다섯 쯔음 키우는 원룸 자취방 같은 모양이다. 반려견은 딱 하나 데리고 살아봤으나 그들의 난장판력이랄지, 그런 것은 천부적이니까. 


요즘 H의 머릿속은 그렇게나 복잡하다. 그럴 때 가장 좋을 일은 글을 쓰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H는 그 행위를 퍽 즐겼던 것도 같은데, 최근_일년 즈음 전 부터 뭔가 '더 뛰어난 걸 쓰고싶다!' 하는 마음만 무럭무럭 자라난 데다, 빈 화면과 마주하는 시간은 그와 반비례해 줄어드니 닿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최근 H의 글을 마주하면 뭐랄까, 토사물이 자유로운 포즈로 뒤덮힌 초코 케이크를 완성한 듯한 기분이 들곤 했다.

아니야. 이대론 도저히 안되겠고 생각은 계속 복잡해지니까, 매일매일 일기를 쓰는 시간을 꼭 확보 해야겠다 싶었다. 기필코,무슨일이 있어도 일기 만큼은 쓰리라. 정말로 무슨 일이 있다면 못 쓸 수도 있겠지만, 그러니까 웬만하면 말이다.


어제 H는 전에 겪어보지 못한 형식의 소소한 기부를 하게 됐다. 이제는 80년대생 이상의 올드 어덜츠들이 주로 사용하는 페이스북을 H는 종종 둘러보는데, 페이스북에는 갖가지 페이지 라는 소모임이 있고, 예전부터 사진에 퍽 관심이 많았기에 Art Potograhpy, 네셔널지오그래픽, Wildlife 등과 같은 페이지들을 팔로우하고 게시물로 올라오는 사진을 구경하곤 했다. 이틀 전 밤에는 네셔널지오그래픽 페이지에서 평소와 다른 성질의 사진이 목격됐다. 그 사진은 단숨에 주의집중을 옭아매 클릭할 수 밖에, 그리고 사진 밑에 함께 쓰여진 글을 읽을수 밖에 없게 만드는글이었다. 아마 당신이라도 그렇지 않았을까?


사실 무엇보다 더 눈길을 끌었던 것은 그의 페이스북 닉네임이었는데, 어떻게 가능한 지는 모르겠지만 이름이 있어야 할 곳엔 '노숙죽음'이라는 퍼렇고 굵은 글자가 채워져 있었고 건강이 염려되는 많이 부은 그의 얼굴과 어두침침한 공사현장의 사진들, 그리고 정신장애인 복지 카드 같은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어디인지 알 수 없는 몹시 축축해보여 피부와 결코 닿지 않게 하고 싶은 곳에서 찍은 자신의 평평한 발 사진도 끼어있었다.  얼굴만 보고 서른은 넘을 거라 예상했던 그는 아직 24살 밖에 되지 않았으며, 보육원에서 성장해 성인이 된 이후 자취  생활을 이어왔으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사기를 당했고 돈을 모두 잃고 공사장을 전전하는 중이라고 했다. 그의 퀭한 안색이 납득이 됐다.


음식은 편의점에서 해결하고, 잠은 공원과 상가 화장실에서 잠깐씩 나눠 잔다고 하는 그 장문의 글은 정신장애로 인해 우울하고 무기력하고 불안해 올바른 생각이 어렵다는 그의 말에선 그의 삶에 대한 의지가 묻어나고 있었다. 그가 사정을 열거하며 하려던 말은 이런 것이었다.


'다른 건 .어떻게.든 이겨낼 수 있겠는데, .배고픔.을 견디는 게. 너무 힘이.듭니다.'


문장과 별 관계 없이 중구난방 찍혀있는 마침표 . 에는 그의 혼란한 정신과 불안이 담겨있는것 같았다. 그리고 다소 결의에 찬 어투로 '잊지 않고 꼭 갚겠습니다.' 라고 거듭 되뇌이는 그의 말에서 분연히 일어나려 애쓰는 결기 같은 것도 느껴졌다. 물론 페이지의 룰을 어긴 포스팅이었고, 결의에 찬 문장들 또한 거짓일 가능성도 아주 없진 않았다. 그러나 단 한 톨의 진실이라도 포함 되어있다면 그를 돕고싶다는 마음이 덜컥 들어버린 것이다.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어 자신을 투신하듯 부탁하는 게, 그리고 스물 네살이라는 가장 좋을 나이가 안쓰럽고 대단했다.


