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한 쿠데타
락바텀(Rock Bottom);
(음악) 힙합아티스 고 아이언의 첫번째 앨범의 타이틀곡, 락바텀; 부모님이 금지하는 건 모두 나쁘다는 평면적인 도덕관, 돈만 된다면 무엇이든 좇고 보는 맹목적인 추종주의를 비판한다. 병든 사회에 가하는 일갈이자, 낭만을 되찾고자 하는 공격적인 도발; (가사) “싹 다 데려와 이 밑으로"
(사전) ‘엄청’이라는 부사로 종종 활용되는 영단어 ‘rock’ + 밑바닥을 뜻하는 ‘bottom’의 합성어
(의미) 어떤 고매함도 없이,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저 밑바닥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바닥 중의 바닥, 바로 Rock Bottom
지금부터 내가 전하는 이야기는 매우 공평하지 못한 이야기다. 내가 묘사하려는 상대방은 변명의 기회를 갖지 못한다. 모든 이야기는 나의 시점에서, 내가 느낀대로 기술된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그로부터 탄생했으며, 내 인생의 절반 이상을 그에게 빚지고 있다. 어쩌면 지금도 그의 경제력에 기대어서 산다. 고로 나는 이 이야기를 하는 데에 있어서 만큼은, 자기객관화에 철저하게 실패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를 완전히 인정한다.
잔다르크와의 드라이브 이후, 녹초가 된 몸으로 집에 와보니 오랜만에 아빠가 와 있었다.
“도운이 왔니? 자식, 공부 열심히 하네. 라면 끓어줄까?”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먼저 잘게요.”
“그래, 배고프면 말하고. 아빠가 요리는 끝내주게 하잖니.”
“하하, 괜찮아요. 안녕히 주무세요”
세상에는 우리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승리의 격언들이 있다. 세 개만 꼽아보자면 다음과 같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어”, “다음부터 잘 하면 되지”, “별 거 아니야”.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해 있을 때, 이 셋 중 하나만 외쳐도 그럴듯한 핑계가 만들어진다. 그중 나를 가장 곤혹스럽게 만드는 건 단연코 "사람은 누구나 실수한다"이다. 그말에는 누군가에 대해 쉽사리 단죄할 수 없게 만드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나의 지독한 열등감은 바로 이 말에서 기원한다. 혹시라도 내가 이 사람을 못 알아준 것은 아닐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라면, 이 사람을 좀 더 잘 알아주지 않았을까. 특히나 판단의 대상이 나와 가장 가까운 혈육일 때는, 그 번민이 이루말할 수 없다. 나는 아버지에 대해서 늘 생각한다. 그의 존재를 '누구나 할 수 있는 실수'로 인정하고 나의 삶 안으로 들여와야할지, 아니면 타협할 수 없는 대상으로 배척해야 할지.
(젓가락과 포크)
유년 시절의 누구에게나 그럴 것이라 믿는다. 특히 아버지에 관해서는, 밤늦게 되어서야 술냄새 풍기며 들어오는 전형적인 '직장인' 이미지를 떠올리기 십상이다. 동시에 커가면서 그를 '아버지'가 아닌 '인간'으로 마주할 때가 되면, 성장하는 인간과 성장한 인간 사이 여러 갈등들이 피어오른다. 그리고 대부분의 갈등은 사소한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나의 경우는 중학생 무렵, 문/이과 선택을 고민하기 위해 모인 저녘 식사 자리였다. 그는 말없이 돈가스를 먹던 중, 갑작스레 나에게 농대로 진로를 확정하라고 했다. "농대로 정해라. 내가 봤을 때는, 농업이 미래 최고의 산업이다." "지금은 우선 문이과만 결정하면 돼서요, 과는 나중에 한 번 생각해볼게요" 무엇이 그를 그렇게 화나게 했는지, 나는 지금도 의아하다. 이런 식의 몇 번의 실랑이 이후로, 그가 버럭하며 식탁을 손으로 내리쳤으니까. “야 이도운, 잘 들어라. 내가 이 포크가 젓가락이라고 하면, 넌 그런 걸로 알아야 돼. 알겠어?”
