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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진혁 Mar 25. 2024

그리운 식사, 토속촌

오랜 추억이 담긴 식당에 관한 이야기. 사라진 곳에는 경의를, 굳건한 곳

재능이 없음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나는 스무 살 여름에 알았고, 스물여섯에는 할 수 있는 게 이것뿐임을 인정했다. 두 학번 선배 형도 비슷했다. 그도 글쓰기를 포기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와 형의 차이는 그가 더 똑똑하고, 노력했다는 정도일 거다. 그건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어쨌든 형은 글로 무언가를 이루었다. 작가가 되었고, 나는 청계천 24시간 카페에서 밤새 작업했다. 후진 노트북으로 꾸역꾸역 포토샵을 했는데, 사진 용량이 크면 프로그램이 먹통이 되곤 했다. 선배 형은 노트북에 패배한 나를 보러 가끔 광화문 카페에 왔고, 저녁을 사줬다. 형은 나보다 더 잘 살지도 더 벌이가 나은 것도 아니었다. 나는 형처럼 되고 싶기도 했다. 형처럼 작가로 인정받고 싶다는 건 아니다. 그걸 인정하면 나는 정말 지는 것 같으니까. 동생들에게 작은 저녁이라도 먹이는 그런 인간이 되고 싶었다. 형의 등단을 축하하던 날 형은 나를 경복궁 앞 삼계탕집에 데려갔다. 세종로 찬 바람을 뚫고 걷는 동안 말이 없었다. 진즉 형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으니, 성의 표시는 했다. 그저 나는 코트깃으로 가는 목을 가리고 삼계탕집의 웅크린 닭보다 더 비루한 자세로 식당에 기어 들어갔을 뿐이다. 기쁨을 나누기엔 내 20대는 몸과 마음 모두 가난했다. 당시 대통령의 맛집으로 명성을 얻은 토속촌은 손님이 붐볐고, 형은 삼계탕 두 개를 시켰다. 애피타이저로 나온 작은 인삼주를 마셨다. 형은 절반을 나는 원샷을 했다. 추워서 그랬지만 그날은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인삼의 향도, 물에 빠뜨린 닭의 형상도 반갑지 않았다. 하지만 뜨거운 닭 육수는 식도를 타고 내려가 마법처럼 어깨를 느슨하게 만들었고, 굳은 손가락은 부드러워지며 눈가까지 열이 올랐다. 그냥 고맙다고 했으면 됐을 텐데, 동정이든 동지애든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이런 나를 먹여줘서 고맙다고 했으면 됐는데, 질투심을 인삼주와 삼계탕에 담그고 갔다. 지금도 토속촌 삼계탕 국물을 마시면 나도 무언가를 이룰 수 있다고, 내게도 약간의 재능은 있다고. 치기 어린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 엘르, 2024년 2월호

https://www.elle.co.kr/article/84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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