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꿈속에 네가 나왔어.
정확히 말하자면 네가 죽었어. 그래서 내가 엄청 서럽게 울었던 기억이 나. 북한과 전쟁 중이었고, 분명 숨는다고 잘 숨었던 것 같은데. 총성이 몇 발 들리고 나서 밖에 나왔을 때 A가 전해준 말이었어. M은 갔어- 하고. 나는 그럴 리 없다면서 엉엉 울었어. 말도 안 되는 배경인 것 치고는 아직도 내가 느꼈던 상실감이 생생해. 비록 꿈에 불과했고 내 눈 앞에서 벌어진 일도 아니었지만, 죽음을 바로 곁에서 경험해본 적은 처음이었거든. 얼마나 운 건지 일어나 보니까 눈물이 말라붙어있더라.
혹시 네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했어. 그런데도 너에게 쉽게 안부 인사 하나 건네지 못한 건, 그동안 연락하지 못한 텀이 너무 길어서야. 서로의 연락이 순간은 반가울지 몰라도, 지속되면 서로 힘들어질 것 같아서. 끊기엔 미안하지만, 이어가자니 피곤한 그런 거 있잖아. 요즘 내 마음에 여유가 없는 탓도 있을 거야. 그래도 내 첫 일기의 주인공은 너야. 별 것 아니지만 영광으로 생각해달라고.
그렇게 뒤숭숭한 꿈을 꿨지만, 사람이 죽는 꿈은 나쁜 꿈은 아니래서 훌훌 털고 일어나서 느지막이 아침 식사를 즐겼어. 지난주 회사가 너무 힘들어서 이번 주말엔 끝장나게 늘어져있어 보려고 했는데, 뒷산이라도 걷자는 아빠의 성화에 못 이겨 바리바리 껴입고 나갔지. 못 본 사이에 나무들에는 새순이 돋아나고, 벚꽃도 매화도 필 준비들을 하고 있었더라. 이번 겨울 그렇게 춥지도 않았는데, 봄이 온다는 소식이 반갑긴 하더라고. 계절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작지만 확실한 행복 같아. 공감돼? 네가 있는 동네는 늘 따뜻하니까, 언제 한국에 오게 된다면 꼭 겨울에 와보도록 해. 12월은 덜 추우니까 남은 건 1월이나 2월인데 내 생일 맞춰서 2월에 오면 되겠다 깔깔. 붕어빵이랑 호떡 사줄게. 아, 타코야끼도!
코로나로 인해 줄줄이 잡혔던 약속들이 취소되고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조금 더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일을 찾아보려고 저녁엔 '밀리의 서재'라는 어플을 깔았어. 오랜만에 다시 책을 좀 읽어볼까 하고. 그런데 생각보다 책들이 별로 없더라고. 그리고 나만 해도 걸친 세대라 그런지, 책만큼은 종이책을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읽는 게 더 좋더라고. 단순히 텍스트를 읽고 소화하는 것뿐만 아니라 얇은 종잇장을 넘기는 것까지가 나에게는 '책을 읽는다'는 사용자 경험에 속하는 것 같아. 그래서 내일은 아빠 책장에 있는 책들을 좀 읽어볼까 해.
시간이 어느덧 열시야! 이제 슬슬 잘 준비를 해야겠지. 너랑 A랑 새벽 늦게까지 채팅하던 날들도 참 많았는데 그 체력은 어디 간 걸까? 그리고 그때 우린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았었지? 나름 진지한 고민들도 많았던 것 같은데 돌아보니 귀엽게만 느껴져. 물론 너네 말고 나. (단호)
캘리포니아는 이제 하루가 시작되겠네. 거긴 마스크 쓰는 분위기는 아닌 거 같다만 손이라도 잘 씻고. 잘 지내다가 내년 2월에 보자. (내 마음대로)