당황한 내 눈 앞에 아빠는 포크를 들이댔다. 방금까지 돈가스를 찍어먹을 때 쓰던 포크였다. “자, 대답 한 번 해봐. 이게 포크야 아니면 젓가락이야?” “대답해봐, 이게 뭐냐” “아빠, 이건 포크잖아요, 왜 그러세요…” 그러자 그는 무거운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야, 내가 뭐라고 그럤어? 포크가 젓가락이라고 내가 말하면, 이건 젓가락이 되는 거야.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말할 거야. 이게 포크야, 젓가락이야?” “…”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그의 말대로 했더라면, 그 자리는 어찌저찌 넘길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가뜩이나 높던 그의 목소리톤은 더욱 높아져, 고성에 가까워졌는지도 모른다. “너 지금 이게 말도 안 되고, 부당하다고 생각하냐? 그렇지 지금 속으로? 잘 들어, 사회는 말야. 위에서 ‘이렇게 해’라고 하면 해야되는 거야, 임마.” 나는 너무 억울한 나머지 눈물을 터뜨렸고, 그제서야 아빠는 엄마의 만류에 못 이기는 척 자리를 떠났다. “애들이 말을 안 들어, 말을.”
놀라운 건 내 안에 일어나는 반응이었다. 처음에는 억울한 마음에 눈물이 솟구치고, 그가 무서웠다. 그런데 눈물이 그치고 이성을 되찾자,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가 나를 대하는 태도에 진심으로 화가 났다. 동시에 묘한 감정이 느껴졌다. 내가 그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이었다. 한없이 권위적인 그의 존재였는데, 그의 주장보다 나의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었다. 갑자기 생긴 하나의 비밀이었다. 누구에게 이야기할 수 없고, 이야기해서도 안 되는, 그렇기에 혼자서만 천천히 음미해야만 하는 비밀. 아마 그건 마음속 은밀한 쿠데타의 조짐이었다. 이 '은밀한 쿠데타'를 감추기 위해, 다음부터 나는 그의 말에 토 달지 않았다. 놀랍게도 그럴 때면 아빠는 매우 자상했다. 요리도 곧잘 해주었으며, 부드러운 중저음의 목소리로 나근나근 말했다. 그래서 그때만 하더라도 나는 내 안에서 일어나는 비밀을 감추고, 권위에 순종하는 것이 이 가정을, 그리고 나아가 이 사회를 살아가는 법이라고 여겼다.
(쿠데타의 조짐)
두 개의 다른 물질을 섞으면 화학 반응이 일어나듯이, 우리 안에서도 생각과 감정들이 뒤엉키다 보면 반응이 일어난다. 문제는 두 경우 모두, 자연적으로 반응이 발생할 때도 있지만 대개 어떤 촉매(catalyst)의 작용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그가 가장의 역할을 잃어간 시점부터, 나의 '은밀한 쿠데타'는 시작의 총성을 알렸다. 내가 고등학생일 무렵 그는 대기업을 그만두고, 대학동기들과 독립법인을 차렸는데, 얼마 되지 않아 가정 형편은 급격하게 기울었다. 어느 순간 그는 집을 나가는 날보다 집에 있는 날이 더 많아졌고, 그럴수록 안방에서 고성이 들려오는 빈도도 늘어났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그는 아예 집 밖을 나가지 않게 되었다. 정확히 말해서는, 그 어떤 활동도 하지 않게 되었다. 서재에서 밥도 따로 먹었고, 저녘 식사 때도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매일 아침이면, 집 앞 우체통에 세무서와 각종 거래처에서 온 우편물이 쌓였는데, 대충 봐도 위험해 보이는 발신자가 늘 한 두 개씩은 섞여 있었다. 나는 등교를 하기 위해서 매번 이 우체통을 지나가야 했는데, 그럴 때면 마음속에 무거운 뭉치가 하나 눌러 앉아 속이 괜시리 답답해지고는 했다. 하지만 슬프게도 그것들을 딱히 처리할 만한 능력도 없었고, 무엇보다 그것들을 보는 일이 달갑지 않았기에 매번 그들을 한 데로 뭉쳐서 집 앞 문틈에 쑤셔 놓고는 나왔다. 그러면 그 친구들은 엄마의 상대가 되었다. 일일히 거래처를 연락하고, 체납된 세금을 정산하는 엄마의 모습은 저녘이고 아침이고 일상이 되었다. 그 모습을 뒤로 하고 나오는 때면, 가슴 한 켠이 무거워졌다. 동시에 기쁘기도 했다. 나의 '은밀한 쿠데타'가 정당성을 갖추어 간다는 느낌이 들었으니까. 내가 교만한 아이가 아니라, 설득력 있는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리고 나의 교만은 시간과 함께 더해졌다.