지금 이 사람에게 돈을 보내주는 게 정말 그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자립하기에는 점차 멀어지는 방식으로 단지 손 벌리는 데에, 무언가에 기대어 살아가는 데에 익숙해지는 건 아닐까 싶었지만, 그의 차디찬 밤과 아침이 배를 주리지는 않게 최소한의 손을, 새끼 손가락 이라도 내밀고 싶었다. 

사실은 그보다 난데없는 한줄기 죄책감을 껴안고 싶지 않았는 지도 모르겠다. 게시물에 적힌 계좌로 송금하려던 중, 페이스북 화면을 잘못 만져 새로고침이 되어버렸는데, 페이스북에서 특정 게시물을 찾는 것은 약간 과장하면 하늘의 별따기, 모래사장에서 데일밴드 찾기 만큼 어렵지 않나.


아! 다시 찾기엔 시간이 늦었다. 시간은 이미 12시에 가까워지고 있었고, 눈꺼풀은 퍽 무거웠기에 그냥,,, 조그마한 지출이 줄어든 것에 대한 안도감도 없지 않았다. 참 안됐다고 생각하면서도, 일면식도 없는 3자의 고통은 이렇게도 쉽게 지나칠 수 있다. 어떤 나라에서는 당장 하루에도 수백 수천명의 살과 뼈가 찢겨나가는데도, 이곳의 누군가는 팔자 늘어지게 내일 뭐 먹을지를 생각 하듯이. 


우리의 뇌는 잠들기 직전에 행했던 활동과 생각을 몸의 주인이 잠에 든 동안 계속 돌려본다더니, 정말 이었다. 아침에 조금 이르게 눈을 뜨자마자 떠오른 건 그게 눈가인지 영혼인지 알 수 없는 무언가 찌그러져 있는 듯 했던 그 스물 네살 청년이었다. 어젯밤은 어디에서 잠을 청했을까. 아침에 일어나서 뭘 먹을 수는 있을까.

그 어렵다고 느끼던 페이스북에서 특정 게시물 찾기를 하고, 간밤과 같이 꼭 같은 상태로 여전히 게시되어 있는 그의 글을 찾을 수 있었다. 카카오 뱅크에 접속했다. 이번엔 나름대로 오래 모으고 있던 저금통을 비웠다. 만원만 보내달라 호소하던 금액보다 약간 더 모여있었다.


아주 잠깐 고민이 됐다. 내 통장도 빼빼 말라붙고 있는데 되먹지 않은 선민의식 부릴때인가 하는 생각을 하다보니 '꼭 다시 일어서겠습니다'라던 그의 글이 생각났다. 어느새 불행을 종합선물세트로 받아든 그가 꼭 다시 일어서기를, 자립하길 바라고있었고, 그건 H 자신에게 바라는 것과도 같았다. 모르는 사람의 작은 도움이 그의 마음을 얼마간 따듯하게 해주길 바라며, 던지기 어려운 부메랑은 아닌 한없이 가벼운 것이었지만, 자신이 던진 이 행운의 부메랑이 돌고 돌아 다시 H 스스로에게 다시 돌아오기를 바랐다.


H는 그 스스로가 알을 깨고 세상으로 나가길 고대하고있다. 자신 인생의 항해가 잘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 만큼, 스물 네살 노숙청년의 삶이 나아지길 내심 바라고있었던 것 같다.

사람은 다른 대상으로부터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자신 스스로를 보게끔 설계되어있는 것 같다. 혐오하는 것에서도, 애정하는 것에서도. 그래서 우리들은 이기적 존재일 수 밖에 없는게 아닐까.

H는 그렇게 이기적이라면 이기적일 기부이자 소액 투자를 했다. 그 청년에게도, 스스로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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