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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ily Chae Nov 01. 2020

예술과 함께 사는 삶

에필로그

몇 년 전 서울에서 열린 작은 아트 마켓에서 천만 원짜리 작품 옆 한 켠에 ‘빨간 스티커’가 붙어있던 것을 보고 느꼈던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미술품이 있어야 할 곳은 미술관 밖에 없다고 생각했기에 미술품 옆에 붙어있는 가격표는 어쩐지 어색했고, 게다가 ‘천만 원이나’ 하는 작품을 실제로 사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내겐 충격적이었다. 그만큼 미술시장에 대해 무지했다. 나름 미술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도 이 영역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온라인 문화예술 플랫폼 아트인사이트에 “미술을 사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매달 글을 연재한 것이 어느덧 만 2년이 되었다. 미술품을 사고 파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이러한 궁금증과 그들에 대한 막연한 동경으로 시작한 자료조사가 스무 편의 글로 남았는데, 그동안 내겐 이상한 버릇이 하나 생겼다. 전시를 보러 가거나 미술에 관한 글을 읽을 때 무심코 지나쳤던 이름들을 이젠 유심히 본다. 누구의 컬렉션인지, 누구의 후원으로 작품이 이곳에 왔는지, 그 과정에서 거쳐간 이들은 누구인지… 좋은 소재를 찾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보니 평소엔 보지 못했을 것들을 발견하게 됐다.


작은 집 구석구석 작품으로 가득했던 보겔 부부의 방


미술관에 걸린 어떤 작품을 볼 때, 우리는 그것이 전달하려 하는 것, 즉 내용에 먼저 집중하게 된다. 하지만 작품이 말해줄 수 있는 건 그 외에도 많다. 한 작품이 작가의 스튜디오에서 탄생해, 누군가에 의해 발견되고 다른 이들에게 소개되며 거래되고 전시되고 다시 거래되고 어딘가에 기부되기도 하는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수많은 이야기가 생겨나고 동시에 가치도 더해진다. 그래서 미술 시장에 종사하는 이들은 좋은 작가의 좋은 작품이 그에 걸맞은 좋은 주인에게 갈 수 있도록 세심한 노력을 기울인다. 그래서 사는 이도 파는 이도 작품에 대해 열심히 공부하고 작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려 한다. 또 사람마다 외모와 성격, 배경, 관심사가 다르듯 컬렉션의 방향도 가지각색이다. 특정한 분야에 관심이나 사명감을 가지고 수집하는 이들도 있고, 작가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으며 자신이 공감하고 지지하는 이들에 대한 후원, 팬심으로 구매하는 이들도 있다.


어떤 형태이든, 세상엔 멋진 컬렉터와 딜러들이 아주 많다(이건 글을 쓰면서 확실히 느낀 거다). 그들이 멋진 것은 미술을 진심으로 진지하게 대하기 때문이다. 예술계 종사자이건 본업이 따로 있건 그들은 늘 미술과 함께 산다. 실제로 그들 집에 미술품들과 함께 살고 있긴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예술에서 늘 무언가를 느끼고 있다는 뜻이다. 감동이든, 사랑이든, 의구심이든, 반성이든. 그런 이들이 가진 눈빛과 삶의 태도는 그 자체로 또 다른 사람들에게 영감을 준다. 지난 2년간 나 또한 그들에게서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는 삶을 배웠다(그리고 얼른 미술을 사고 싶다는 열망도 함께). 부족한 글을 통해 또 다른 이에게도 내가 받은 영감이 전해졌기를 바라본다.



Emily Ch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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