하루는 학교에서 공부를 마치고 늦게 집에 들어왔는데, 엄마가 울면서 나에게 안겼다. “도운아, 엄마가 정말 어쩌면 좋니…” “무슨 일이세요? 아빠는요?” “글쎄 너희 아빠가 말이다…” 다급한 마음에 서재에 들어가 확인해보니, 아빠는 이곳을 떠난지 오래였다. 정확히 말해서는, 이 나라를 떠난지 오래였다. 그의 책상에는 아프리카 관련 서적들이 펼쳐져 있었고, 보드에는 그곳에서의 사업 계획들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집주소로 발송된 편지 하나가 뜯어져 있었다. 항공사에서 보낸 아프리카행 비행키 티켓값 청구서였다. “아빠가 엄마한테 이런 얘기한 적 없어요?” “없어. 이 큰 돈을 어떻게 내야할지 모르겠구나.” 울고 있는 엄마의 등을 토닥여 드렸다. 그가 귀국한 것은 3개월 뒤, 사업 실패로 아프리카행 비자가 만료되었을 때였다. 우리를 위한 아프리카 전통 장난감들을 기념품이랍시고 잔뜩 사들고 왔다. 천진난만한 얼굴로,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웃으며 자신의 귀환을 알렸다. 나는 손에 쥔 티켓 청구서를 구겨쥐었다. 쿠데타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빚쟁이들)
나의 쿠데타가 성공한 날은 일요일이었다. 엄마와 주일예배를 오랜만에 갔다 온 날이었고, 다음날이 기말고사인 날이었기에 똑똑히 기억한다. 나라는 폭군을 불러낸 것은, 적막한 집안 분위기를 깨는 과격한 초인종 소리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 앞에서 누군가가 발로 차며 소리를 질렀다. “지금 집에 있는 거 다 알아. 빨리 문 열어!” 아빠를 찾는 소리였다. 엄마와 나는 놀란 마음에 서재로 가서 아빠를 불렀다. 문이 잠겨 있었다. “아빠, 안에 계시죠? 밖에 누가 찾아온 것 같은데, 한 번 나가 보셔야 할 것 같아요!” 하지만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동안 참고 있던 비밀이, 다시금 화에 휩싸여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심장이 쿵쿵대기 시작했다. 밖에서 나는 소리가 점점 과격해졌고, 나는 어쩔 수 없이 불청객을 맞이하기 위해 문으로 향했다. 문앞에 서자, 심장이 미친듯이 쿵쾅댔다. 쿠데타가 오늘 벌어질지도 모른다고 느꼈으니까. “누구시죠? 무슨 일이시길래 남의 집 앞에서 이렇게 소란스럽게 하나요?” 문 앞에는 아빠와 동업을 했던 대학 동기와 그의 부인이 서있었다. 분명히 기억나는 얼굴들이었다.
