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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멧북 Dec 09. 2023

단순한 열정 - 아니 에르노

온전히 집중한 나에 대한 글.

# 01.

"이제 저 재킷만 걸치면 저 사람은 떠나겠지. 나는 나를 관통하여 지나가는 시간 속에 살고 있을 뿐이다." (p.17)


"우리가 지금까지 몇 번이나 사랑을 나누었는지 헤아려보았다. 사랑을 할 때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이 우리 관계에 보태어진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동시에 쾌락의 행위와 몸짓이 더해지는 만큼 확실히 우리는 서로 조금씩 멀어져 가고 있었다. 우리는 욕망이라는 자산을 서서히 탕진하고 있었다. 육체적인 강렬함 속에서 얻은 것은 시간의 질서 속에 사라져갔다." (p.17)


우리는 멈추지 않고 흘러가는 시간 속에 살아간다. 시간은 우리의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우리가 제발. 제발. 잠시만 멈춰 달라고 사정사정해도 냉정하게 우리의 부탁을 거절한다.


그녀는 그와의 부도덕한 사랑과 쾌락을 나눌 때 행복을 느끼는 듯싶지만 결국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로의 욕망이라는 자산을 탕진해 간다. 그녀가 그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해도 소용없다. 그녀가 그에게 잘 보이고 싶어 갖은 노력을 하는 것 또한 소용없다. 언젠가 모두 시간에 휩쓸려 사라진다.


시간은 흘러가고 욕망 또한 시들어 사라질 것이다.


그녀는 그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공허함과 외로움을 채우기 위한 도구로 사용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그가 유부남이라는 사실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듯싶다. 나는 그녀의 이러한 행동은 사랑이 아니라 외로움과 공허함을 해소하기 위한 열정 내지 몸부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삶을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사람마다 외로움과 공허함을 해소하는 방법은 다르기 때문이다. (2023.12.09)



# 02.


"나는 내 열정을 일일이 설명하고 싶지는 않다. 그것은 정당화되어야 할 실수나 무질서로 여겨질 수도 있다. 나는 다만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을 뿐이다. 글을 쓰는 데 내게 미리 주어진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내가 열정적으로 살 수 있게 해주는 시간과 자유일 것이다." (p.27)


"나는 그 사람을 내 존재를 위해 선택한 것이지 책 등장인물로 삼기 위해 선택한 것은 아니다." (p.28)




그녀의 짧은 글을 읽으며 [단순한 열정] 한 권으로 그녀의 글과 삶을 이해하기 힘들다는 생각을 했다. 책 마지막에 쓰여있는 해설을 읽었음에도 말이다.


"개인 기억의 뿌리, 소외, 집단적 구속을 밝혀내는 용기와 임상적 예리함으로" 202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이 의미를 이해하려면 그녀의 글을 찾아서 더 읽을 수밖에 없다.


나는 처음부터 이 글을 읽으면서 최대한 윤리적, 도덕적인 잣대를 배제하려고 노력했다. 오로지 글에 나타나는 그녀의 삶을 받아들여보려고 노력했다. 힘들었다. 나와 완전히 다른 삶의 결을 가진 사람이라서 그런듯싶다. 혼자 끙끙 거리며 67페이지의 짧은 글을 읽으며 내가 내린 결론은 "외로움과 공허함 그리고 불안을 섹스와 글쓰기로 해소하고 그것을 통해 얻은 힘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인가?"였다. 물론 이는 나의 잘못된 생각일 수도 있다. 책 한 권만 읽고 모든 것을 확정적으로 말하며 단정 짓는 것은 옳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중에 불현듯 그녀가 떠오르면 다른 책도 읽으려고 한다.


불쾌하게 느껴지는 모든 것을 배제하고 오로지 그녀의 자전적 소설, 타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 거짓으로 쓰는 그런 자전적 글이 아닌 진솔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쓰고 그것을 타인에게 공개하는 자세. 이 부분만큼은 닮고 싶었다. 그렇기에 이 책은 오랫동안 책장에 다른 세계문학들과 함께 간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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