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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멧북 9시간전

고독에 관하여 - 요한G. 치머만

진정한 고독에 대하여.

# 01.

저자는 서문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고독'에 대해 말한다.


사람이 불필요한 잡음에 휘둘리지 않고, 용기 있고 깊은 통찰력을 가지고 고상한 이해심을 갖기 위해서 과거 훌륭했던 철학자, 위인의 삶을 연구하고 고민해야 된다고 말이다. 이때 필요한 것이 '고독'이다.


흔히 사람들은 고독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외롭고, 외톨이가 되며, 현실을 바라보지 않는 한심한 인간이 느끼는 감정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고독이라는 말이 세상과 그에 따른 모든 관심사로부터 철저히 도피함을 뜻하는 것만은 아니다. (중략) 누구든 혼자이지 않은 상황에서도 종종 고독에 빠질 수 있다."(p.6~7)


"그러므로 바로 내가 일시적 은둔의 이점에 주목하도록 독자들에게 권하긴 하지만, 동시에 철학을 공부하는 일부 학도들이 빠지곤 하는 위험한 무절제에 대해서도 경고하는 바다."(p.9)


고독은 언제, 어디서나 활용할 수 있다. 고독과 무절제가 다르다는 것을 명심해야 된다.



# 02.

고독은 사람을 때로 거만하고 우쭐하게 만들 때도 있고, 그릇된 믿음과 염세적인 생각을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세상의 소음이 아닌, 뛰어난 문학, 철학, 과학에 집중하게 된다면 고독은 미성숙 단계를 넘어 성숙의 단계에 들어선다. 이런 성숙한 고독. 즉 진정한 고독은 정신이 생각하도록 길들어가며 상상력이 활발해지고, 이익과 신뢰 또한 좋아진다. 그리고 어떤 외적인 대상. 사회의 성가신 소란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이를 통해 우리의 삶은 조금 더 진정한 자신의 삶에 가까워질 수 있다.



# 03.

고대 그리스부터 저자가 살았던 시기까지 역사에 이름을 남긴 사람들은 제대로 '고독'을 활용했다. 그들의 업적은 분야도 다르고 방법도 달랐지만, 고독을 활용한 방법에 공통점이 있다. 바로 '독서'와 '글쓰기'였다.


알렉산더 대왕은 정복 전쟁을 하면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고 항상 책에 자신의 관점을 기록했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브루투스(카이사르 암살의 주모자), 키케로, 대 플리니우스, 소 플리니우스 등 많은 인물들 또한 틈이 날 때마다 독서를 했고 자신만의 글을 남겼다.


그들도 반복적이고 끝없이 밀려오는 일상의 소음 그리고 일 때문에 괴롭다는 기록을 남겼지만 그럼에도 독서를 통해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하는 글쓰기는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랬기에 자신만의 뚜렷한 업적, 작품을 후대에 남기는 고귀한 삶을 살 수 있었다.


나는 고귀하고 대단한 사람은 아니지만 독서와 글쓰기만큼은 지속하려고 한다. 나중에 이것들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될지 궁금하다. 조금이라도 내 삶이 진솔하고 고유하게 만들어지는 데 도움이 되길 희망한다.


그리고 고독을 활용한 사람들은 시간을 중시했다. 일상과 여러 가지 일을 마무리하고 남는 시간을 활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근 내가 시간의 중요성에 대해 많이 생각해서 그런지 그들이 시간을 중요시하는 모습에 공감되었다. 반복적이고 의미 없지만 꼭 해야 하는 일을 마무리하고 남겨진 시간을 잘 활용하고 싶기 때문이다.


지금보다 조금 더 시간을 아끼자.



# 04.

사람은 소박한 아름다움을 느끼고, 감사함을 느낄 줄 알아야 된다. 인간의 대부분 고통은 '과잉'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과거에 대한 지나친 후회와 그리움, 미래에 대한 지나친 기대와 욕심 그로 인한 불안, 슬픔과 외로움, 고통이 없길 바라는 행복.


이 모든 것이 무언가를 강렬히 원하는 '마음의 과잉'에서 시작된다.


이러한 문제는 눈앞에 있는 실존하는 현재를 살아가는 것을 통해 조금씩 해결할 수 있다.


눈앞의 현재를 살아가려면, 앞서 말했던 '소박함'을 즐기고 사랑할 줄 알아야 된다. 소박함은 복잡하고 항상 과열 상태인 도시보단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에서 느낄 수 있다.


인간의 개입 없이 계절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하는 자연 안에서 생명에 대한 감사함과 소중함을 느끼며 더 나아가 상상력과 삶에 대한 즐거움까지 느끼게 된다. 객관적,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않아도 인간이라면 느낄 수 있는 순수한 아름다움 말이다.


우리는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행복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하지 말아야 된다. 오직 현재의 행복에 집중해야 된다.


현재의 행복에 집중하다 보면 미래의 행복은 자연스럽게 다가올 것이다.



# 에필로그.

끝없이 밀려오는 정보와 일상의 소음 속에서 고립을 하려 노력하지만 물거품이 되어버린다. 이내 현대인에게 고독은 사치이자, 신기루 같은 것이라 생각을 하게 된다. 더욱이 고독은 부정적인 삶의 요소 아니던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은 고독을 잊기 위해 방탕한 삶을 이어간다. 이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에게 고독이란 어떤 의미인지 생각한다.


나에게 고독이란 외로움이나 슬픔이 아니다. 오히려 기쁨과 희망이다. 힘든 일이 있거나, 새로운 결정을 할 때 '고독'에 빠지면 머리가 맑아지며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게 된다. 그 과정을 통해 기쁨과 희망을 느낀다.

간혹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던 중 고독, 외로움 등이 언급되면 항상 말한다. 고독은 중요하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다지 공감받지 못한 채 이야기는 다른 주제로 흘러간다.


그래서일까? 18세기에 살았던 치머만의 글이 마음에 꽂혔다. 그가 생각하고 주장했던 고독은 평소 내가 생각했던 고독과 비슷했다.


고독은 나태하고 우울한 것이 아니다. 치열하게 행동하며 살아가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선물이다. 고독을 느낀다는 것은 자신의 온전한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고독은 성장의 필수 요소이다. 고독해야만 혼자 깊게 생각하고, 고민하고, 공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독만이 우리를 온전한 자신의 세계로 이끌어 준다. 고독은 저주가 아니라 선물이다.


고독에 대해 생각해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강인한 정신적 자질과 불굴의 용기, 굳은 결의, 금욕적 단호함은 무수한 난관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시끌벅적한 인간적 교류보다는 고요한 명상을 통해 더 빨리 습득할 수 있다."(p.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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