아빠가 처음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으로 사업을 시작할 때, 우리 집에 데려와 부부동반으로 와인을 마셨던 사람들이다. 이들을 보며 나는 걱정했다. 이들이 못된 짓을 할지의 걱정이 아닌, 험한 말을 하지 않을까봐에 대한 걱정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쿠데타를 일으킬 수 없기 때문이다. 대답을 한 건 그쪽 부인이었다. “무슨 일? 그래, 너 이 뻔뻔한 놈아, 잘 말했다. 너네 아빠 지금 집 안에 있지? 다 알고 왔다. 당장 여기 나오라고 전해!!! 우리 지금 돈 받으러 온 거야!” “무슨 돈이요…?” “안에 있는 거 다 알고 온 거니까, 빨리 불러 이 새x야, 니 아빠!” 내 머리는 이 말에 화를 내야 한다고 지시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순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이 악역을 자처한 것이 심지어 고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렇게 하면 나는 선역을 맡을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폭언에도 입가에 미소를 띌 수 있었다. “무슨 일이신지 모르겠지만, 아빠 집에 안 계세요, 다음에 연락하고 오시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지금 너무 시끄럽기도 해서요.” “시끄러워? 야, 지금 우리가 여기 놀러온 걸로 보이니? 너네 아빠, 우리 돈 가지고 연락도 안 받고, 계속 안 주고 있거든? 우리 고소하려다가 그래도 정이 있어서 여기까지 직접 온 거야. 빨리, 좋은 말 할 때 너네 아빠 불러 임마.”
그정도면 충분했다. 내가 분노를 터뜨리고, 마침내 쿠데타를 실행할 명분으로 족했다. 이제부터는 내가 무슨 짓을 해도, 그건 설득력을 가지는 행위일 것이다. 내가 분노해야 될 대상이 이들이 맞는지 중요하지 않았다. 마침내, 내가 그동안 억눌러왔던 모든 것들을 터뜨릴 수 있다는 게 중요했다. 나는 내 자신조차 본 적 없는 모습이 되었다. 집 문을 나와서, 안에서 열 수 없게 꾹 닫은 다음 내가 구사할 수 있는 가장 험한 욕을 그들에 퍼부었다. “야 이 x발x끼야, 이 xx같은 x끼야, 좋은 말로 안 하면 니가 어쩔 건데? 없다잖아 집에, 이 x발x끼야. 돈을 받을 거면 x발 직접 받아, 왜 집에 찾아와서 애한테 x랄이야, x랄이. 한 번만 더 벨 누르고 소란스럽게 굴면, 내가 집에서 x 가지고 와서 너네들 쑤셔버릴 줄 알아, 알겠어? 그러니까 x발, x져 xxx들아."
말을 내뱉은 나도, 희멀건 모범생으로 나를 전에 알던 그들 부부도 모두 놀랐던 것 같다. 그들도 받아쳤고, 이윽고 문 앞에서 동네 떠나가라 세상 천박한 욕지꺼리가 벌어졌다. 문 너머로 엄마가 나오려는 게 느껴졌지만, 나는 그러지 못하게 막았다. 그들이 욕에 지쳐서 빨리 떠날 수 있게끔 무려 1시간 동안, 나는 미친듯이 분노를 쏟아내고, 또 쏟아냈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말들을 내뱉어서, 그들의 정신을 망가뜨리고자 노력했다. 말미에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알면, 아마 모두가 놀랄 것이다. 나는 그들 부부가 자식을 잃은 경험이 있다는 걸 기억해내서, 그 아픔을 이용했다. 그 말을 했을 때, 그들 부부의 허를 찔린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너무나 모욕적이라 반박할 수조차 없게끔, 그들의 아픔을 나는 처절하게 도륙했다. 그들은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나는 승리의 희열을 느꼈다. 나의 쿠데타가 마침내 승리했다. 아빠의 서재 앞으로 가서, 방문 너머로 나의 승리를 전했다. 여전히 응답하지 않는 그를 문 너머로 바라보며, 빚쟁이들에 대한 승리를, 그리고 아빠에 대한 나의 승리를 확신했다.
하지만 다음날, 집에 경찰들이 들이닥쳤다. 대충 죄목은 ‘흉기를 사용한 협박죄’ 정도로 기억한다. 나는 연행되었고,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다. 그들은 합의를 해줄 생각이 없었다. 법원에 고소장이 접수되었고, 나는 수시로 경찰서에 출석해야 했다. 나는 솔직하게 경위를 설명했지만, 경찰들은 상대의 합의가 없으면 면책이 힘들다고 했다. 그들에게 가장 아픈 부분을 도륙한 나를, 그들이 합의해줄리가 없었다. 무엇보다 그들은 나를 해치고자 하였다. 엄마는 나를 할아버지댁으로 내려 보내고, 비밀리에 그들과 합의를 진행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집을 팔아서 그들에게 대금을 물려주고, 합의금을 전달했다고 한다. 나는 그제야 비로소, 쿠데타를 일으킨 것을 후회했다. 나의 쿠데타로 결국 피를 본 것은, 그 시간들 내내 피를 흘리고 있던 엄마였으니까. 고발은 그들이 원하던 금액이 지급되고나서야 취하되었다. 그제서야 나는 다시 학교로 돌아올 수 있었다.
(코미디)
그가 나의 유전자의 조상이며, 나의 남성성의 근원이라는 것을 부정하기 위해 노력했다. 지금도 나는 생각한다. 그가 올 때면, 책임을 다하지 않고 어떻게 그리 뻔뻔할 수 있냐고 면전에 외치고 싶다. 하지만 천진난만하게 주말에 등산을 가지 않겠냐고 묻는 그의 웃는 얼굴을 볼 때면, 그런 마음이 쏙 들어간다. 그가 늘 집 서재에 틀어박혀 있던 수많은 세월들처럼, 태평하게 마루 소파에 발 뻗고 누워있다. 맥주 캔을 까며 정치중계를 본다. 그것을 보며 그 짧은 순간 사이 수없이 긴가민가 한다. 그간 우리 가족이 그로 인해 겪은 수많은 일들이 과연 진짜로 존재했던 것인가? 그것들은 그냥 한여름 밤의 꿈이 아니었을까? 어쩌면, 나는 다른 사람들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실수’에 혼자서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불필요한 쿠데타로 일을 더 어렵게 한 것은 아닐까? 여기까지는 꽤 복잡한 생각이다. 장르는 비극에 가깝겠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엄마와 동생도 맥주를 들고 하나 둘 그의 곁으로 옹기종기 모여드는 모습을 보면, 속안에서 헛웃음이 터져 나온다. ‘피식’. 삶이 이렇게나 단순한 것이라니, 나도 맥주를 들고 가서 이야기에 참가한다. 아무렇지 않게 TV이야기를 하는 그의 옆모습을 바라보고, 이를 보는 엄마의 얼굴도 한 번 슥 훑어본다. 하하, 정말 우습게도, 나의 그동안의 이야기들이 퍽이나 민망해진다. 포크를 젓가락이라고 하던 순간도, 빚쟁이들과 벌이던 싸움도, 다 거짓말처럼 이 평화로운 일상 앞에서는 희미한 기억이 된다. 엄마를 다시 본다. 또 한창 생각에 빠진 나를 알아챈 엄마의 눈빛을 본다. 엄마가 싱긋하고 웃으며 내 맥주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힌다. ‘하하’, 하고 나도 다같이 잔을 부딪힌다. 어느새 장르는 코미디, 꽁트로 바뀌었다. 아빠는 아무것도 모르는 역할, 나는 각본, 엄마와 동생은 배우인 꽁트가 된다. 그를 부정하려던 나의 피나는 노력들이 유치해진다. 증오도 원망도, 심지어 그에 대해서 느꼈던 우월감까지도, 너무나 유치해진다. 맥주를 한껏 마시고 취해 잠이 든다. 아빠가 침대 맡에 앉아 내 어깨를 두드려준다. 나는 다시금 고민한다. 그의 존재를 '누구나 할 수 있는 실수'로 인정하고 나의 삶 안으로 들여와야할지, 아니면 타협할 수 없는 대상으로 배척해야 할지.
그렇게 나의 쿠데타는 종료되었다. 대신 그 대상을 가족에서 여성들로 바꾸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